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현실을 X선으로 투과함으로써 음하영 회화는 출발되었다. X선으로 바라본 현실, 거기에는 살갗 같은 서사와 피처럼 흘러야 할 의미를 박리한 자리로, 기호와 기하학의 뼈다귀만 앙상히 드러난다. 메마르다 못해 진공이 되어버린 세계다. “그렸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작가의 자백 앞에서 이 그림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것들은 넓은 의미의 ‘엘레지(élégie)’다. 삶은 원인과 결과를 매끈하게 정리한 서사도, 그 끝에서 전리품처럼 주어지는 의미도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슬픔. 그러나 이 애도의 노래가 감추고 있는 것은 음하영과 삶의 공방전이다. 예컨대 작가 노트에서 발견되는, 기억과 그것을 풀어낼 말이 사라질수록 그 감각이 더 순수해지고 진실해진다는 역설은 음하영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야기와 가치는 결국 나약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들이 없다고 삶이 나약해지진 않는다는 것. 외려 성공한 사람들이 자랑하듯 수많은 에피소드와 교훈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는 것. 음하영의 시선이 저항하는 자의 것이라기엔 대상을 향한 온기를 숨기지 않고, 매료된 자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서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
「다시, 엘리제를 위하여」
음하영 개인전 《My, Pretty》(4. 18~5. 16 이길이구갤러리) 서문
lunaticwhale.de/elegy
김학량 개인전 《개인전, 뭐 하지?》의 연계 프로그램 ② 사랑방 잡담 〈관객들하고 작가하고 두서 없이 이야기 나누기〉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합니다. 프로그램 참석 신청은 아마도예술공간 @amadoartspace 프로필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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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량 개인전 《개인전, 뭐 하지?》 연계 프로그램
② 사랑방 잡담 〈관객들하고 작가하고 두서없이 이야기 나누기〉
일시: 2026. 1. 16 (금) 16:30 – 18:00
진행: 김동규 @_bi.dan_ 조재연 @peach_prodigy
인원: 25명 (선착순)
장소: 아마도예술공간 아마도Lab
사랑방 잡담은 두 꼭지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먼저 관객들끼리 사회자와 함께 전시 소감을 비롯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둘째 꼭지에서 작가도 거기에 끼어서 이번 전시와 출품작을 비롯해 작업하는 일, 세상 돌아가는 꼴이나, 우리가 사는 형편 등등 두서없이 이야기꽃을 피워 보는 자리입니다.
[더 갤러리 호수 2025 연말 강연 프로그램] 신청 안내
더 갤러리 호수는 개관 후 첫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연말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폭을 넓히고, 더 깊이 감지하며, 더 많이 마주하는 법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2회차로 진행되는 이번 강연 프로그램에는 사람과 예술이 마주하는 지점을 연구하는 일에 천착해온 조재연 기자(@peach_prodigy )와, 예술 작품에 깃든 의미를 감상자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소개하는 한이준 도슨트(@yi.junee )가 함께 합니다.
신청은 더 갤러리 호수 프로필 링크 @thegalleryhosu 에서 가능합니다. 🖋️
1회차 : 조재연 기자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산책> 12월 19일 (금) 19-20:30
2회차 : 한이준 도슨트 <동시대 예술 감상법 - 예술가의 방을 돌아보다> 1월 9일 (금) 19-20:30
문의 : 02-2147-3275
변혁의 정치가 사라지고, 효율과 합의가 그 자리를 대신한 시대. 대안을 상상할 힘마저 제도화된 오늘. 예술이 서야 하는 자리를 묻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를 돌아봅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결성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다시 ’동맹‘으로 되돌아 갑니다. 예술의 정치적 역할과 동시대적 실천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분을 기다립니다.
