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save_ 우리 시대의 비공식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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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14 - 7. 19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25. 7. 14 - 8. 15 미진 플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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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osave_: 우리 시대의 비공식적 역사》 참여작가 ㅣ 교각들 김웅현 김현석 노상호 류성실 머피염 박론디 선점원 유근택 전희수 정찬민 추수 황현호 ElinorO'Donovan ElisaLohmüller 기획 ㅣ 콜렉티브201 (김효진, ,윤형민, 강혜인, 권소연, 김나현, 김서영, 김영원, 민정범, 박민지, 박한비, 신서연, 이린, 이시원, 최재희, SarahBakker) 디자인 ㅣ 이시원 @postcardfromsw 협력 ㅣ 홍익대학교 협찬 ㅣ 블룸즈베리랩 @bloomsburylab_official 후원 ㅣ 다전디자인그룹 은민에스엔디 @practiceof.cur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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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 《Autosave_》 큐레이팅 글 큐레이팅 글은 참여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습니다. 작가별 큐레이팅 글은 홈페이지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 https://collective201.carrd.co/ ⠀ 참여작가 ㅣ 교각들 김웅현 김현석 노상호 류성실 머피염 박론디 선점원 유근택 전희수 정찬민 추수 황현호 ElinorO'Donovan ElisaLohmüller 기획 ㅣ 콜렉티브201(김효진, ,윤형민, 강혜인, 권소연, 김나현, 김서영, 김영원, 민정범, 박민지, 박한비, 신서연, 이린, 이시원, 최재희,SarahBakker) 디자인 ㅣ 이시원 @postcardfromsw 협력 ㅣ 홍익대학교 협찬 ㅣ 블룸즈베리랩 @bloomsburylab_official 후원 ㅣ 다전디자인그룹 은민에스엔디 @practiceof.cur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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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Autosave_》 전시 도록이 〈WESS 전시후도록 2025〉에 참가합니다💫💫 〈WESS 전시후도록 2025〉가 12월 11일(목)부터 14일(일)까지 4일간 진행됩니다. 총 59명(팀)의 다양한 형태의 도록과 미술 출판물을 열람하고 소장하실 수 있습니다. ▪️ WESS(웨스) 연례 프로그램인 〈WESS 전시후도록〉은 2020년부터 소규모 독립 미술 전시 도록 배포의 한계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공통된 목소리에 주목하며 전시 관련 출판물 배포를 위한 일시적 플랫폼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WESS 전시후도록 2025〉는 Adocs(에이독스)와 함께 온라인 배포를 이어가며, SALT와 dot bat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엽니다. ‘전시 도록’이라는 출판물을 매개체로 지나간 전시를 대해서 되짚어 보고, 휘발되는 전시와 대신 남겨지는 출판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나아가 다양한 디자인의 미술 출판물을 둘러봄으로써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출판물의 미래를 상상해봅니다. ▪️▪️ WESS 전시후도록 2025 WESS Exhibition \ Publication 2025 2025. 12. 11. (thu) - 12. 14. (sun) 11:00 - 19:00 off-line_SALT @salt_sajik11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1, 204호) dot_bat @dot_bat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1, 206호) online_에이독스 @adocs_official (https://adocs.co) ▪️▪️▪️ Organized by WESS Cooperated with Adocs @adocs_official Coordinated by Seokmin Kim Graphic Design by Everyday Practice @hello_ep ▪️▪️▪️▪️ 《Autosave_》 본 전시 도록은 디지털 환경을 부유하며 생성 및 소멸하는 비공식적 기록물들, 그리고 현시대에 공유되는 감각으로 구축된 현재형 아카이브입니다. 미시성(Micro-perspective), 가상성(virtuality) 시간성(Temporality)의 세 파트에 걸쳐 15인(팀)의 작가들과 Cllective 201의 기획자들이 풀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 참여 작가: 교각들, 김웅현, 김현석, 노상호, 류성실, 머피염, 박론디, 선점원, 유근택, 전희수, 정찬민, 추수, 황현호, Elinor O'Donovan, Elisa Lohmüller 필자: Collective 201 (김효진, 윤형민, 강혜인, 권소연, 김나현, 김서영, 김영원, 민정범, 박민지, 박한비, 신서연, 이린, 이시원, 최재희, Sarah Bakker), 정연심 디자인: 이시원, 윤형민, 최재희 편집:이시원 @postcardfromsw 후원: 블룸즈베리랩, 은민에스엔디, 다전디자인그룹 발행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2025) #wess #웨스 #기획자공동운영플랫폼 #program #프로그램 #adocs #에이독스 #salt_sajik11 #dot_bat #전시후도록 #exhibition_pub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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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Elisa Lohmüller(엘리사 로뮐러) 1, 2 <Polster>(2022) 3 <HVZ>(2022) ‘일상 속 흔적의 미학: 무의식적 조형 행위의 디지털 시각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물과 마주하고, 그것들과 접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물리적 접촉이 어떤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다시 우리의 감각과 기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깊이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엘리사의 작업은 이러한 무의식적이고 일시적인 흔적들을 예술의 언어로 시각화함으로써,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감각의 층위를 드러낸다.  그러한 작가적 시도가 잘 드러나는 작업은 <Polster>(2022)사진 연작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안락의자 10개를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의자들은 슈투트가르트 시립미술관의 관객들의 편안한 작품 감상을 위해 작품 앞에 설치되었으며, 각 사진의 제목은 특정 작품 앞에 놓인 의자의 위치를 나타낸다. 미술관을 방문한 관객들이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며 남긴 엉덩이 자국은 일종의 무의식적이고도 집단적인 조형행위가 된다. 조명의 빛과 주름의 모양들이 만들어내는 조각적 흔적은 일상적인 동시에 고유하며,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기록함으로써, 관객의 무의식적 행위를 물질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HVZ>(2022)는 작가가 취리히에서 작업을 하던 시기, 집과 작업실을 주로 기차로 오가며 사람들이 기차에 남기는 흔적들을 수집한 작업이다. 기차의 등받이에 남은 흔적들을 흑백으로 대비시켜 지문 크기로 출력함으로써, 각각의 정체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만의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세계와 맺는 물리적 접촉을 시각화한다. 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을 통한 지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지각을 해석 이전의 가장 근본적인 세계 경험으로 보았으며, 작가의 사진은 이러한 무의식적 감각의 흔적을 포착해 예술로 전환한다. 엉덩이 자국이나 등받이의 주름처럼 사소한 흔적은, 결국 신체가 세계에 남긴 조용한 목소리이자, 감각이 기록된 물질의 표면이 된다.   작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의식적으로 남기는 흔적들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 흔적은 어떻게 의미를 갖게 되는가?’ 작가는 특히 공공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흔적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자취는 자연스레 여러 사람의 흔적을 거치며, 각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Polster>에서의 엉덩이 자국들은 관객이 그림 앞에서 보낸 시간을 보여준다. 이 흔적은 미술에 익숙한 사람이든 문외한이든, 누구든 작품 앞에서 정직하게 머문 시간을 고요히 기록한 것이다. <HVZ>에 기록된 기차를 이용한 승객들의 등받이 자국은 통로와 창가쪽으로 몸이 쏠려 있는, 서로에게 부딪히지 않으려 반대쪽으로 몸을 기대는 사람들의 태도가 드러난다. 이렇듯 두 작업에서 물질적으로 시각화된 무의식적 행위들은 타인과 우리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단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흔적들은 대개 매우 일시적이고, 쉽게 사라지거나 변형된다. 이는 오늘날 정보가 초 단위로 생성되고 실시간으로 확산되었다가 곧 다른 정보에 밀려나는 디지털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유하고 소비하며, 기억보다는 순간에 반응하는 존재로 변모해 왔다. 의자에 남은 엉덩이 자국과 등받이에 남은 압력의 흔적은 비록 찰나에 그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선명하게 감각의 방향 상실, 기억의 부재, 즉 시간성의 특질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일시적 흔적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남기고 잊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사라짐의 미학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포착하고자 한다. 글 김나현 @naflwrll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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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황현호(Hyun Ho Hwang) 1 <Balanced>(2024) 2, 3 <Holy Molly? Holy Sally!>(2024) ‘무(無)의 시선 속 무(虹)의 자화상’ 시선(視線)은 단순한 바라봄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 안에서 내가 하나의 대상으로 객체화되는 순간이다. 그 짧은 순간, ‘나’는 타인의 기대와 해석의 틀 안에 갇히고,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된다. ‘나’는 타인의 기대를 내면화하며 자아를 조형한다.   