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나

@son___anna

editor in chief <BAZAAR ART> Korea Edition features director @harpersbazaar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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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아버지, 제가요. 경기도민이에요. 이번 달 바자에선 ‘서울을 떠난 일’에 대해 썼습니다. …조르주 페렉이 <공간의 종류들>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면 나는 “안정되고 고정되고 범접할 수 없고 손대지 않았고 거의 손댈 수 없고 변함 없고 뿌리 깊은 장소들이 존재하기를” 바랐으며 “기준이자 출발점이자 원천이 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곳으로 왔는지 모른다. 서울은 내게 그런 장소가 되어주지 못했다. 교외에 산다는 건 자잘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자잘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서울이든 경기도이든 주머니 사정 뻔한 월급쟁이에게 헤테로토피아는 없다. 몇 년 뒤의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서울을 떠나온 나의 시도를 부질없는 짓이라 폄하하고 싶진 않다. 페렉의 말대로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 하루도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며. #경기도민 #안나의_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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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years ago
잘 가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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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nth ago
지난 12월엔 국내서 유일하게 비앙카 센소리(맞다, TMZ의 그녀!)를 인터뷰했다. 원래 비공개로 진행하는 지면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여기엔 카메라가 없고 나는 그들의 민낯을 마주하는 유일한 목격자다. 그러나 비앙카와의 인터뷰는 그동안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진실한 대화였다. 그들은 나를 위한 ‘인터뷰 퍼포먼스’를 벌이고 나는 그녀의 유일한 관객이 되었다. 아니, 나 또한 공연의 일부였다. 미디어란 역할을 맡은 퍼포머랄까? 핏빛 전신 라텍스를 입은 비앙카는 한쪽 다리를 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마치 고양이처럼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나를 향하지만 딱 거기까지.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다. 가면을 쓴 또 다른 비앙카 센소리, 비앙카 센소리의 도플갱어다. 그녀의 도플갱어가 마치 선언문을 읽듯 비장한 목소리로 미리 적힌 한국어 답변을 읽어 내려간다. “비앙카는 늘 예술가였습니다. 다만, 그렇게 호명되지 않았을 뿐이죠.” “그녀는 자전적표현이나 직접적인 자기 서술에 큰 관심이 없어요. 종종 그녀는 비워진 자리를 대신 채우는 표지(placeholder), 즉 빈 기표가 됩니다. 사람들은 그 위에 자신의 욕망과 판단과 환상을 투사하죠.” 무슨 질문을 던져도 그녀는 결코 입을 뗄 생각이 없다.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목소리 없는 오브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눈으로 훑는다. 비앙카는 적극적으로 객체가 되었고, 나는 주저하며 그녀를 관음한다. 말하자면 그녀가 이겼다. 아주 순종적이고 지배적인 방법으로. #Repost @s_obot with ・・・ Bianca Censori Proxy Interview w/ Harper’s BAZAAR Korea (Feb Issue) ⠀ HB: 낱낱이 드러난 듯 보이지만 사실 당신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존재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요. 당신이 어떤 말투와 억양을 갖고 있는지, 웃을 땐 얼마나 피치가 올라가는지 모두 구전으로 전해질 따름이죠. 우리가 몰랐던 당신의 정체성은 이 작품에 얼마나 담겨 있나요? ⠀ BC: 비앙카의 정체성은 작품 안에 존재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그녀는 자전적 표현이나 직접적인 자기 서술에 큰 관심이 없어요. 종종 그녀는 비워진 자리를 대신 채우는 표지(placeholder), 즉 빈 기표가 됩니다. 사람들은 그 위에 자신의 욕망과 판단과 환상을 투사하죠. 그래서 <BIO POP>은 ‘비앙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의 메커니즘에 대해 말합니다. 이미지가 어떻게 순환하고, 변형되고, 문화 속에 흡수되는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 - ⠀ 비앙카는 2022년 몰타대학교에서 건축대학 학생들에게 특별 강연을 한 적 있다. 교단에 선 그녀는 당시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창조한 가상 시인인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문장을 인용하며 첫 마디를 뗐다. “과일을 먹는다는 것은 그 의미를 아는 것이다.” 사물의 의미는 머리로의 해석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겪는 것’에서 온다는 특유의 반형이상학적 태도가 담긴 이 말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추구하는 작업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긴장, 불안, 아름다움, 정복감, 취약함 혹은 그 무엇이든. 그녀는 스스로 빈 기표가 되고, 관객은 그 감각의 과실을 그저 따 먹으면 된다. ⠀ - ⠀ Interview by Son Anna (@son___anna ), Harper’s BAZAAR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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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경청만으로도 충분했던 귀한 시간. 역시 #바자아트 27번째 에디션 제임스 터렐과의 단독 인터뷰! Q. 어떤 장소든 그곳에 걸맞은 고유한 빛의 성질이 있습니다. 