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parhelion>
Stereo audio, fog machine, scent, aluminum, single-channel video, natural light, inkjet print on paper, 1h 3s, 3m 33s, loop, site-responsive variable installation, 2025-
<333:parhelion> is an attempt to reconstruct the ”Possibility of Fiction in Reality“—inherent in the absolute entity of the sun—through synesthetic layers, mediated by the natural phenomenon of the parhelion. This phenomenon, where the sun appears to split, transcends mere phenomenological illusion; it implies that the world, once believed to be singular, can exist in multiple versions at any moment.
The vibrational field shaping this environment is derived from solar vibration data observed by NASA. Cosmic wave data, originally beyond the range of human perception, is compressed and converted into audible frequencies, then combined with low-frequency drone sounds in the 33–33.3 Hz range. This sound functions not merely to create a flat auditory experience, but as a mechanism that transmits direct vibrations to the viewer‘s body, temporarily suturing the cosmic scale with subjective sensation.
The code <333> designates a realm of Potentiality where fixed reality dissolves and events yet to come are superimposed—a state prior to complete collapse or unbridled acceleration. It marks the initial Threshold where the world begins to reveal its own fictitious nature. <333:parhelion> erases narratives based on linear causality, unveiling a cross-section of Hyper-chaos where all necessity has crumbled. Through this, the work presents the anxiety and openness arising from the fact that reality can be rewritten at any moment, manifesting these concepts as vibrating sensations themselves, while temporarily anchoring them within the physical space.
<ХАКСАХАКВИЧХОНТУДЖОН>
26.1.28-2.3
김민준
김유진
송경용
조유진
최준식
최환호
계원예술대학교 창조관, 인훅, 샤랑통, 103a, 지하극장
(경기도 의왕시 계원대학로 66)
기획 project_ (@project_underbar )
디자인 ccccccc studio ltd.
기록 김민준
운영 김유진 송경용 조유진 최준식
아아, 음악이 흐르네요. 장송곡인가요, 왈츠인가요? 우리는 잔을 들고 있지만, 건배의 이유는 잊어버렸습니다.
목적지가 [censored] 처리된 세상. 우리는 도착하는 대신 부유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지도에 없는 좌표, <ХАКСАХАКВИЧХОНГУДЖОН>입니다. …은 소거되었고, 샴페인은 김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미지근하고 건조한 상태가 꽤나 안락합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기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누구도 우리를 탐내지 않고, 평가할 수 없으니까요.
어서 오세요. 이 권태롭고 평화로운 티타임에.
(전시서문 中)
서문을 더하고 <666:yaldabaoth’s cvt> 로 참여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기〉
26.1.22-27
KOTE @kote.kr
서울 종로구 인사동1길 7, 해봉빌딩 3F, B1, 옥상
세계가 무너질 때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모든 방향이 닫히고, 의미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멈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떤 존재들은 여전히 자신을 던진다. 그들은 그것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멈추지는 않는다. 〈무너지는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기〉는 이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 ‘던짐’이 지니는 의미를 묻는다. 이 도약이라는 행위는 막연한 구원이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진보의 상상을 덧붙이지 않고,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도 ‘될 수 있음’으로 남으려는 미세한 운동으로 현존한다. 그것은 이성과 목적의 계산을 넘어서는 능동적 반응이자, 세계가 완전히 닫힌 순간에도 스스로를 작동시키는 리듬임과 동시에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수락한 지속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베케트가 말한 “그래도 계속한다”는 끈질김을 떠올리게 하듯, 이 도약은 끝을 인지하면서도 다시 움직이는 감각의 잔존으로 드러나며, 어느 가능태는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 머무를 수 있는 힘으로서 무력함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카뮈의 시지프스와 같이 영원히 반복될 운명을 받아들이고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릴 때, 그는 부조리의 세계 바깥에 서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을 얹음으로써 세계를 다시 인식하게된다. 그 순간 행위는 실패의 예감 속에서도 스스로의 정당성을 얻고, 무력함을 끝까지 감당하려는 능동성으로 변환된다. 누군가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는 이 움직임은,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의지의 형식으로 남게된다.
이런 행위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세계 속에서 도약을 지속하려는 존재들의 윤리를 탐구한다. 그들은 구조가 스스로를 허무는 진동 속에서도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려는 몸짓을 이어가며, 도약을 닫힌 세계 속에서 열림을 보존하려는 태도로 설정한다. 이 태도는 실패의 예감 속에서도 가능태로 머무르는 마지막 제스처로 작동하고, 세계의 변화를 약속하지 않더라도 세계가 완전히 닫히는 시간을 조금 더 늦추는 인간적 저항으로 남는다.
〈무너지는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기〉는 불가항력의 자리에서 다시 ‘가능’을 사유하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무의미를 인지하면서도 그 무의미를 감행하는 수행적 몸짓을 기록한다. 끝이 도래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도약한다.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 어리석음 속에서 세계는 잠시 동안 다시 호흡한다. 세계가 붕괴한 이후에도 남는 행위의 상태를 관찰한다. 그것은 더 이상 구원을 향하지 않으며, 닫힌 세계 속에서 ‘될 수 있음’으로 남으려는 미세한 지속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행위는 그 느린 지속의 형태를 따라가며 인간이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가능의 윤리를 탐색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Seasoning the Wounds : 염하기
2025.9.8-16
계원예술대학교미술관
9:00-18:00
수토일 -20:00
김다슬(@dsuriii )
오민수(@ohminsuu )
유영범(@tiger__balm )
이시마(@sima.summ )
주경빈(@kyeongbinjoo )
최환호(@cccccccstudioltd )
허창범(@heo.changbeom )
기획/주관 project_(@project_underbar )
그래픽디자인 ccccccc studio ltd.
운영지원 유영범, 이지은
기록 오민수
후원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kaywon_univ@intermediaart.kaywon ) 가변적 아카이브로서의 ‘염하기’는 고정된 기록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보존을 통해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확정성을 지속시키며 의미의 변화를 수용하는 개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염하기’는 기억을 영구히 봉인하는 장치를 넘어 의미를 유예하고 재구성하는 하나의 기록정치로써 발현된다. 이는 아카이브하는 행위가 단순한 과거의 저장소가 아닌 미래를 구성하는 살아 있는 매개체임을 드러내는데, 불확정성의 틈을 지워버리는 대신 그 틈 속에서 다른 가능성들이 발효되도록 두는 것—이것이 염하기가 제안하는 지속적인 아카이브행위의 새로운 윤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염하기의 함의는 단지 윤리적 태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의 매개이다. 소금이 조직 속으로 스며들 때, 불이 염증으로 발화할 때, 혹은 상처가 통증과 치유 사이에서 머물 때—대상은 더 이상 이전의 그것이 아니다. 염함은 형태의 유지와 변질을 동시에 수행하며, 사물과 몸, 이미지와 기억을 ‘다른 것’으로 만든다. 여기서 이러한 전환은 상태의 분절적 단절이 아닌 내부의 변속장치처럼 점진적이면서도 불가역적으로 진행된다.
…
따라서 염하기는 단지 한 존재의 전환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닌 변환들이 얽히고 확산하는 세계의 구조를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그것은 보존과 소멸, 생성과 변형이 하나의 망 위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생태계이며, 그 속에서 상처와 틈은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조직원리로 작동한다. 이 세계는 완결된 서사를 거부하며, 각 변환이 또 다른 변환의 토대가 되는 무한한 순환의 장을 제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시 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