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만연하다. 도다리 쑥국과 쑥전을 먹어 양기를 올렸고, 민소매 차림으로 한강을 뛰었다. 이제 잠깐 코트와 작별인사를 고할 때다. 볓이 드는 낮이 밤보다 긴 춘분이니, 이정도면 인사의 변으론 족하다. 소설이 오면 재회하겠지.
그나저나 보광동 하늘성이 영영 문을 닫았다. 무뚝뚝하던 사장님은 새해에 건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문 앞 쪽지를 붙이곤, 손님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그의 고별 방식답다고 생각했다.
다이상을 처음 만난건 19년 11월 초였다. 그는 현해탄을 건너온 모드족이었다. 그의 첫 모습은 꽤나 강렬했다. 80년대 초 일본의 모드 리바이벌 시절부터 다져온 정체성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영국식 영어를 유창히 구사하며 쓰리 버튼 슈트를 멋지게 입은 그는, 나고야의 무역인이자 밴드 ‘디 앱솔루드(The Absolude)’를 이끄는 리더이기도 했다. 그 정체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백면서생이었던 나에게 다이상의 존재는 크게 다가왔다. 차승우형에게 모드라는 문화를 처음 접하고 이것저것 옷과 머리 스타일을 연구하던 차. 일종의 이데아같은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 내 외양은 사실 그 이후 완성됐다.
한 번 보고 끊어질 수 있는 게 인연인데, 다이상은 꾸준히 연락을 줬다. 안부를 묻기도 했고 이따금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를 보기 위해 나고야를 가겠노라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번번이 도쿄나 오사카, 교토같은 대도시행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켠의 부채였다.
그러다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여행 계획을 짜던 도중 차승우형이 나고야 모드족들과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안 가본 도시. 그곳에서 열릴 행사. 이 두 가지 조건으로 여자친구와 첫 해외 여행지는 나고야로 낙점했다. 생소한 도시였지만 다이상은 현지인이 자주 가는 맛집이나 먹어봐야 할 술 등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그가 예약해준 꼬치집 요리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그렇게 26년 3월 21일, 나고야의 오랜 킷사텐 브라질 커피에서 다이상을 다시 만났다. 흰머리만 조금 늘었을 뿐, 그의 웃음과 체형은 똑같았다.(그는 미식가이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한다. 멋진 옷을 입기 위함이다)
그는 밴드 디 앱솔루드 그리고 차승우형과 함께 멋진 공연을 선사했다. 영화 고고 70 메들리와 스몰 페이시스의 곡 그리고 몇몇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다. 그는 키스 렐프처럼 격렬했고, 샘 무어처럼 부드러웠다.
공연엔 사람이 줄 수 있는 에너지로만 가득했다. 오래된 킷사텐에 별다른 장비가 뭐있겠나. 그냥 로큰롤로 정공하는 것 밖에 답이 없다. 특히 다이상이 보여준 모습은 그의 오랜 정체성 그자체였디. 모즈라는 서브 컬처는 단순히 패션과 음악이 아니었다. 그에게 여전히 생의 힘과 젊음을 가져다주는 ‘힘에의 의지’였다.
누군가 나에게 개성이 강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저 부끄러워 입을 떼지 못할 것 같다. 내 삶을 비옥하게 해주는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7년 만에 만난 다이상이 나에게 건넨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질문이다. 남은 한 해 동안 나는 나만의 그 원동력을 찬찬히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