당신이 말했듯 같은 장비, 같은 프로그래밍을 사용해도 공간이 다르면 그 빛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빛을 다루는 예술가로서, 한국의 빛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A.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것은 1961년,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죠. 저는 당시에 중국에서 티베트 승려를 구하다가 총에 맞았고 서울에 위치한 미군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죠. 거기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미술관으로 바뀐 풍경과 제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모습을 함께 겹쳐 보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빛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한국의 빛을 좋아합니다. 한국의 빛은 부드럽거든요. 제가 사는 애리조나는 건조한 기후 탓에 빛이 바스락거리고 딱딱합니다. 덕분에 더 선명하기도 하죠. 한국은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양성 공기에서 오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중략) Q. 1960년대, 당신이 미대를 졸업하고 처음 벽에 빛을 쏘기 시작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젊은 예술가로서 품은 야망이 있었을 텐데요. 지금의 당신은 그때 상상한 모습과 비슷한가요? A. 조각가라면 손으로 찰흙을 빚거나 돌이나 나무를 깎고 혹은 금속을 용접하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은 소리와 같습니다. 소리를 다루려면 일단 드럼이든 바이올린이든 악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당시 저는 빛을 표현하려면 그걸 다룰 수 있는 ‘악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차였죠. 맨 처음 직사각형의 빛을 벽에 투사하고 놀랐던 건, 그것이 벽 위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직사각형은 벽 앞에 약간 떠 있거나 마치 벽을 뚫어 구멍을 낸 것처럼 보였죠. 그래서 저는 이 벽을 하나의 화폭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Wedgework> 연작은 그 벽을 날카로운 가장자리로 가르고 물리적인 깊이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회화의 표면을 통과하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어떤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죠.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빛이 ‘가소성(plasticity)’이 있는, 즉 형태를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성질을 가진 매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50년 전으로 돌아가서 저를 바라본다면 글쎄요. ‘빛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훨씬 전,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서 악기 연습을 계속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Q. 당신의 작품을 사면 빛을 소유하게 되는 걸까요? A. 예를 들어, 우리는 빛만큼 소리를 아낍니다. 과거에는 레코드, 그 다음엔 테이프와 디스크, 이제는 휴대전화 속 스트리밍으로 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속에서 빛을 소유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미술계의 문제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들은 마치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처럼 형태가 있는 보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컬렉터는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누군가 “저는 파란 하늘과 색깔 있는 공기를 팔아 경력을 쌓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파란 하늘과 색깔 있는 공기를 팔면, 제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되묻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당신은 이 공간을 통과하는 빛을 샀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컬렉터의 입장에서는 충분치 않을 수 있죠. #BAZAARART #JAMESTURRELL 포토바이 @less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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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onths ago
이토록 스윗하고 포토제닉한 아티스트라니. 역시나 #바자아트 27번째 에디션으로 마크 브래드포드 인터뷰. Q. 전시의 서막을 여는 <떠오르다(Float)>는 관객들이 직접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작품입니다. 걷는 행위를 통해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물리적인 감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죠. 전통적으로 미술관 벽면에 걸려 있던 작품을 떼어내 바닥에 깔고 그걸 밟을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A. 미술사 안에서 생각해보면 캔버스의 틀은 뼈, 캔버스 천은 피부와 같은 거예요. 저는 작품의 지지대를 없앴어요. 이 작품은 회화의 권력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겁니다. 왜 어떤 작품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고 어떤 작품은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미술계 안의 위계에 대해 인식합니다. 처음에 회화를 매체로 활용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저의 목표는 ‘회화처럼 보이려고 투쟁하지만 회화가 아닌 것’을 만드는 거였어요. 제가 의식적으로 저급하거나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재료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요. #BAZAARART #MARKBRADFORD 포토바이 @kigon_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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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onths ago