강연자 : 서동진 교수 (계원예술대학교)
일시 : 2025년 11월 01일(토) 오후 2시
장소 : 공간 채비(서울 중구 서애로1길 11 헤센스마트 2층)
참가 신청 : bit.ly/KARF100
'[예술마스터]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 강사진 | 주요 커리큘럼 | 신청 방법 안내 ✏️✨
서울시민예술학교 양천의 '예술마스터' 프로그램,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을 함께해주실 강사진과 주요 커리큘럼을 소개합니다🗒️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은 동시대미술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예술 심화 프로그램입니다 🧑🎨
지금 바로 서울시민예술학교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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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
📌일시: 2025.09.17.(수)-11.26.(수) *총 10회차
📌수강료: 100,000원 (전시 관람료 포함)
📌정원: 총 40명
📌수강신청 방법: 서울시민예술학교 홈페이지 접수 → 수강료 입금 안내 → 수강료 입금 진행 → 프로그램 수강 확정
상세 내용은 카드뉴스 및 접수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2697-0021, 0026
'[예술마스터]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 신청 안내 🧑🎨✨
8월 25일 오전 10시, 긴 호흡으로 동시대 미술을 더 깊이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술마스터' 과정,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은 10회차에 걸친
양천 센터에서 진행되는 강연 및 창작 워크숍과,
외부 전시공간으로의 현장방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서울시민예술학교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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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재미있는 미술》
📌일시: 2025.09.17.(수)-2025.11.26.(수) *총 10회차
📌수강료: 100,000원 (전시 관람료 포함)
📌정원: 총 40명
📌수강신청 방법: 서울시민예술학교 홈페이지 접수 → 수강료 입금 안내 → 수강료 입금 진행 → 프로그램 수강 확정
상세 내용은 카드뉴스 및 접수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2697-0021
고요는 소란을 딛고 일어선다. 소란에게는 고요를 길러낼 힘이 있고, 결국엔 기척도 없이 고요가 등 뒤에 따르리라는 믿음은 견고하다. 그러나 이 말을 비가 오고 땅이 굳는다는 흔한 교훈으로 입에 담을 생각은 없다. 여윈 바늘이 떨고 있는 한 우린 나침반 가리키는 방향을 믿을 수 있다. 모두가 잠든 밤이 지닌 적막은 사실 별과 개울, 풀벌레의 낮고 작은 웅성거림으로 빚어진다. 그렇다면 고요는 소란과 나란히 놓인다. 소란의 끝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부터 시작된다. 소란이 고요의 형식일지 모른다는 것. 나는 비아니(Viani)와 곽철안의 《Black Echo》(5. 14~6. 14 아줄레주갤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두 작가의 세계는 고요하다. 완주를 마친 원과 제 길이를 모두 펼친 선. 그러나 여전히 분출하는 빛무리와 그치지 않는 선율. 누구보다 완연한 고요가 그럴 수는 없는 것. 오히려 조형 곳곳은 소란하여 고요를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은 아닐지. 이들의 파동을 여기 옮긴다. (…)
「소란으로 고요를 짓는 일」
비아니, 곽철안 《Black Echo》 오프닝 리셉션
lunaticwhale.de/silence
재현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림이 앞으로 튀어나오진 않는다. 회화의 깊이와 재현의 성취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예컨대 회화가 무엇인가 등장하는 장면을 그려낼 때 그것은 1차원의 이미지다. 그런데 모든 이미지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선택과 조율을 통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화면은 한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재구성한 2차원의 이미지로 다시 규정될 수 있다. 뿐인가. 이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해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장면을 받아들일지 혹은 그 배면을 톺아야 할지를 감상자가 판단해야 하는 이미지, 다시 말해 해석을 요청하는 이미지는 3차원의 것이 된다. 나는 지금 유숙형, 임주언의 《경계의 파편: 이미지의 유영》(4. 11~5. 10 보다갤러리)이 지닌 세 개의 차원을 말하고 있다. 평면이라 할지라도 작품은 결과 겹을 지닌다.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1, 2차원의 회화로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산적해 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개별적 사건이 웹을 통해 즉각 공유되는 시대에 새로운 내러티브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획일적으로 살고 있기에 내면을 돌아본들 독자적으로 고백할 것 역시 딱히 없다. 3차원의 회화는 이때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 타인도 자신의 이미지도 아닌, 단지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회화. 전시의 표제를 빌리자면 이른바 유영游泳의 이미지다. (…)
「이미지·이미지·이미지」
유숙형, 임주언 《경계의 파편: 이미지의 유영》 비평
lunaticwhale.de/swim
