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야 개인전 <‘나’라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2025.03.28(금)-04.04(금)
남산갤러리(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109 1층)
@namsan_library
[전시 서문] 사람은 혼자 쓰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쓰인 문장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졌을 때, 과거로부터 흘러온 ‘나’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글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은 피부 위에, 몸의 감각 속에도 새겨진다. 낯선 감촉에 소름이 돋고, 익숙한 온기에 마음이 놓인다. 어떤 기억은 스쳐 지나가는 냄새 하나로 되살아나고, 어떤 감정은 손끝의 촉감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도 기억한다. 마치 오래된 일기의 한 줄이 잊고 있던 순간을 소환하듯, 우리 몸 역시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기록을 생애의 주기로 확장하여 풀어낸다. 한 장의 종이가 뜯겨 나가고, 또 한 장이 그 뒤를 잇는다. 모든 것을 투영하던 종이는 얼룩을 남기고, 찢기기도 하며 하나의 생애로 연결된다. 태아에서부터 죽음까지, 삶의 각 시기는 40m의 길이에 140장의 서로 다른 재질의 페이지가 한장 씩 배열된다. 트레이싱지, 부드러운 천, 피부를 연상하게 하는 펠트. 각 재질이 대변하는 시간들은 지나온 시간의 감각을 환기하며, 삶의 밀도를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손상의 기록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새겨진 경험이며, 성장의 증거이다. 일정한 패턴 속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며, 반복된 흔적들은 점차 다른 형태로 변모한다. 삶은 단절된 순간의 연속으로 흘러간다. 태아기의 페이지는 불확실한 흐름 속에서 주변의 다양한 가능성을 흡수하며 형성된다. 유년기의 페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결을 지니며, 기억은 쉽게 번지고 지워진다. 청년기의 장은 거친 질감 위로 변화의 흔적을 남기고, 장년기에 이르면 삶은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 같은 형태의 조각들이 반복되지만, 그 내부에는 점차 굳어지는 흔적이 남는다. 익숙한 흐름 속에서도 균열은 존재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가 쌓여간다. 노년기의 페이지는 가장 얇고 연약하지만, 깊이 새겨진 흔적들을 지닌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모든 것은 흩어져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 전시는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조각이며, 지나온 날들의 증거이다. 우리는 매일 페이지를 넘기며, 그날의 감각을 새기고, 지나온 시간을 흩뿌린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흩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찢긴 종이의 단면처럼, 생의 모든 순간은 연결되어 있으며, 흔적은 남아 흘러간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당신의 어떤 날과 맞닿아 있는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