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불균형이 있는데 이정도면 일상생활하는데는 지장은 없어요 선수하실거 아니잖아요?
2024년 10월, 오른쪽 햄스트링이 4cm 파열됐다.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심장 문제 때문에 수술은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제 오른쪽과 왼쪽 허벅지 근육의 불균형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월 400km 이상을 뛰고, 매주 장거리를 소화하면서
제마에서 최소 싱글, 내심 서브3까지 꿈꾸던 나한테는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기록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달리는 감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이전의 몸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달리고 싶어서, 무너진 좌우 밸런스를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지면 접촉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버텼고,
그 대가로 다른 부상들이 연달아 찾아왔다.
한때는 정말 달리기를 접을까 고민했다.
2025년 오사카를 뛰고 나서는 더 그랬다.
30km가 넘어가면 예전의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저 벌을 받는 것 같은 기분만 남았다.
그래서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 난리를 쳤다.
그때 진작 확 접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미 신청해둔 2025년 동마가 아까워서 다시 나갔다.
기록은 3시간 28분. 만족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느꼈다.
아, 감각이 돌아오고 있구나.
햄스트링은 여전히 아프고, 후반에 무너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지만
큰 부상 이후 처음으로 ‘다시 달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과몰입이 시작됐다.
온갖 대회를 신청했고, 사실 그중 3분의 1은 나가지도 못했다.
다시 찾아오는 런태기와 의욕상실.
다행이었던 건 회사가 석촌호수 쪽으로 이사한 일이었다.
내 평일 훈련 루틴 대부분이 석촌호수 달리기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은 조깅을 즐겼다.
그래서 누군가를 따라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끔은 정말 잘 뛰는 사람이 나타나 4:00/km 페이스로 지나가는데,
그런 사람을 따라가 보는게
이상하게도 재밌었다.
그 작은 성공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다시 달리고 싶어졌다.
도쿄게임쇼 출장 때 사온 아식스 메가블라스트.
석촌호수 우레탄 길에서는 카본화가 늘 조금 과하다고 느꼈는데,
메가블라스트는 딱 좋았다.
그 신발로 대부분의 훈련을 소화했고,
가끔 카본화를 신으면 페이스가 5초 이상 빨라졌다.
작년 10월, 하프 대회를 두 번 뛰었다.
서울달리기에서는 이유도 모르게 PB를 세웠고,
경주동마에서는 1시간 34분.
그때의 나로서는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제마.
DNF.
욕심이 너무 컸다.
무조건 싱글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3시간 10분 페메만 미친 듯이 쫓아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페이스가 빨랐다.
하프를 넘기자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됐고,
잠실대교를 건너며 결국 포기했다.
상실감도 컸지만, 그보다 제마의 시그니쳐 업힐이
햄스트링을 너무 아프게 했다.
그 뒤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 무렵부터
@limit_jun 과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뛰게 돼서
스피드 훈련이 조금 가능해졌다
나는 다시 가볍게 뛰는 것,
케이던스를 올리는 것,
기본적인 감각을 되찾는 것에 집중했다.
확실히 석촌호수의 우레탄 길은 내게 정말 좋은 훈련장이었다.
1월 이부스키 마라톤.
작년에는 서브4도 못했던 그 대회에서
올해는 3시간 28분 정도로 들어왔다.
초반 12km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오르막,
그 뒤에도 다리를 계속 갉아먹는 업다운,
게다가 비와 강풍까지 쏟아졌는데
이상하게도 후반에 힘이 남아 있었다.
그때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끝난 건 아니구나, 하고.
2월 오사카에서는
스피드의 가능성을 봤다.
4:20/km로 뛰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어? 이거 할 만한데?”
정말 오랜만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3월 동마.
진짜 농담이 아니라,
그날의 모토는 “뛰다 죽자”였다.
이번에도 싱글을 못하면
아마 평생 못할 것 같았다.
마음이 완전히 꺾일 것 같았으니까.
25km 즈음 에너지젤을 잘못 먹어서 켁켁거렸고,
심박은 180이 넘는 상태가 계속됐다.
그 순간 시계를 암슬리브로 덮었다.
기록도, 숫자도 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집중만 하기로 했다.
들어올 때는 눈물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눈물도 안 나더라.
서브3.
아마 나한테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스피드도 부족하고 햄스도 아프고 심장도 정상이아니니까
그래도 딱 한번만 해보고 싶다.
한번 서브3하면 그 다음부터는 서브4를 목표로 달릴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