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합니다! 시간 되면 보러오세요
이 전시를 보면 허리가 펴지고 눈이 맑아집니다
부르지 않은 이름 2025
이 작업은 전쟁 영화를 출발점으로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영화나 사진, 게임 등을 통해 재현된 전쟁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아 왔습니다.
‘부르지 않은 이름’ 은 그런 전쟁 영화의 필름 위에 디지털 기술을 입혀, 전쟁이 신체적 감각과 사건을 어떻게 압축하고 재구성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전쟁 영화는 화려한 cg와 스케일을 통해 전쟁을 재현 하지만, 전쟁은 방법으로도 재현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전쟁을 단순히 화려한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화려함의 층위가 어떻게 쌓여지고, 다시 포장되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로 소비되는지 질문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에서 등장하는 뎁스 이미지나 , 3D 모델링의 디지털 기술은 특유의 매끈함으로 사건이 가지고 있는거칠음과 불균질함을 제거하며,
노근리 다리나, 피폭으로 인해 다리를 잃은 군인등 그들이 겪은 시간과 경험, 그리고 공간 자체를 납작하게 왜곡합니다.
이런 기술은 다시 가공 가능한 상태로 재생산되어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는 아이폰 시네마틱 모드의 기능으로 하향 복제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고
이렇듯 ‘기술이 기술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완벽함’은 가장 합리적인 계산으로 환원되어 사건이 지닌 모든 시간을 생략하게 됩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시선은 명암의 이분법 속에서
차이를 지우며, 죽음마저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평면화 시키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은 죽지 않아도 더 이상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 상태를 귀신 이라고 불러왔고
그것은 머물곳을 잃은 존재가 취하는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를 우리, 즉 사회가 부르는
이름이라 생각합니다.
부를수 없는 이름은
전쟁의 맥락을 너머 우리 곁에 있는 기술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천천히 열어가는 과정이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혼자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다녀 온지는 꽤 됐습니다
파도는 그래픽처럼 쪼개지며 모래톱밥 사이로 부서지고 사라지더군요
책방겸 술집에서 글 교환을 했습니다
작년에 쓴 글 중 가장 애정하는 글이었습니다
이후 다른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쓰겠지요
인스타는 종종 들어오긴 하겠지만 조금 둘러봐도 저에게 도움될 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소식 궁금하다면 블로그 와주세요
대뜸 연락해 주셔도 좋아요
그리고 저는 ㅋㅋ 옷을 팔러 돌아왔습니다
Subsurface scattering (표면하 산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하철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지하철이란 매개의 운동으로 인해 운반된다. 개인의 목적지를 향해. 그렇다면 완벽한 우리의 의지로 인해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서 기획 의도가 착안 됐다.
우리의 몸(정신)은 모체임과 동시에 아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하고자 하는 것 등 욕망 하기도 하고 그 욕구를 이뤄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 이면서 동시에 엄마이다. 동시 다발적으로 요구되는 선택의 반복과 최선의 결과에 따른 경로를 지하철 내부에서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통해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즉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 까?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때로 이것을 수용하고 반대하기도 하며 또한 이것들을 하나로 융합시키기도 한다. 이 구도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순환을 눈을 감고 깊이 느껴보면, 마치 옆은 눈꺼풀을 뛰고 들어오는 강렬한 빛의 파장처럼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각이 있다. 이 흐름이 모든 것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브서피스 스캐터링이라는 현상에 비유하여 다양한 이미지와 영상의 연속성을 조명하려 한다.
음향 디자인_ @loverboy.network
애니메이션 디자인_ 권재욱
저는 각본, 연출, 편집, 나레이션을 맡았습니다.
7/9
오늘 출근을 했어
물건을 정리하다 문득 네 생각이 나더라
내 머릿속은 지금 너와 함께였던 한여름에 머물러 있어
잘 지내니? 비는 꼭 내렸으면 좋았을 법한 날에는 오지 않더라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
너도 비 맞는 걸 좋아하니? 나는 요즘 비를 맞고 싶어. 비 오는 날, 맨발로 웅덩이를 밟으면 물의 차가운 온도가 발끝에 닿아 시원한 느낌이 참 좋아
나 지금 자유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우리는 서로 닮은 면이 꽤 있었으니까, 너도 분명 좋아하겠지?
하연아 나는 아직도 궁금해. 내가 왜 너를 도망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는지
너는 이유를 말했지만, 나는 그 이유가 잘 납득되지 않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함 아픔을 겪고, 고통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일면식 한번 없는 사람에게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게 잘못이었을까? 넌 네가 날 아프게 만들었다고, 내 마음이 곪아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었다며 자책했지만, 나는 네가 없던 시기에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겪었을 큰 상실을, 혼자 앓았을 나를 떠올리니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가 택했던 선택들이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나도 분명 생각하지만, 그때의 네 체온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온전히 따뜻했고, 또 고스란히 쌓여 내가 지탱할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단다.
하연아 있지, 스물넷이 된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어
스물넷이 된 너는 어떠니? 나는 미지근해. 너무 미지근한 사람이 됐어. 그리고 자주 조절을 못해서 펄펄 끓다가도 차게 식고 만단다. 마음은 끓는 점보다 녹는점이 더 길고 아픈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지나가고 있는 계절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겠어.
내가 여름이 왔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끈적거리는 기운이 내 등줄기에 달라붙어 체력을 갉아먹고, 시력이 나쁜 내가 쓴 안경테 주위로 습한 땀방울이 고이면 그제야 현기증 나는 여름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여름과 겨울의 교집합인 자극적인 온도가, 내 일상을 침범하고 생활의 반경을 바꾸면, 내가 살아있는 아픔이 폐부 깊숙이 느껴져. 그래도 오해는 말아줘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야. 단순히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
호흡할 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허파가 팽창하고 수축할 때, 압정처럼 따끔거리는 심장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 그러면 나는 지금 확실하게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이, 외려 간단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드러나거든.
너도 이런 기분을 종종 느끼니?
그런 기분이 자주 드는 계절이 나한테는 여름이야.
네가 겪는 여름은 어떨까?
오늘 나는 너와 함께였던 여름이 무척이나 그리워, 종말 직전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처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존재를, 그 존재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어린 내가 그리워.
나는 어쩌다 너의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을까?
가위를 심하게 눌린 날에 찾게 되는 나무 십자가처럼 맹목적이진 않더라도 붙들 수 있는, 붙들릴 수 있는 믿음과 같은 상징을 부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실은 나는, 네가 그립다기보다 순수하게 서로를 의지하고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 그리운 것 같아. 계산적이지 않았던 마음이 그리운 것 같아.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 위해 유지해야만 하는 것들이 ‘따위’로 치부되던 시간이 그리운 것 같아. 너도 그럴까?
커가면서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 그 사람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 시간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해서 깨달은 것들이 삶을 살아갈때 좀 더 유연하고, 낯설지 않게 만들어주거든. 감사하게도
추억은, 추억으로 두었을 때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워서 그 추억을 헤집고 끄집어내 현실에 꿰맞추면, 엉성한 모양이 되고 말아서..결국 이상적이던 처음의 모양을 되레 망치고 마는 것 같아.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기호와, 글자와 숫자, 그리고 시간에 안부를 묻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이겠지?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묻어두는 게 가장 완벽한 결말일 테니까
나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네게 닿을 방법이 없겠지만, 만약 닿는다고 해도 썩 감동적이진 못할 것 같아 슬프다.
하연아, 비 갠 뒤에 지는 노을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참 슬퍼 너도 그 마음을 아니?
비가 왔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