어느덧 28번째 에디션을 준비하며 뒤늦게 올려보는 #바자아트 27번째 에디션. 인터뷰를 위해 설치가 한창인 리움 전시 공간을 특별히 열어주셨던 이불 선생님. Q. «이불: 1998년 이후»는 이불의 작업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조망하는 서베이 전시예요.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불-시작»이 초창기 10년간의 퍼포먼스와 소프트 조각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그 이후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비됩니다. A. 회고전은 더 큰 공간과 더 긴 시간이 필요하죠. 주제에 집중하기도 어렵고요. 전체를 다루면서 이를 관통하는 시선을 만들려다 보니까 특정한 시점에 중요했던 것이나 작은 요소를 간과하고 지나칠 위험성이 생기기도 해요. 이 전시가 그렇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장시간 동안 천착한 주제가 있다면 그쪽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봤죠. 그게 초반 10년 그리고 지금까지의 27년으로 구분 지어져요. 게다가 내 나이도 얼마 안 되는데 회고전을 하기엔.(웃음) 나는 앞으로 20년은 더 작업할 거예요. Q. 오늘 인터뷰를 위해 작품 설치에 한창인 전시 공간을 특별히 열어주셨어요. 설치가 완성되면 왜곡된 거울이 벽면 전체에 둘러지고, 모든 작품이 뒤섞인 채 하나의 산수 풍경이 펼쳐질 거라 기대합니다. 먼저 풍경에 대해 묻겠습니다. 단순한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는 전시가 아니라면, 이 작업들은 어떻게 뒤섞여 하나의 풍경이 되나요? A. 이 작품들은 풍경의 일부입니다. 각각의 작품은 공간 안에 겹쳐서 보이고 절대로 분리시킬 수 없죠. 실제로 우리는 사물을 결코 독립적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귀는 귀, 눈은 눈 따로 잘라서 얼굴을 보지 않잖아요? 지금 이곳의 의자, 물컵, 테이블… 언제나 상황 안에 놓여 있어요. 이 방식을 의도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을 뒤섞는 방식을 좋아해요. 인간에겐 전혀 연관이 없는 두 가지일지라도 그 둘을 어떻게든 연결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있고,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죠. 방금 말한 지점들을 통해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섞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기에 과거에 제 작품을 봤어도 이번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BAZAARART #LEEBUL 포토바이 @leeejun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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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onths ago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에서 만난 @ayoung___kim 작가와의 인터뷰🩵#바자아트 5월호에서 유례없는 전염병이 세계를 덮쳤을 때, 김아영은 서울의 낙원상 가 작업실에 갇혀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 하나 를 떠올렸다. 가상의 서울. ‘딜리버리 댄서’라는 AI 배달 플랫폼 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 사는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 (Ernst Mo, ‘Monster’의 철자 바꾸기)와 그녀의 도플갱어 엔 스톰(En Storm, ‘Monster’의 철자 바꾸기)의 서사였다. ‘딜리 버리 댄서’ 연작으로 김아영은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 니카’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 상인 ‘골든 니카’를 받았으며, 2024년 제1회 ‘ACC 미래상’과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올여름, 홍콩 M+의 110m 높이 파사드 에서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신작이 상영된다. 겨울에는 뉴 욕 MoMA PS1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릴 것이다. 지난 2월, 베 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김아영을 만났다. “코스믹 에너지가 작동하듯이 집중 포화를 맞은 기분이에요. 흔히 인생 에서 운의 총량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운을 지금 다 끌어다 쓰고 있나 봐요.” 그녀의 독일 첫 미술관 개인전 «Many Worlds Over»가 막 대중에게 공개된 날이었고, 엄청난 인파 에 나조차 살짝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김아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 모든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피 테이블에 놓인 카푸치노의 크레마 자국이 말라 붙을 때까 지 기나긴 대화를 나누고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 법칙에 기반한 지극히 필연적인 서사임을 깨달았다. “이럴 때일수록 지속적으로 낙원상가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하게 되네요.” 그녀가 무수한 꽃다발을 뒤로하고 말미에 남긴 말이 그러했으니까. 다음은 김아영이라는 성실한 이야기꾼과 나눈 문답의 일부다. === Q. 인터뷰어가 아닌, 밤을 새워가며 웹툰과 웹소설을 탐독하던 자연인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면, 저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이 영원히 완결되지 않길 바랍니다.(웃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되나요? A. 마침 11월 뉴욕에서 열리는 ‘퍼포마 비엔날레’에 새로운 작업으로 참여합니다. 역시 스턴트 배우들을 섭외하여 라이브 모션 캡처 퍼포먼스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오징어 게임>의 스턴트 우먼이자 무술 감독인 김차이 씨와 함께해요. 