오늘날, 이러한 시선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욱 가시화된다. ‘보았다’는 행위는 기록으로 남고, ‘보여졌다’는 사실은 조회수로 치환된다. 타인의 시선은 이제 감각적 인상을 넘어서 수치화되고 축적되며, 끝없는 비교와 평가의 근거가 된다. ‘나’는 시선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며,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이 반복되는 조형의 과정으로 인해 ‘나’는 점차 마모된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에게 보여지는 존재로 살아간다. 황현호는 이러한 시선의 피로 속에서 순수한 눈을 만났다. 평가도 기대도 담기지 않은 검은 눈. ‘라인프렌즈(Line friends)’ 오리 캐릭터 ‘샐리(Sally)’ 인형 앞에서 그는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낯설 만큼 평온한 시선을 작가는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샐리를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행위는 단순한 재현를 넘어, 샐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수행적 실천이다.  <Balanced>는 자아 회복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화면 중심에 자리한 샐리는 무지개빛 파장과 황금빛 별 사이를 부유한다. 샐리에게서 비롯된 무지개는 무비판적 시선 아래 비로소 가능해지는 자아의 다양성과 회복을 상징한다. 무지개는 상처 입은 감정의 편린들을 껴안고,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다시 조립할 수 있게 한다. 밝게 빛나는 황금별들은 일시적인 보호막처럼 샐리의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빛나는 별들은 외부의 시선을 무력화시켜 ‘나’의 감각만으로 내면을 복원할 수 있는 예외의 순간을 상징한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발견 가능한 찰나의 회복 가능성. 작가는  샐리를 통해, ‘나’를 구성하고 타인을 감각할 수 있는 무의 시선을 재현한다. 반면 <Holy Molly? Holy Sally!>는 내면의 회복 이후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약 90개의 원형 캔버스 위의 브랜드 로고와 문구는 일상의 이미지 소비가 야기하는 내면의 자극과 욕망의 생산을 시각화한 것이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작은 알약처럼, 형형색색의 다양한 화면에 우리는 현혹되고 압도된다. <Balanced>와 달리, 여기에서 샐리의 눈은 환하게 빛난다. 언뜻 보면 동시대 이미지들에 매료된 것처럼 읽힐 수 있지만, 이 빛은 외부의 자극에 쉽게 매혹되지 않는 내성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빛나는 별은 쏟아지는 이미지들 속에서도 자기 감각을 지키려는 내면의 저항을 암시한다. <Holy Molly? Holy Sally!>는 자아의 회복을 바탕으로 이미지 과잉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초상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구성되고, 마모되어온 자아가, 어떠한 평가도 기대도 담지 않은 눈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을때, 비로소 ‘나’는 복원된다. 이 복원은 다시 타인을 감각할 수 있는 자리로 ‘나’를 이끈다. 샐리는 그런 응시의 전환점에 선 존재다. 샐리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다시금 세계 속의 ‘나’를 바라보는 행위, 그것은 곧,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황현호는 이 조용한 전환의 순간에 우리에게 되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글 윤형민 @maaarch24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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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노상호(NOH Sangho) *작품 정보는 댓글에 있습니다. ‘디지털과 디짓 사이’ 디지털Digital은 종종 비물질적인 가상의 세계로 여겨진다. 클릭과 전송으로 던져지고 스크롤로 발견되는 이미지들은 손이 닿지 않는 무형의 감각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그 세계의 기원이 손가락Digit에 있음을 떠올린다면, 이 감각적 비약은 다시금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손가락이 있다. 시각의 스펙터클에서 구원해 줄 촉각이 있다고 할 때, 디지털 매체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단지 화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가까이서 만지듯 감각되기를 요청하는 한 장의 얇은 그림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는 분명히, 세계를 직접 분절하고 조직하려 화면을 더듬은 작가의 손가락적 행위가 남아 있다. 노상호의 회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디지털 작업을 선행하고, 그것을 물리적 형태로 번역하려는 충동이다. 이로써 작가가 속한 디지털 네이티브와 아날로그 세대 그 중간 지점에서만 가질 수 있는 특정한 감각이 밝혀진다.   <THE GREAT CHAPBOOK 3>(2023)의 화면에는 같은 하늘 아래 각자만의 맥락을 간직한 수많은 객체가 있지만, 기승전결이나 사건의 흐름을 따르는 이야기 구조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전체를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엔 오직 작가가 천천히 복사한, 재구성된 이미지로 표상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모호한 ‘분위기’만이 잔존해 있다. 