신용진은 먼지로 감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보이지 않던 입자, 폐기된 감각, 잊힌 신체의 흔적을 따라 미술을 ‘재배치의 정치’로 전환해 왔다. 여기서 ‘먼지’는 은유이자 실재다. 은유의 관점에서 먼지는 체계에서 추방되고, 터와 이름을 잃어가는 존재를 대변한다. 논문이 되지 못한 텍스트, 작업실 구석에 쓸려나간 안료, 폐기물로 남겨진 장갑….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먼지는 예술로 환기될 두 번째 생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한편 실재의 관점에서 먼지는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이루고 있는 존재 그 자체의 형식이다. 모든 것이 먼지로 사그라지고, 그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세계에서, 먼지는 소멸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멸을 지시한다. 존재는 먼지로 흩어지지만 먼지 그 이상으로 마멸되지 않고 끝내 다른 무엇이 된다. 따라서 그는 개인전 《공기색 입자》(2024, 12. 10~29 10의n승)를 구현하기 전부터 먼지를 쓰고 있었고, 먼지는 이번에 제 팔자만큼 우주가 되었다. 사그라든 것과 무엇으로든 출발해야 하는 것 사이에 먼지의 진동은 있다. 그리고 의미 없는 것과 그럼에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 간에 삶이 흔들린다. 둘은 다르지 않다. 폐허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무의미에 패배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나. 기어이 무의미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먼지가 되어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을 때까지 바닥을 전락한 후에야 비로소 의미는 다시 움트기 시작한다. 의미란 싸움 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무의미에서 발버둥 치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신용진의 예술은 꺼진 것처럼 보이는 사투에 불을 붙여 다시 생을 불어넣는 일이다. 어차피 사라질 일, 그러나 먼지는 그친 적 없는 일. 방랑과 유랑을 쉴 수 없고, 생을 찌꺼기까지 마신다. (…)
「세상이 먼지」
신용진 개인전 《공기색 입자》 도록
lunaticwhale.de/dust
김지우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금지된 환상을 다시 한번 ‘지금 여기’에 불러낸다. 잊히거나 놓쳐버린, 잠들었던 것들이 실재의 틈을 비집고 돌아온다. 투명한 현실은 이 순간 가장 흐릿하다. 꿈이, 마법이, 운명이 눈을 떴기 때문이다. 미술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단절의 선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삶 어딘가에서 늘 무엇이 사라졌는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린다. 미술이 하는 일은 일상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미술의 형안으로만 겨우 보이는 그 분실을, 도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었거나, 있거나, 있게 될 미지未知의 발견.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게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미생未生의 발견. 두 발견으로 삶은 불편해진다. 유용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그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상실했다는 예감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미술에서 ‘사건’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김지우의 회화는 더 지독해서, 그 잃어버린 것들이 여전히 화면이 아닌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돌이킬 수 없다면 기꺼이 체념할 텐데 그가 남겨놓은 희망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사라진 것을 되돌리는 것은 미술이 아니다. 그것을 다시 볼 수 있는 눈. 작가는 그 시선의 가능성을 비춘다. (…)
「다시 만난 세계, 문 크리스털 파워」
김지우 개인전 《히로인의 계보학》 서문
lunaticwhale.de/wand
문현수는 자연을 직조한다. 그리고 이 말에는 무수한 결과 겹이 있다. 미술은 하나로 보이는 것이 서로 다른 존재의 엮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하고, 그것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다시 감추어야 한다. 이것이 미술에서 ‘조형’이 하는 일이다. ‘조형’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더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는 느슨한 이해일 뿐이다. 조형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구성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이다. 탁월한 조형에는 형태가 하나의 통일된 구조로 인식되면서도, 그 안에는 개별 요소가 여전히 독립적으로 ‘살아’있다. 모든 대상이 하나의 화면으로 환원되면서도 존재의 이질성이 마멸되지 않는 이중의 동일성Identity of opposites. 문현수 회화가 지닌 힘은 여기에 있다. 작가의 직조는 모든 것을 자연의 ‘결’ 아래 엮어내지만 동시에 인간과 사물, 도시의 제 모습을 ‘겹’으로 포개낸다. 그러니 조형은 그저 미술과 동의어가 아니다. 조형은 존재의 관계를 새롭게 그린다는 점에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고, 존재의 본질을 보전한다는 점에서 세계와 화해하는 일이다. 문현수의 조형들이 그렇다. (…)
「어우렁더우렁, 직조의 자연」
문현수 개인전 《카네이션 미학》 도록
lunaticwhale.de/carnation
때로는 가장 구태스러운 질문이 가장 전위적인 예술을 만들어낸다. 오민수의 예술이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느꼈다. 우리에게 그의 설치는 넓은 의미의 ‘참여’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옹호처럼 보인다. 화염병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예술은 화염병이 될 수 없다. 둘 사이의 긴장을 포기하면 예술은 사라지고 만다. 이 자명한 명제는 예술이 더는 현장을 찾지 않은 채로도 다툼을 만들어내는 완숙한 닻이 되어주었다. 구체적인 현안은 이제 예술의 대상이 아니니, 예술은 그저 실재에서 물러나 그것을 주조하는 형이상학과 싸워야 할 몫을 갖는다는 것. 건설 노동자의 분신 대신에 인간 소외를 은유하는 알레고리, 구축 당하는 빈민 대신에 폐허의 미학을 건설하는 멜랑콜리적 구성, 정부의 언론 장악 대신 어떤 표현도 가능한 초현실적 세계관의 구축…, 이들은 현안에서 물러나지만 갈음을 통해 총체성에 닿는다. 장기적으로 혁명은 이 총체성 위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우린 미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비판이 감미롭게 들리고 가장 안전한 단어로 변모할 때, 창작은 정치를 심미화하는 데 그친다. 혁명을 노래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최종심에 다다를 때까지 예술은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민수의 예술은 여기에 대한 답이다. (…)
「강철 대오 – 오민수의 설치」
비평웹진 퐁
pong.pub/critic/view/강철-대오-오민수의-설치
lunaticwhale.de/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