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언제 처음 달렸을까?
그건, 태어나고 나서
걷기 시작하고
뛰기 시작한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정말, 의식하고 뛰기 시작한 것은
언제 일까?
어느 새벽, 퇴근길.
차는 끊기고
왠지 모르게 막상 뛰고 싶었다.
얼마나 뛰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건
집에 도착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는 것.
물론,
밤하늘 아래
도시 야경을 보면서
달리는 그 기분까지도.
그때였을까.
내가 '마라톤'에 관심 가진 것.
- 좋은 신발이,
나에게 좋은 신발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신발이,
'좋은 신발'이다.
나이키 알파플라이/베이퍼플라이 신발들은 성능 좋았지만, 물집과 무릎 뒤틀림 현상을 경험하고 다 팔아버렸고,
이번에 나온 미즈노의
웨이브 리벨리온 프로를 신고
뛰었다가 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는 무리하지 말고
뛰고 오는 걸로 계획 변경.
신발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통증/부상과 함께
나의 신체 능력을 약하게 만든다면
정말, 좋은 신발이라 할 수 있는가?
신발은 뛰는 데
보조 역할을 해줘야지,
신발이 나를 뛰게 하는 느낌은
분명, 좋지 않다.
- 목요일 저녁,
엑스포 광장에서 뛰고 있는데,
남학생 무리 중,
한 명이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갑자기 내 옆에 붙어
내 속도와 맞게 뛰기 시작한다.
또 다른 학생도
잠시 나마 뛰는 친구의
속도를 맞춰가며
자전거를 탄다.
어느 지점을 돌 때,
그 친구의 무리가 또 있었고
그곳에 자전거를 탄 학생이
소리 지른다.
"야, 같이 뛰자"
하지만,
한 번 바라보곤
다들 자기들 얘기에 빠져든다.
자전거를 탄 학생은
"저 XX들."하며
웃어 넘긴다.
자전거 탄 학생 또한
멀어져 가며,
우리 둘만 달렸다.
문득,
뛰는 학생에게 물었다.
"왜 뛰어요?"
학생은,
"심심해서요."
광장 한 바퀴를 돌고
저 멀리
자전거 속도 안내판이 보이자,
나는 '전력질주'하라고
말해주었다.
남학생은
나를 뒤돌아 보며
신이 나서
전력질주한다.
광장을 몇 바퀴 더 돌았다.
자전거 속도 안내판이
있던 보도로
그 남학생이 반대로 뛰고 있다.
남학생은
나에게 소리친다.
"안녕하세요."
나 또한,
"안녕하세요."
내가 뛰는 이유 중
하나일까.
그 친구에겐
달리기가 그저,
심심풀이보다
더 나은 '의미'를 가지길 바라며.
나는,
계속 달렸다.
- 꿈을 꾼다.
현실과 꿈이라는
두 개의 인생.
하나는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한다.
동생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막막한 어둠 속을
매번 빠져있는 것인가?
아니, 꿈을 꾸지 않는 것은
그냥 쉬는 것인가?
꿈은
내가 만난 적 없는
가본 적 없는 곳을 보기도 한다.
나는 얼마나 꿈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왜 그런 꿈들을 꾸는 것인가?
왜 우리는 무작위로 만들어진 허상을
보아야만 하는가?
좋든 싫든,
아무 생각이 없든,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어쩌면,
눈을 뜨고도 감는,
두 가지 인생을
번갈아 살아간다.
- 세상은 '긍정'의 결과물이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지금 세상의 모습이다.
- "재밌다."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낄 때,
그렇게 얘기한다.
그럼, 재밌다의
정확한 느낌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수치로 1~10까지
'재밌다'의 정도를
알려 달라 말하면
쉽게 얘기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재밌다의 정확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달라고 하면
왜 표현하기 어려울까?
느끼는 것은
단순히, 언어로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 한다.
그렇지만,
뇌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철학자 데카르트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쉽다.
'나를 설명해달라,'
'생각을 설명해달라,'
'존재를 설명해달라.'
- 굳이 '관심' 받기 위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글보다,
세상은 갖가지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이 무수히 많다.
'표현에 집중하자.'
#철학 단상2
#글쓰는 습관 들이기
3 year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