이 분위기는 이야기보다 먼저 우리에게 도착하는 것으로, 사건을 통해 시간을 밀고 가는 전통 서사와는 다른, 정지되었거나 질척이는 시간의 경험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불편함과 그 끌림. 그렇게 그려지다 결국에는 화면 아래로 흘러 섞여 들어간 것들. 그런 것이 구성하는 얄팍한 화면이 있고, 우리는 그 팔랑임 속에 사는 탈 쓴 이들이나 녹지 않는 눈사람, 또는 번지지 않는 들불과 발사-정지 상태의 화살 같은 중간자적 모티브를 따라 두 개의 현실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출몰된 사건을 비롯해 인터넷상에서 소위 ‘짤’로 불리는 이미지까지 포함하여 2013년부터 꾸준히 전개된 <THE GREAT CHAPBOOK> 드로잉 시리즈는 디지털 이미지의 파편적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A4 용지 한 장에는 한 장면이 있다. 이 ‘장’들은 역시나 서사를 가진 척하지만, 익명의 순간이 붙여 본 조잡한 이야기가 될 바에는 하나의 컷으로 존재하기를 택한다. 이제는 밈이 된 뉴스의 한 컷부터 두 시간짜리 영화의 한 장면까지, 이들은 이미지에 따라 짧은 대사나 텍스트와의 병치를 통해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어긋난 감정을 유발하며 특정 맥락 안에 회수되기를 거부한다. 빠르게 확산했다가 사라지고 다시 불현듯 나타나는 이 민담은, 과거와는 다른 속도로 각자의 생애를 지속하고 있다. 이후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작 <HOLY>에서는 에어브러시를 통해 새로운 질감을 도입한다. 이는 표면의 요철을 최소화하고, 매끈하고 균질한 디지털적 피부를 구현하는 데 적합한 도구이지만, 실은 고도로 아날로그적인 수행을 필요로 한다. 원하는 색감과 밀도를 얻기 위해서는 손의 각도, 압력, 몸의 위치 등을 섬세하게 조율해야 하며, 작가의 손가락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긴장을 조정하는 촉각적 매개체가 된다. 그렇게 분사된 흐릿한 입자들은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감각의 잔향처럼 화면 위에 안착한다. 한편,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의 작업을 학습한 AI가 이미지 생성의 주체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작가의 축적된 경험과 반복된 손동작 위에 구축된 것으로, AI는 작가의 손가락이 남긴 리듬과 이미지 배열 방식을 학습해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감각적 대리자로 작동한다. 결국 노상호의 회화는 우리에게 경계를 해체하자고 말하기보다는, 이 경계는 정말 투과적이며 둘 사이를 오가는 일은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손과 눈, 이미지와 감각 사이를 넘나들며 틈새에서 일어나는 모호함을 탐색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에 머무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매체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미학이자, 서사 없음의 서사가 만들어 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손끝으로 세계를 더듬고 있으며, 이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 강혜인 @hyeneeeeeeeeee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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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김현석(Kim Hyun-seok) 1 〈완벽함에 대한 무의미적 행위〉(2015) 2 〈완벽의 기원〉(2023) 3, 4 〈데이지-체인-아고라〉(2023) 5, 6 〈루시 1.0〉(2024) ‘기술적 존재의 계보: 우리는 기술로 태어난다’   약 330만 년 전, 뗀석기는 눈앞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도구이기도 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 곧 닥쳐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도구였다. 인간은 도구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기술이 인간 존재 자체를 형성하는 오늘날, 우리는 기술 속에서 인간다움을 되묻고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김현석 작가는 〈완벽함에 대한 무의미적 행위〉(2015)에서 NASA의 초고화질 달 사진을 1픽셀 단위로 확대-축소하는 행위를 수백 번 반복한다. 반복적인 행위는 알고리즘에 미세한 오차를 축적시키고, 이미지 표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영원히 보존될 것 같았던 디지털 이미지는 세월이 깃든 오래된 물건처럼 변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조작과 오류는 ‘보존되지 않은 시간’의 감각, 즉 열화라는 역설적 속성을 드러내며, 이상화된 영속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지는 〈완벽의 기원〉(2023)은 앞선 작품의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보간하려는 시도다. 인공지능 모델은 알고리즘 오류로 사라진 픽셀을 주변 정보의 평균값으로 채우고, 손상된 표면을 매끄럽게 복원한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물이 과거의 원형이 아닌 존재한 적 없는 ‘그럴듯한 과거’라는 점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의 시간 리듬을 흉내 내거나, 능가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간성을 구축한다. 