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공부 중 2
1. 몽타쥬는 의미가 침전되는 시간. 말과 감정의 울림을 집약적 쇼트 구성으로 시침질 해보자.
2. 그러기 위해서는 맥락, 분위기의 구성이 중요하다. 어떤 흐름 위에 시청자들을 태울 것인가.
3. 그래 나는 버스기사, 당신은 승객. 음악을 틀고 해가 지는 곳으로 빠르게 달린다. 열리다 만 창틈으로 옅게 풀냄새가 나고 이따금 들썩이는 엉덩이가 기분 나쁘지 않다. 내린 손님은 지나간 버스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갈길을 간다.
4. 인터뷰를 통해 주제가 말해진다. 몽타쥬는 그 주제를 체감하게 만든다. 즉 이해한다면 느낄 수 있게.
5. 정보의 압축은 기본, 감각의 확장을 설계하는 것이 쌉고수다.
6. 다른 층위를 여는 인터뷰이의 문장을 찾고 확장한다. ‘발산하는 느낌’, ‘좁게 찌르는 느낌’, 어떤 카드를 쓸 것인가?!
7. 블루베리 크림 베이글 먹으러 간다.
다큐 공부 중
1.리얼리티?? 더 나아가 예측 불가능성
2.흥미로운 관찰 대상의 발견/ 관찰의 재미->어떤 것이 발견되었을 때 재밌을까
3.관찰은 보는 사람이 판단하게 만든다. 나래이션은 어쩌면 너무 친절한 장치 일 수 있음. 여기서 친절은 생각을 위탁하는 행위를 말하며 생각하게 하기 보다 감상에 젖게 할 수 있음.
4.이미 알던 세계와 개념의 재발견->개인적으로 큰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건 몰랐지?”)
5.다큐의 울림은 영화같은 감정의 폭발에 기대지 않을 수 있다.
6.사람/인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욕망, 모순, 그리고 선택과 실패… 나는 어쩌면 ‘예쁜 다큐’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결론이 있고 연출로 포장된…
7.현실을 관찰하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편향된 자료의 나열은 공정한가?->아니, 상관없다. 다큐는 편향된 의견이자 사실이고 그것의 당위는 관객과 평론이 판단해줄 것.
8.설명 보다 충돌을 만든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것 자체가 새로운 설명이 될 것.
1. 예술가인가 파는 사람인가, 남의 돈으로 영상하기
5년 전에는 계약금 없이 영상을 만들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차를 서른 대 쯤 세고 나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15만키로 뛴 내 중고차와 함께 콘티를 누비며 다녔다. 이 앵글 저 앵글 대가며 고뇌하는 척을 했지만 사실 직감에 의존했고 그게 모여서 지금 ’연출‘ 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내 손에 돈을 쥐어준 사람은 이 사실을 알면 무척 황당 할 수 있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아주 가끔ㅎㅎ.
영화 감독들의 인터뷰는 별 관심 없었지만 궁금한 몇 명의 것은 가끔 찾아 보곤 했다. 그 중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봉형은 어떤 멋진 장면을 너무 찍고 싶어서 그 장면 앞뒤에 시나리오를 붙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위, 그게 중요한가? 홈쇼핑 인서트를 찍는 사람이든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든 영상인이라면 누구나 미학적이며 미쟝센을 생각한다. 대학 다니던 시절, 옆 건물 영상과 친구들은 ’Moving Image‘라고 쓰여진 과잠을 입고 다녔다. 기초 일본어 교양 수업을 들으며 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고 그게 움직인다면, 그것이 매개하는 것은 아주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업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내 상상만큼.
하고 싶은 작업? 나만의 아젠다, 죽여주는 색감, 사회적 관념을 아찔하게 줄타는 스토리, 또 무엇을 추구해야 나의 세계가 소용돌이 칠까. 오, 나는 예술하는 사람이구나. 니체를 괜히 읽었다. 혼돈은 무질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뭔데? 새로운 가치가 태어나기 ’직전‘의 상태라고 한다. 아, 혼돈은 가능성이구나. 내 혼돈에 가격을 메기고 돈을 줄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의 ’아젠다‘는 따로 있을텐데...
클라이언트와 싸우는 날이 잦았다. 작업은 곧 내 세계이며 혼란이었고, 클라이언트는 돈으로 된 질서를 휘두르는 악마같은 존재였다. 내 ’아웃풋‘에 대한 의견은 곧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수 백, 수 천만원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는 나에게서 어떤 ’효용감‘을 느끼고 싶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 했을 때는 이미 꽤 시간이 지나버린 후였다. 지금은 나락간 백종원 아저씨는 재방문률이 중요하다고 했다. 끝이 좋질 않으니 그럴수가 있나. 심지어 문의하는 클라이언트에게도 난 단호했다. ”너한테 안 팔아요“.
하지만 빈 주머니에 차가운 바람이 스미는 것을 난 견디지 못했다. 20년이 넘는 기초생활수급자 생활. 돈 없는게 지겨울만한도 한데 왜 나한테 예술병이 옮았을까.(남탓 맞다) 회사를 세웠고 이름을 지었다. ’TINTIN CREATIVE SERVICE INC‘. 나에게는 이름이자 선언이었다. 친구 김기태는 왜 자꾸 이름에 서비스를 붙이냐고 뭐라 했다. 영국 유학파 출신이라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다...
”꺾일 지언정 흔들리지 않는다.“ 머리가 깨져가며 배우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수히 꺾인 가지의 잔해들 속에서 휘어지는 법을 배웠다. 바람을 타는 법을 배운 갈대는 유려하게 흩날린다. 그게 멋이고 사회성이고 패배자 없는 승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어떤 장면을 구현하는데 힘을 쏟는다. 아직도 그게 내 원동력이니까.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고 이해를 거부하는 피드백이 오더라도 내 포트폴리오에는 디렉터스 컷을 올리는 방향으로 타협하곤 한다. 잘 파는 예술가가 되기로 했다. 5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2. 자기복제 vs 나만의 색깔
3. 창작자로써 A.I 받아들이기, 그리고 미래
4. 일을 하며 사는 것의 의미
5. 행복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