한국에서 여성의 액션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에 갈증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여성 대 여성의 폭력과 액션을 한 계까지 밀어붙여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어요. ‘딜리버리 댄서’ 자체가 퀴어 로맨스이고 여성과 여성 간의 유대이자 반목인,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을 담고 있는 만큼 그 액션은 폭력적이면서도 분명히 섹슈얼해야 해요.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어쩌면 두 사람을 위계적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이들은 뒤섞여 있습니다. 굴러다니며 격투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고 뒤집는 동작은 애무일 수도 있고 격투일 수도 있고 혹은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요. #김아영 @gallery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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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바자 4월호 #피에르위그 #PierreHuyghe 인터뷰 Q. AI는 <오프스프링>뿐만 아니라 작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생략) 그러나 당신은 AI가 전시장의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죠. 관람객이 세부적인 기술보다는 경험에 집중하길 바라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다면 관람객에게 AI는 ‘믿음의 영역’인 건가요? A. 저는 사실성에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실체 없는 실체의 가능성이죠. AI는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저는 AI에 대해 어떤 환상이나 꿈을 품고 있지 않아요. 내일이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저는 그저 AI가 작동하도록 열심히 작업할 뿐입니다. 푼타에서도 AI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작업을 했을 뿐이고, 어떤 때는 잘 작동했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과정 자체에 흥미를 느껴요. 이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 테니까요.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어왔어요. ‘인간 예외주의’라고 하죠. 이 개념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 기존의 인식을 제거하거나 흔드는 일이 제 관심사입니다. Q. 조건을 투입하고 시간을 들여서 모든 게 우연으로 돌아가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당신의 일이라면 예측불허 또한 견뎌야 합니다. 기꺼이 불확실성에 연루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저는 고정된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겐 그게 더 힘든 일이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다니게 된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어느 날 전시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이 열리면 영화가 시작되는 등의 단순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실 그 프로그램도 결국 예측이 가능하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창조물을 만드는 것이죠. 창작물(creation)과 창조물(creature)은 다릅니다. 창작물이 완성된 결과물이라면 창조물은 자기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어쩌면 언젠가는 스스로 주체성을 갖게 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창조라는 단어조차 너무 가식적인 느낌이 드는군요. 저는 그런 존재를 창조, 아니 허용하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그들 스스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예요. 단순히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만들고 그것을 관람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무언가가 내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을 원합니다. 그건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방 안에 토끼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경험일 테죠. 그리고 그 순간, 관계는 달라질 겁니다. 더 이상 저와 무관한 존재가 될 테니까요. 어쩌면 인간이 진정으로 하고 있는 건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Q. <주드람> 시리즈나 <주기적 딜레마(엘 디아 델 로호)>와 같은 수조 작업을 보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축경’을 떠올렸습니다. 다만 축경의 생태계는 거의 변하지 않지만, 당신의 수족관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이 아닐까 싶네요. ‘축경’은 절대자의 입장에서 자연을 낯설게 바라보며 이를 통해 내면을 수양합니다. 당신의 수족관은 어떤가요? A.(생략) 당신이 말한 ‘축소의 감각’에 동의합니다. 수조를 만들고 관찰할 때, 마치 영화에서 한 장면을 추출하듯이 프레이밍하는 걸 좋아해요. 이건 이야기가 없는 영화예요. 저는 이 존재들이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다른 그룹에 합류하고, 때로는 작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유리를 통해 바라보기 때문에 ‘이미지 같은’ 특성을 지닌다는 점도 흥미롭죠. 유리 안에 존재하는 이 세계를 저는 바깥에서 지켜봅니다. 때때로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이 보이기도 하죠. 