이제 작가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인류의 진화 속도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데이지-체인-아고라〉(2023)에선 기원전 260만 년 전의 올도완 석기부터 현대인의 도구 스마트폰까지, 기술 도구의 계보를 상상적으로 구성한다.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복수의 인물들은 직렬로 연결된 데이지 체인(daisy chain)처럼 둥글게 둘러앉아, 계보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인공지능은 각각 고고학, 디자인, 환경 과학 등 인류 지성의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석학으로서 인간을 대신해 지적 토론을 수행해낸다. 인간이 부여한 지식과 관점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안에서 자동화된 방식으로 재조합되고, 새로운 담론처럼 다시 등장한다. 그렇게 표상은 실재를 덮어버리고, 도구의 진화는 선형이 아닌 가속의 곡선을 그린다. 이 무한한 리믹스의 회로 속에서, 인류의 진화는 예측 불가능한 서사를 따라 흘러간다.   〈루시 1.0〉(2024)에 이르러선, 인류의 진화와 기술 진화는 하나의 축 위에 만나게 된다.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루시의 해골에 스마트폰이 가로질러 꽂혀 있고, 스마트폰 내부에서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되짚는 루시의 읊조림이 들려온다.  루시는 언어가 문화권마다 분화되기 이전의 원초적 발화로 거슬러 올라가듯, 특정 성별이나 인종에 귀속되지 않는 목소리로 한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중국어를 복합적으로 뒤섞어 이야기한다. 루시의 웅얼거림은 점차 동사·명사·형용사 순으로 구조를 갖추는데,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 인류의 궤적을 압축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인류와 기술의 계보를 상기시키는 루시의 모습은 근미래에 등장할 포스트 휴먼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술로 인간은 다시 쓰이며 기술의 계보 속에서 태동한다. 글 김효진 @mochamalcha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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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추수(TZUSOO) 1 <에이미의 멜랑콜리(사이보그 선언문)>(2021) 2 <에이미의 멜랑콜리(에덴)>(2021) 3 <나의 아쿠아리움: 제0의 성>(2020) 4 <아가몬: 미끄러운 발코니>(2023) 5 <아가몬: 줍는 순간>(2023) ‘허물어지는 꿈’ 디지털 속 가상은 물리 세계의 질서를 반영하며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을 꿈꾼다. 추수의 작업은 계속하여 이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시도를 보여준다. <에이미의 멜랑콜리>(2021) 속 에이미(Aimy)는 본래 한 AI 음악 회사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처음 제작을 요청받았을 때 작가는 제안을 거절했다. 음악 회사 측은 전형적인 여성 아이돌의 모습을 가진 캐릭터를 기대하였으나, 그는 게임을 좋아하면서도 늘 그 안의 캐릭터들이 가진 전형성에는 거부감을 느껴왔기에 현실 세계의 한계를 디지털로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이 있다면? 나아가 ‘그녀’조차 벗어던질 수 있는 정체성이 된다면? 위와 같은 질문에서 탄생한 에이미(Aimy)는 낮에는 약 50곡의 저작권을 가진 가수 에이미 문으로 활동하지만, 밤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서사 속에서 부유한다.   작가가 장어, 달팽이, 지렁이, 거머리, 플라나리아와 같은 자웅동체 동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성(sex)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는 인간의 고집은 오히려 ‘자연적’이지 않다. <나의 아쿠아리움: 제0의 성>(2020)은 생물학적 몸을 가진 존재들이 이분법적 정체성을 거부하며 서울이라는 거대한 아쿠아리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그들의 곁은 자웅동체 생물들이 지키고 있다. 자웅동체의 에너지는 <아가몬>(2023) 페인팅 시리즈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성(sex)과 연관되는 형태로 진화하여 나타난다. 추수는 예술가가 되는 것만큼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왔지만, 두 가지를 함께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술가의 정체성을 위해 엄마가 되는 것은 미뤄질 수 밖에 없었으나, 예술가의 삶에 집중하는 것은 작업을 자식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추수의 바람은 디지털 세계를 거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데, 그중 <아가몬> 페인팅 시리즈는 현실 세계에서 물질로서 모습을 갖추기 전 먼저 태어난 평면들이다. 작가는 ‘아가몬’을 오르가즘의 순간 탄생한 몬스터라고 부른다.   추수의 작업에서 꾸준히 읽히는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매끈한 서사에서 탈출할 자유, 재생산에 참여할 자유, 퀴어성을 실천하기 위해 몸에서 벗어날 자유, 함께 침대에 갈 남자를 고를 자유,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자유. 