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 04_AND
LOVE EXPRESS의 네 번째 플리마켓 플랫폼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흐름, 계절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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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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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 Date : 04.03 (금) - 04.05 (일)
- Time : 13:00 - 21:00
- Venue : 용산구 이태원동 141-3 러브트레인
[EVENT]
- 현장 구매 고객 대상 자체 제작 키링 제공
(선착순 한정 / 소진 시 마감)
[NOTICE]
- 행사 당일 주차 공간은 별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공영주차장 및 대중교통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 결제는 각 부스별 개별 진행되며, 결제 수단은 부스마다 상이할 수 있습니다.
Helmut Lang은 195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정규 패션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독학으로 옷을 익혔다.
초기에는 지인들을 위해 옷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며 제작 경험을 축적했다.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1977년 빈에서 맞춤 중심의 스튜디오를 열어 패션에 대한 감각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빈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1986년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고, 그의 파리 데뷔는 통상적인 ‘신인 디자이너의 등장’과는 결이 달랐다.
1980년대 파리의 화려했던 컬렉션과 달리 헬무트 랭의 옷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색은 제한적이었고 실루엣은 날카로웠으며, 옷은 신체를 드러내기보다 통제하는 구조를 취했다.
이 차이는 곧 주목을 받았고, 그는 빠르게 ‘파리 안의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이르러 데님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핵심 언어가 된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의 파리 시기는 헬무트 랭에게 있어 확립의 시간이었다. 그는 이 시기에 자신의 미학을 국제적으로 증명했고,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이 시기는 그가 이후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이동하게 되는 결정이 준비된 시간이기도 했다.
즉, 파리는 헬무트 랭을 만든 무대였지만, 그를 붙잡아두지는 못한 공간이었다.
1998년은 헬무트 랭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급진적인 전환점이다.
그는 파리 패션위크를 떠나 뉴욕 패션위크로 이동하는 동시에, 패션 시스템의 작동 방식 자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선택을 한다.
당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파리와 밀라노 일정에 맞춰 컬렉션을 발표하던 관행과 달리, 헬무트 랭은 유럽 컬렉션보다 앞선 시점에 뉴욕에서 쇼를 열었다.
이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패션의 중심이 반드시 유럽일 필요는 없다’는 선언이었고,
글로벌 패션 캘린더의 위계를 처음으로 실질적으로 흔든 사건이었다. 같은 해 그는 또 하나의 전례 없는 행동을 한다.
Helmut Lang은 1998년 뉴욕 컬렉션 시기, 런웨이·잡지·빌보드 대신 뉴욕 택시 외부 광고(taxi-top / taxi-side ads)를 사용함과 동시에
컬렉션 이미지를 인터넷을 통해 선공개한 것이다.
당시 패션은 여전히 쇼와 프레스, 바이어 중심의 폐쇄적인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고, 온라인은 홍보 수단으로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않던 시기였다.
헬무트 랭은 컬렉션을 특정 장소와 시간에 묶어두지 않고 이미지 자체를 독립적인 발표 매체로 전환시켰다.
이는 오늘날 디지털 런웨이와 온라인 드롭, 실시간 컬렉션 공개의 원형으로 평가되며, 패션이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결정적 선례로 남는다.
1999년 브랜드는 프라다 그룹의 지분 투자를 받으며 대형 럭셔리 그룹의 구조 안으로 편입된다.
이는 헬무트 랭에게 물리적 확장과 자본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의 철학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떠나며 패션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컬렉션이나 협업 없이 조각과 설치 미술로 활동 영역을 전환하며, 패션과는 분리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Helmut Lang’이라는 이름은 브랜드로서 계속 존재하지만, 그 이름이 지칭하던 패션 세계는 이 시점을 끝으로 완결된다.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학과
•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는
1663년 설립된 벨기에 앤트워프 소재의 왕립 예술학교로,
Central Saint Martins(UK), Parsons School of Design(USA)과 함께 패션 교육을 대표하는 핵심 기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곳 패션학과에서의 졸업은 단순한 학위가 아니다.
졸업률 약 10%의 선별 구조 속에서 끝까지 자신의 세계관을 지켜냈다는 증명이며, 졸업 컬렉션은 패션계에 던지는 첫 번째 선언문에 가깝다.