저는 그저 목격자일 뿐이므로 ‘축경’처럼 절대자의 시선이나 우월한 위치를 점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수조 주변을 걸어 다닐 때 때때로 배우들은 배경 속으로 사라지고, 제 시야에서 벗어나며, 제 통제 밖에서 그들만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이고 서로 다른 행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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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테레사 학경 차에게 먼저 고백합니다. 신화가 되어버린 <딕테>를 읽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말하는 시늉”뿐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 내는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 앉”습니다. 마감이 숙명인 월간지 에디터로서 저는 하얀 바탕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며칠 동안 끝없이 웅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딕테>를 곱씹는 것이 나의 여성들을 떠올리는 일임을, 이 편지가 결국 사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딕테>를 읽는 건 모두 크든 작든 자신만의 <딕테>를 갖는 행위”라는 김택수 번역가의 말도 생각났습니다. 저는 학자도 평론가도 작가도 아닙니다.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과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다른 독자들에게 작은 손짓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요. (중략) 그런데, 왜요? 왜 희생당해야 하나요? 왜 그들이 내어주어야 합니까? 2024년 12월. 저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순교와 봉헌이 다 무슨 소용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타인들을 허용한다. 그녀의 대치로. 타인으로 하여금 가득하도록 용납한다. 한 떼가 되어 들끓도록. 모든 불모의 공동이 부어오르도록. 타인들은 각기 그녀를 점령한다. 종양의 층층, 모든 공동이 새살이 될 때까지, 모든 잉여물을 축출한다.”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챕터 ‘말하는 여자(DISEUSE)’에 나오는 이 알쏭달쏭한 문장은 이해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재출간기념 북토크에서 장혜령 시인의 해석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알쏭달쏭한 문장에서 ‘타인’을 ‘언어’로 치환하면 이해가 쉬워진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랬습니다. 당신은 11살, 미국에서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입니다. 받아쓰기에선 구두점까지 낱낱이 받아 적어야 합니다. <딕테>의 첫 페이지에 적힌 ‘실패한’ 받아쓰기는 아마도 당신의 유년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20년 동안 <딕테>를 읽어왔다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러니까 말을 이식하고 말에 점령당하는 과정이 마치 식민지 백성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언어에 모든 걸 내어준 뒤에 마침내 자신만의 언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도요. 여자의 언어는 모든 걸 잃고 자신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시인의 해석이 아이러니하게도, 참 희망적으로 들렸습니다. 상처받고 박해받고 순교당한 여자들이 지금 그걸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어서일까요? 나는 이제야 당신이 받아쓴 여성들이 희생‘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전복한 여성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나도 나의 여성들을 받아쓰기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지독하게 혁명적인 여자들 말이지요. 아마도 그 받아쓰기는 오탈자 투성이겠지만 비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 학경 언니, 고맙습니다. 말하는 여자들에 대해 말해주어서요.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2024년 12월 12일, 서울. #안나의_일 +) 반가운 재출간 소식 덕분에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했던 딕테 리뷰를 지면에 실을 수 있었다. 본투비 멋진 여성 이소호(@poetsoho ) 시인과 한 페이지씩 나누어 썼다. 내 편지글 도입부의 구구절절 셀프쉴드는 다소 민망하지만 이소호 시인의 담대한 산문은 또 다르니까 딕테를 좋아한다면 바자 웹에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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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2024년도 대단한 인터뷰이를 잔뜩 만나는 행운을 누렸지만 단연 인상 깊었던 분은 한 해의 끝자락에 뵌 윤여정 선생님. 한 시간이 넘도록 그야말로 대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중에 몇 번은 박장대소했고 몇 번은 울컥했고 몇 번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인터뷰 말미에도 갑툭튀 말씀드리긴 했지만, 선생님 건강하세요. 하퍼스 바자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윤여정 김초희 감독이 그걸 우리 집에서 썼거든요. 그 대사를 내가 알려준 거예요. 근데 김초희 감독은 자기가 썼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래서 저작권 싸움이 벌어지는구나’ 싶어요. 그 당시에 나보고 선생님은 어떻게 사느냐고 묻길래 “하루하루 살지 뭐, 그냥 일상을 사는 거지” 그랬어요. “애써서 해. 애는 쓰잖아, 내가.” 그렇게 덧붙였던 것 같아요. 난 이렇게 생생히 기억하는데 자꾸 자기가 만든 대사라고.(웃음) 하퍼스 바자 60년 가까운 경력의 배우에게 애써서 연기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윤여정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애쓰는 거예요. <파친코 2>에서 내 대사의 70%가 일본어였어요. 영어나 한국어는 대사가 막혀도 문맥상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잖아요.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외운 거라 막히면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 못한다 그래요. 