그에게 디지털은 자유를 실천할 창이며 동시에 그의 실제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 박한비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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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선점원(Sungermone) 1, 2 〈핑크박스〉(2025) 3, 4 〈KHIVI〉(2025) 5 〈비공식비〉(2025) ‘Beyond the Glance’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끝없이 이어지는 스크롤 속에서 흘러간다. 쇼츠, 밈, 릴스처럼 쉴 새 없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들은 단 몇 초의 시선으로 판단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누군가를 평가하고 단정 짓는다. 실제가 어떤지 확인할 새 없이 내려지는 이 판단은 때로는 날카롭고, 종종 폭력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판단의 순간에서 묘한 우월감이나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게 굳어진 시선은 익숙한 태도가 되고, 타인을 판단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 반복은, 하나의 문화처럼 공유되고 확산된다. 그렇게 우리는 실제를 마주할 기회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익숙해진 것은 ‘응시’가 아니라 ‘넘김’일지 모른다. 〈핑크박스〉(2025)는 SNS에 드러나는 비난과 단정의 문화를 입체화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감정이 앞서는 반응, 군중의 공격성에 주목한 이 작업은, 온라인에선 익숙하지만 실물로는 낯선 장면을 형상화해 불편함을 유발한다. 중심부의 핑크박스는 콘텐츠가 처음에 담고 있던 의미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얼굴들에 둘러싸이며 점차 가려지고 왜곡된다. 〈KHIVI〉(2025)는 이미지와 실재, 정면과 측면의 간극을 형상화한다. 정면에선 평범한 표정이 보이지만, 시선이 옆으로 이동하면 고통스러운 신체가 드러난다. 작가는 조각의 구조를 통해,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실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말한다.  〈비공식비〉(2025)는 전시 제목 ‘우리 시대의 비공식적 역사’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작가는 공동체의 기억을 담는 ‘비석’의 형식을 빌려, 그 위에 수많은 QR 코드를 새겼다. 관람자가 이를 스캔하면 밈, 짧은 영상, 소셜 미디어 등 사적인 디지털 조각들이 화면 위에 펼쳐진다. 이 장면들은 집단적 기억보다는 빠르게 소비되는 ‘순간’에 반응하는 오늘날의 감각을 보여준다. 잊혔던 이미지는 다시 떠오르고,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신 또한 이 시대의 스쳐가는 정보와 이미지의 흐름 속에 있음을 체감한다.  선점원은 이러한 흔적을 시간을 견디는 물리적 형상에 새긴다. 과거에 위대한 이름과 사건만을 담았던 비석의 형식 위에, 지금은 스쳐가는 코드와 사적인 이미지가 새겨진다.  이러한 시도는 기록의 위계에 균열을 내고, ‘무엇이 기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비공식비〉는 지나간 장면들이 잠시 자리를 빌리는 곳이자, 기록 밖의 개인의 시간과 감각을 불러내는 비공식적 기념비다. 이미지가 빠르게 소비되고, 관계조차 스쳐 지나가는 시대. 선점원은 익숙한 시선을 멈춰 세우려 한다. 그는 누군가의 얼굴 위를 무심히 넘기던 손끝을 붙잡아, 일상의 이미지를 살짝 비틀고 관람자의 감각을 흔든다. 그 순간, 시선의 주도권 역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낯설어진 장면 앞에서, 작가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은 채 지나쳐왔는가.         글 권소연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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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머피염(Murphy Yum)   1 〈Aqua Pouch (Privas)〉(2025) 2, 3 〈Changelings〉(2021) by Stand Alone Complex(스탠드얼론 콤플렉스) @stand_alone_complex__ 4 〈Sweet Summer Nightmare〉(2025) by Stand Alone Complex(스탠드얼론 콤플렉스) @stand_alone_complex__ ‘Contemporary Fairy Tales’     〈Aqua Pouch (Privas)〉(2025)는 프랑스의 아시안 식료품점 쇼윈도에서 마주친 두 음식의 기묘한 조합에서 출발한다. 푸른 형광등 아래 멀찍이 놓인 두리안과 미소된장 패키지는 그 자체로 조형적 낯섦을 자아내며, 우리가 고민 없이 소비해 온 것들에게 은밀히 내재된 서사적 생명력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 장면을 기민하게 포착하여 그날의 쇼윈도 속 풍경을 비스듬한 시선으로 제시하고, 바삐도 권태로운 일상 아래 멸종된 타자성의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때 우리는 나 자신이 두리안과 미소 둘 중에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우연히, 무해하게, 같은 공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러한 사물 간의 병치 감각은 유럽 민속 설화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데스크톱 다큐멘터리’ 형식의 〈Changelings〉(2021)을 통해 이어진다. 요정이 인간 아이를 낯선 존재로 바꿔치기한다는 오래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자아감이라는 시대상과 맞닿아 있다. 특히 바꿔치기의 모티프는 ‘리본돌(reborn doll)’이라는 실물 아기 인형과 연결되는데, 이 인형은 단순한 수집품에서부터 아이의 상실을 경험한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에게 애착과 치유의 대리 존재로 자리한다. 