•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 Alumni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과 출신 디자이너)
- Martin Margiela(마틴 마르지엘라)
- Kris Van Assche(크리스 반 아쉐)
- Veronique Branquinho(베로니크 브란퀸호)
- An Vandevorst(안 반더보르스트)
↓Antwerp Six(앤트워프 식스)
- Ann Demeulemeester(앤 드뮐미스터)
- Dries Van Noten(드리스 반 노튼)
- Walter Van Beirendonck(월터 반 베이렌동크)
- Dirk Bikkembergs(더크 비켐버그)
- Dirk Van Saene(더크 반 샌)
- Marina Yee(마리나 이)
• Antwerp Lineage(앤트워프 계보)
- Raf Simons(라프 시몬스)
- Haider Ackermann(하이더 아커만)
- Glenn Martens(글렌 마틴스)
- Demna Gvasalia(뎀나 바잘리아)
- Filip Arickx(필립 아릭스)
일본 디자이너에 대한 동경과 미적 감각이 잘 통했던 마틴 마르지엘라와 제니 메이렌스는 1987년 8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하고 1988년 첫 공간을 시작했다.
1980년대 말, 당시 대부분의 쇼룸은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색 가구로 꾸며진 산업적인 공간이 주류였고, 인테리어에서 차별화를 고민하던 마틴 마르지엘라와 제니 메이렌스는 흰색을 선택했다.
예산이 부족했던 그들은 버려진 가구와 구세군 거리에서 구한 가구들을 사용해, 디자인팀과 이를 모두 흰색 페인트와 흰색 천으로 덮어 공간을 완성했다.
1988~89년의 첫 공간은 파리의 ‘표시 없는 흰 공간(unmarked white space)’으로 운영되었으며, 당시 주소는 특정 매장 주소로 공표되지 않았다.
이는 브랜드가 공간 자체의 정체성과 익명성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마르지엘라의 첫 공간은 정식 쇼룸이나 부티크가 아니라, 작업실과 판매 공간, 프레젠테이션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장소였다.
United by a shared admiration for Japanese designers and a closely aligned aesthetic sensibility, Martin Margiela and Jenny Meirens founded Maison Martin Margiela in August 1987 and began working on their first space in 1988.
In the late 1980s, most showrooms were defined by industrial interiors—grey concrete walls and black furniture dominating the landscape. Seeking a clear departure from this norm, Margiela and Meirens chose white instead. With limited resources, they furnished the space using discarded furniture and pieces collected from Salvation Army streets, which they covered entirely in white paint and white fabric together with the design team.
The first showroom of 1988–89 operated as an “unmarked white space” in Paris, with no official address publicly disclosed. This was an intentional decision, reflecting the brand’s desire to express identity and anonymity through space itself.
Margiela’s first space was neither a conventional showroom nor a boutique, but a place where the boundaries between atelier, retail, and presentation remained deliberately blurred.
리바이스 레드는 1999년 “미래의 데님을 창조한다”는 컨셉 아래,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 리키 코프(Rikke Korff)가 이끄는 리바이스 유럽 디자인팀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당시 마르지엘라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입체 재단을 통해 기존 청바지의 개념을 뒤집는 데님을 만들었습니다.
리바이스 레드는 실험적이고 높은 기술을 요하는 컨셉으로, 참신한 디자인과 전통적인 요소를 결합한 컬렉션입니다.
그중에서도 리키 코프(Rikke Korff)가 주도한 리바이스 레드(Levi’s RED) 프로젝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가 핵심 기간입니다.
리키 코프(Rikke Korff)는 리바이스 유럽 디자인팀을 이끌며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데님 라인을 개발했고,
특히 1999년 첫 리바이스 레드 컬렉션 런칭과 2002년까지의 주요 시즌들 을 총괄했습니다.
Levi’s RED was launched in 1999 under the concept of “creating the denim of the future.” It was developed by the Levi’s Europe design team led by Danish designer Rikke Korff. At the time, the designs were so innovative that there were even rumors of Margiela’s involvement. Through three-dimensional tailoring, they redefined the concept of traditional jeans.
Levi’s RED is a conceptual line that combines experimental and highly technical approaches with traditional denim elements.
The core period of the Levi’s RED project, led by Rikke Korff, spans from 1999 to 2002.
During this time, Rikke Korff, heading the Levi’s Europe design team, developed an avant-garde and experimental denim line.
She was especially responsible for the launch of the first Levi’s RED collection in 1999 and oversaw the major seasons through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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