『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BARDO OR NOT BARDO
앙투안 볼로딘 지음, 조재룡 옮김
편집. 김뉘연
@foirades , 신선영, 이동휘
디자인. 김형진
@wkrm02
발행. 워크룸 프레스
@workroompress
125 × 210밀리미터 / 196쪽 / 무선 소프트커버 / 2025년 12월 24일
“주의해서 내 말을 들어 봐, 코민포름. 자네에게 들리는 것에만 집중해. 잠들면 안 돼…. 우아한 시체는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리라. 늙은이가 아무리 말해 봤자, 나는 확신할 수가 없어, 이런 문장이…. 어쨌든, 자네는 내가 자네 귀에 대고 지금 읽어 주는 것만 곰곰이 생각해, 코민포름…. 눈물을 참으면서 한가운데 있던 포동포동한 곰이 금붕어 무리를 눈부시게 했다…. 하나만 남았어도, 출장 나온 외판 직원은 정신 나간 계란을 밤을 새워 감시하리라…. 이봐, 코민포름, 용기를 내라고, 정신 잃지 마…! 머나먼 흉물이 세계의 북극에서 우리의 진짜 송곳니를 오랫동안 갈색으로 물들였다. 우리를 떠나지 마, 코민포름…! 내 말 들려…?” (30~31쪽)
장시간의 귀가 열차에서 처음 소설을 펼쳤을 때는, 사실 읽다가 한숨 잘 셈이었다. 전날 밤을 거의 새운 데다 (밤을 새운 게 맞을까? 밤을 새웠다는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잠은 어쨌든 짧은 죽음이니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바르도를 배회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행위는 없을 것 같아서, 어쩌면 그 일시적이고도 반복적인 죽음 한가운데로 책 속의 말들이 꿈의 조각보를 기워다가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라는 계획은 책 속에서 『우아한 시체』와 『죽은 동물 조리법』이 등장하는 순간 폐기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인물들이 그 책들을 다급하게 낭독하는 혼돈과 광기의 장면에서 나는 실성한 것처럼 소리 죽여 웃었고 누가 봤다면 수상쩍게 여겼을 테지만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물론 베케트식의 부조리와 유머만이 폭발하는 작품은 아니다. 현실과 몽상, 지상과 우주, 삶과 죽음이 경계를 잃거나 앓는 기이한 세계에 접속한 독자는 착각의 거푸집에 부어진 환각의 수렁에 빠지며,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차원을 인물들과 함께 부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틀거리며 나아간 끝에 투명한 빛을 만나 마침내 공성(空性)을 깨달을 것인가, 망집(妄執)에 머무를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이 소설을 펼친다면, 더욱 혼수상태의 난장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한잔해, 바르도의 바에서.
— 구병모(소설가)
포스트엑조틱한 크리처들이 바르도를 방황한다. 실패한 혁명가, 미친 극작가, 임무를 모르는 조직원, 망명자들과 죄수, 기죽은 광대… 바르도는 열반과 환생이라는 두 기로 사이에 놓인 경계 구역이다. 죽음이 미뤄지며, 살아 있다고도 소멸했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이상하고 모호한 장소. 초월의 가능성과 부활의 가능성 둘 다가 유예되거나 부인되고, 어쩌면 두 가능성 모두에게서 버려진 어긋난 시공. 픽션은 무(無)와 현실 사이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에 없음도 있음도 아니고,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이한 존재들의 대피소를 마련하는 일이다. 볼로딘의 소설은 잔존하는 헛것들을 위해 온갖 실험적인 형식과 신비한 장르적 환상, 기상천외하고 경이로운 수법을 차용하고 동원하는 교잡된 우주이며, 파편과 노이즈로 존속하는 역사의 폐기물들이 모여들어 속닥거리는 비틀린 중간계를 창조한다. 붓다도 인간도 되지 못할 가망 없는 유령들이 한담을 주고받는 저세상. 해괴한 고독과 뻔뻔한 희망, 목마른 기다림. 나는 꿈꾸는 송전탑처럼 저세상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내가 있(을 수도 있)었던 낯설고 오래된 장소가 거기 있었으니, 나는 죽었는지도, 단지 내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양선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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