한다고 했으니까 해야죠. 촬영장에서 옵션을 주더라고요. 이어폰을 끼면 저쪽에서 대사를 불러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연기를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진정을 다해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한쪽 귀로 그걸 들으면서는 연기가 안 돼요. 내 늙음인지 천성인지 모르겠어요. 다른 배우들은 다 그거 끼고 하는데 나는 방해가 돼서 그걸 끼고는 연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통째로 독학했어요. 저는 올드 스쿨이니까요. 하퍼스 바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저조차도 가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때가 있는 걸요. 무엇이 선생님을 여전히 애쓰게 만드나요? 윤여정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가. 결국 천성이겠죠. 천성이 나를 볶는 거죠. 사람들은 내가 돈이 많은 줄 아는데 나, 돈 없거든요? 건물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게 그렇게 갖고 싶은 적도 없었어요. 그런 건 별로 나를 건드리지 않아요. 나도 생각해봤죠. 이제 그만 은퇴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집에서 누워 있어도 책을 1시간 이상 못 읽어요. 눈도 아프고. 결국 일상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내 주위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게 바로 그 일상이에요. 다른 욕심을 내서 뭘 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는 그냥 이 병원 밖을 나가서 걸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죠. 배우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일상이에요. 그래서 나한테 오는 배역을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싶어요. 그게 내가 내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하퍼스 바자 선생님, 건강하세요. 윤여정 네. 건강이 제일이네요. 하퍼스 바자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2024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 것 같나요? 윤여정 올해는 참 안 좋았어요. 나는 늘 나쁜 일만 기억에 남거든요. 만약 돈이 없어서 속이 썩으면 일해서 벌면 돼요. 그런데 사람 때문에 속 썩는 게 제일 싫어요. 내가 나이를 먹었으니까 깊이 아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런 애인 줄 알았는데 아닐 때, 참 씁쓸하고 허망해요. 하퍼스 바자 지금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시는군요. 윤여정 아마 영원히 그럴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요새 이렇게 자위를 한답니다. 그래, 이게 다 살아 있다는 증거지. #안나의_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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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깨나 뒷북이지만 레이아웃 칭찬 많이 들었던 #BAZAARART 11월호 #이강소 선생님 인터뷰. 5-6페이지 나무 무늬는 분황사 잔해로 작업한 선생님의 작품 ‘나무의 기억’을 확대 촬영한 것. - 도시의 유령이 되어 허연 갈대밭 사이를 거니는 일, 누군가 있었고 또 아무도 없었던 선술집 테이블에 앉아보는 일, 적막이 깔린 골목 길에서 흩날리는 먼지에 대고 셔터를 누르는 일. 이강소에겐 사라 지고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는 것들의 찬영을 감각하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다. 오는 11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원로 작가의 51년 궤적을 좇는 전시가 열린다. 막이 오르기 전, 이제는 낡아 버린 테이블에서 그를 만났다. 어쩌면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Q. “우주는 출렁이는 환상의 세계이며 삼라만상이 고유한 물질이 아닌 홀로그램과 같은 허상이라는 것, 불교의 공즉시색의 사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확장하는 여러 가능성 속 에 있을 뿐, 어떤 것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수백수천의 에 너지, 빛, 전기가 이 3차원의 상상의 물질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상의 산물이다!” 2015년 작가 노트에 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가끔 장자님의 말씀이나 우 주의 법칙에 대해 공부하다가 허무주의에 빠지곤 합니다. 선생님은 아무 계산도 의도도 감정이입도 없이 그저 그려질 때까지 아주 많 은 획을 연습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허상이라면 이런 미술 행위는 왜 중요할까요? A.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의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그렇고요. 저도 나이 여든이 넘어서야 이렇 게 회고전을 하지 않습니까? 기쁘기도 하지만 서글픔도 있어요. 제 가 현대미술 운동을 하다가 시골 대학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의 작업 장에서 30년을 보냈어요. 내가 뭐 하려고 이런 짓을 할까 싶을 때 도 있었죠. 화가도 욕망의 덩어리인 직업이지만 작업하는 순간만큼 은 상당히 열정적이잖아요. 만사를 제쳐놓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오 는 긴장감 같은 게 여전히 즐겁습니다. 작업장이 있는 조그마한 언 덕 위에 제가 십여 년을 먹고 자고 한 단칸방이 있어요. 최근에 수리 를 시작했는데, 지금 가장 바라는 건 빨리 거기서 소나무를 바라보 며 차 한잔하는 거예요. 여전히 그런 희망이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다 싶어요. 단칸방에서 차 한잔 마실 수 있으면, 그러면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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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