인간과 비인간,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사이보그적 상상력은 아카이빙된 신비로운 이미지와 커뮤니티의 댓글이 혼합된 장면들을 통해 관습적인 돌봄의 의미를 확장한다. ‘존재하지 않지만 감각되는’ 마법적 존재의 가능성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 수 있을까?   〈Sweet Summer Nightmare〉(2025)은 동일한 개념 축 위에서 감정의 밀도를 높이며 관념의 전환을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남성형 괴물로 표상되는 늑대인간의 이미지를 각기 다른 2명의 ‘어머니’로 치환하면서 모성과 타자성이 중첩된 두 개의 서사를 교차시킨다. 같은 디렉션으로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두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아이와 반려견을 훔치듯 조심스레 다가가지만, 장면은 돌봄의 제스처로 전환되며 긴장감이 해소된다. 정형화된 이미지의 전복 속에서 인간과 괴물, 가족과 타자, 보호와 침입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결국 돌봄 노동의 조건과 복잡성에 대해 되묻게 된다. 늑대인간이 아이를 돌보는 장면은 어딘가 이질적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밤, 달콤 쌉싸름한 맛의 페어리 테일은 우리가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던 위계와 모성에 관한 관념을 환상적이고도 기이하게 그려낸다.   세 작업은 관람자에게 일관된 질문을 던진다. 부조화한 사물, 유령적 이미지, 변신하는 신체를 통해 잔존하는 편견에 여백을 만들고, 타자의 감각이 머릿속으로 흘러들게 한다. 이처럼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남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말로 남기지 못한 감정이거나, 형태를 잃은 채 떠도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머피염은 그런 존재들을 불러낸다. 이들은 모두 기록되지 않았지만 감각되어 버린 것으로서, 삭제된 적 없지만 저장된 줄도 몰랐던 장면들이다. 동시대의 페어리 테일은 그렇게 비밀스레 쓰이고 있다. 글 김영원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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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류성실(Sungsil Ryu) 1, 2 〈BJ 체리장 2018.4〉(2018) 3 〈BJ 체리장 2018.9〉(2018) ‘허구의 실재, 진실의 허구: 욕망과 결핍이 만드는 디지털 신뢰’ 오늘날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 화면 속에서 목소리를 얻고, 진위를 가늠할 수 없는 정보를 퍼뜨리는 장면에 익숙하다. 가짜 뉴스, 할루시네이션, 조작된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디지털 환경에서 진실은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류성실의 ‘BJ 체리장’이라는 이 가상의 존재는 어떻게 믿음과 욕망을 매개하며, 실제의 조건을 교란하는지를 드러낸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 음성 변조된 목소리, 시청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어투. 거기에 핵미사일 경보와 ‘일등 시민권’이라는 자극적 메시지를 시종일관 확신에 찬 어조로 반복하는 이 1인 방송은, 빠르게 온라인에 확산된다.   댓글에서는 영상의 사실 여부를 토론하고, 어떤 이들은 장난인지 진심인지 그녀를 신봉하기까지 한다. 이윽고 체리장을 사칭하는 계정들이 등장 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인물은 영향력을 획득한다. 체리장은 그 자체로 디지털 환경 속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  〈BJ 체리장 2018.4〉(2018)는 ”핵미사일 발사“라는 국가 재난 메시지로 시작하며, 풍수지리와 ’에네르기파‘ 같은 비과학적이고 신빙성 없는 자료로 한국을 투하 지점으로 지목한다. 종말을 대비해 ’하늘나라 시민‘이 되라며 후원을 유도한다.      〈BJ 체리장 2018.9〉(2018)에서는 이전에 핵미사일을 피해 해외로 간 체리장이 한국행 일등석 체험 영상을 통해 ’일등 시민이 되는 법‘을 설파한다. ‘항상 웃자’, ‘돕고 살자’, ‘EQ를 기르자’라는 세 가지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이타적인 삶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금전적 후원을 유도하며, 특정 후원자를 ‘일등 시민권자’로 부각하는 허위적 구도를 구축한다.   조악한 영상 편집과 과장된 연출 등은 명백히 ’가짜‘처럼 보이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능숙한 화법, 전문성 있어 보이는 자료들은 그럴듯한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제시되는 문서들은 사실 무관한 자료를 모은 짜깁기에 불과하지만, ’인쇄된 아날로그‘라는 형식이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더 진짜처럼 받아들여진다. 허술함과 권위적 연출이 결합할 때, 믿음은 더 쉽게 작동한다.    또한, 과장되고 자극적인 성공의 이미지와 조잡한 그래픽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논리적 근거가 없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주입한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이를 신뢰할지 판단할 여유를 빼앗고, 의도적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시간‘은 허구적 세계에서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작동한다. 영상 시작 전 초읽기, 머리에 장착된 초시계, 지속적인 비프음은 현실의 시간처럼 체감되어 관객을 긴장과 몰입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긴급성은 홈쇼핑의 타임세일이나 FOMO(Fear of Missing Out) 전략과 유사하게 작동해 시청자의 즉각적 반응을 유도하며, 관객의 판단과 심리적 거리를 마비시킨다. 작가는 정보의 과잉과 감각의 조작이 어떻게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로 전환하는지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체리장의 정체나 주장에 대한 신뢰성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오로지 성공과 부에 대한 욕망만이 관객에게 강하게 남는다.      결국 작가는 ‘어떻게 허구가 진실처럼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명백하게 조작된 이야기는 설득력 있는 이미지와 정보로 치장되어,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관객의 결핍과 욕망을 자극한다.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우리는 진실의 실체보다도 욕망에 기반한 믿음과 몰입을 통해 이를 현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체리장은 허구적 장치를 통해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교란하면서, 우리가 신뢰하고 믿는 ‘진실’이 얼마나 쉽게 구성되고 변형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낸 허구에 신뢰를 부여하며, 그것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글 최재희 @jaehiic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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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
김웅현(Woonghyun Kim) 1 <리보솜>(2021) 2 <힌덴부르크 라운지>(2022) 3, 4 〈A side Skin〉(2025), 〈비닐,베기의알고리즘_A side〉(2020) 5 〈B side Skin〉(2025), 〈비닐,베기의알고리즘_B side〉(2020) ‘한데 구겨진 현실과 픽션’ 디지털 세계의 서사는 늘 실재를 참조하지만, 그 양상은 단선적이지 않고 다층적이다. SNS, 웹, 게임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개인은 일상의 사소한 사건조차 픽션처럼 소비하고, 반대로 가상을 실재처럼 수용한다. 김웅현은 이러한 유동적인 조건 속에서 허구와 현실, 게임과 뉴스,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교란하며 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리보솜〉(2021)은 기생식물 라플레시아의 독특한 생식 방식인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모티브로 삼는다. 이는 유전자가 직접 진화하지 않더라도 다른 식물의 유전 정보에 편승해 살아가는 생존 방식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다가왔을 때, 라플레시아는 연약한 인간에게마저 기생할 수 있을까? 영상 속 인간은 자신의 피부색을 잃고, 라플레시아를 위해 ‘완벽한 숙주를 위한 식생 도감’을 기록하는 존재가 된다. 이 장면은 결국 인간이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개체로 전락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어 〈힌덴부르크 라운지〉(2022)는 1937년 독일의 비행선 힌덴부르크가 폭발한 사고에서 출발해,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붙들린 인간을 조명한다. 영상에는 마치 사람인 양 전화를 받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구겨진 종이가 등장한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한 장의 종이가 그러하듯 우리의 삶 또한 쉽게 구겨지고 만다. 구겨진 종이는 미래를 손에 쥐려는 우리의 욕망을 닮았고, 그 주름진 표면에는 어떤 기술로도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가 고요히 내려앉아 있다. 〈A side Skin〉(2025)과 〈B side Skin〉(2025)은 비닐 조형물로, 각각 영상 작품 〈비닐,베기의알고리즘_A side〉(2020)와 〈비닐,베기의알고리즘_B side〉(2020)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SNS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세로 영상의 형식과 인터페이스를 차용한 두 영상은 ‘숏폼’에 가까운 방식으로 제시된다. 인간도 결국 곤죽처럼 렌더링되는 대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작가의 상상은 3D 그래픽 툴의 렌더링 머신과 실제 동물의 살처분 과정이 공유하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두 과정은 모두 어떤 것을 기계적 통계와 매뉴얼로 환원하며, 그 고유성을 소거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이렇듯 김웅현은 가상을 매개로 실재를 말하고, 실재를 빌어 가상을 재구성한다. 그 구획은 뚜렷하게 나뉘지 않고 도리어 의도적으로 모호해진다. 그렇게 구겨진 현실과 픽션은 서로의 경계를 지운 채 하나의 감각으로 우리 앞에 겹쳐진다. 그의 작품은 흐릿하게 교차한 사실과 상상의 접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묻는다. 글 박민지 @cnozv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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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