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낯선 이름에게]가 출간되었어요! 41개월 동안 구독자분들께 우편함으로 실물편지(에세이)를 보내드렸던 [편지할게요]의 글 41편을 책으로 묶었어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두려움과 외로움과 불안을 흩어놓고, 글로써 안도감과 설렘과 기쁨으로 사람들에게 가닿고자 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누군가 조금 웃기를, 또 조금 울기를 바라며,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을 다정의 말들로 써내리려 노력했던 시간이었어요.
마흔한 달 동안 꾸준히 약속을 지키며 글을 썼던 그 시간이 새삼 크게만 느껴지고, 또 그 마흔한 달 동안 제 글을 읽어준 로디(구독자♥)들이 있어 정말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편지로써 우리가 연결되고, 오늘 당신이 웃고 울고, 끝내 외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낯선 이름에게]는 프로필과 스토리에 링크된 책방의 온라인 매장 그리고 순천 책방 취미는 독서(오프라인)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배송비 무료로 보내드려요.💌
#낯선이름에게
#편지할게요
@willbewritten
*이 책은 순천시 도서관운영과 <2025년 시민원고 출판비 지원사업>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생일 선물로 뭐가 좋겠냐는 짝꿍의 물음에 ‘시간’이라 답해 받은 (일, 살림, 육아 없는) 24시간. 근처에 마음에 드는 호텔이 없어 에어비앤비 중에서 분위기가 좋은 집을 골랐다.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되곤 다른 서점부터 들러 책을 샀고, 우연히 발견한 꽃집에서 나를 위한 꽃도 준비했다. 밥과 군것질은 아무 고민도 가치관도 공도 들어가지 않게끔 최대한 간단하게, 햇반과 오뚜기 3분요리, 양파링과 캔맥주, 모닝빵과 딸기잼 흰 우유. 아가들 챙길 일 없어서 따뜻하고 시원할 때 제때 먹으니 다 맛있었다.
꽃은 거실에서 침실로 나를 따라다녔다. 영화는 <돈 룩 업>, 책은 <안녕, 동백숲 작은 집>과 <아이 괴물 희생자>. 새하얀 벽면에 이제니 시인의 시 <거의 그것인 것으로 말하기>를 붙여두고 밤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역과 오독의 결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식물원의 한 나무 앞에서 오늘 다시 걸음을 멈춘다.’
늘 아기들 잠들고 밤늦게 씻었는데 좋아하는 아침 샤워도 했다. 아이들 진료와 등원을 마친 남편이 오랜만에 걸으며 데이트하자며 전화했고, 나는 퇴실하며 짐을 다 챙겨 나가다가 벽에 붙여둔 시를 빼먹은 걸 떠올렸다. “아! 시를 두고 왔어!” 하고 달려가 시를 데리고 나오며 문을 닫은, 하얀 집에서의 하루.
#스테이레브 #투아앤무아
#안녕동백숲작은집 #아이괴물희생자
#거의그것인것으로말하기 #돈룩업
#엄마휴가 #생일선물 #시적인하루
유월, 소리 내어 말하면 근사한 달. 해방일지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몇 번이나 쓰고 지웠다. 살아가는 일의 녹록지 않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추앙과 환대, 구원에 대해 곱씹다가, 딱 이 말만 남았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된다. 끝까지 구씨와 손잡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팔짱을 끼고 걷는 미정을 떠올리면, 나는 그 드라마의 인물들이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뭐라고 더 적는 대신 미정의 말을 내 삶으로 끌고 왔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나는 품고 있던 말을 아이에게 소리 내어 해주었다. G야 엄마는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아이는 거꾸로 그 말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 그 말들만이 우리에게 진짜로 남았다.
#나의해방일지 #유월순천
#나의G #육아일기 #lifegoeson
퇴사하고 9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침 산책길 불현듯 떠올랐다. 나한테 그런 게 있지. #친절한금자씨각본 만들어야 하는데 데이터 유실로 보관 중인 한글파일이 아무한테도 없다고 해서, 모호필름 사무실 가서 당시 현장에서 썼던 시나리오북을 받아 와 내가 전체를 타이핑했다.
#사이보그지만괜찮아각본 #박쥐각본 세 권 동시출간이라 시간은 없고, 늦은 밤 홀로 합정동 사무실에 남아 타닥타닥. 박찬욱 감독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한 글자 한 글자 전부 기뻤고, 바쁜 와중에 <친절한 금자씨>도 여러 번 다시 봤다. 나에게 이런 기억이 있다니.
#편집비화
아침 교실에 들어서면 또 낯선 새봄이
앉아 있습니다 그날은 제게 설레기보다
두려워 떨리는 첫날이지요 걸상에
머물며 손가락 발가락만 꼼지락대다 보면
애꿎게 마음이 탑니다 어제는 비가 흠뻑
바짓단이 다 젖을 만큼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찌할 수 없어서 가려던 곳에서 돌아선 우리는
나는 애써 웃어보려 빛을 끌어올 뿐이었지요
조금 어렵게 그곳의 공기에 익숙해지면
딩동댕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그중에
어느 하나, 어느 하나에는 지난해의 단짝이 제 교실을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사랑하는 당신의 해가 뜨고 꽃이 피고 몰랐던 척 아껴둔 편지를 꺼내어 읽습니다
살짝 땀이 날 만큼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돌고
그러면 나는 다시 제자리에 있습니다
조금 낯선 어찌할 수 없는 오늘에 도착해 있습니다
2026.3.3.
남자아이‘들’을 키우면 생기는 일. 여러 해에 걸쳐 내 말하기 방법도 많이 바뀌었는데, “엄마 쪽으로 좀 와줄래?“보다는 “앞으로 두 걸음!”, ”나가야 되니까 얼른 준비하자“보다는 ”엄마랑 옷 입기 시합 시작!“, ”신발 신고 나가 있어“보다는 ”출동!!!!!”을 외친다. 정확하고 간결한 명령어를 입력하다 보면 가끔 엄마는 조교가 된 것 같단다 어린이들아!🫡 근데 어린이집에서 이렇게 귀여운 걸 써오면 뽀뽀 100번인…🧡
#꾸러기들
2화 (3) #시절과마음
아무 글도 쓸 수 없는 몇 계절 내내 정민이 나온 걸 몽땅 찾아서 봤다.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나는 그 사람이 열심히 빚어온 시간을 괴어 무너지는 내 시간을 지탱했다. 돈 안 되는 일, 해도 아무도 모르는 일, 근데 나는 재밌는 일.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열심히도 하면서 웃었다.
뭘 그렇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누군가 물었다던 그 물음을 들었던 것이 나였는지 그 사람이었는지. 열심히 하지 마. 넌 뭐든 너무 열심이야. 그게 문제야. 그게 정말 문제인지 아닌지 나는 몰랐고. 그건 저주 같았는데. 그 사람은 수도 없이 들었을 말들을 뛰어넘었다. 마침내.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뭘 그렇게 하세요?”
밤낮 없이 보아온 얼굴들을 떠올린다. 수렁 속을 헤맬 때마다 들었던 그 목소리를. 정나한과 유이와 학수와 종려와 장도리와 송몽규와… 수많은 눈동자 사이에서 그 사람을 본다. 응축된 시간이 폭발한다. 마침내 우주가 된다.
그리하여 도망치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 내가 좋아할, 나를 좋아할, 빅데이터의 추천 따위는 가볍게 넘어. 그 사람이 열심히 키운 가지들로 끝내 나의 가지 아래를 받쳐두고서. 우리는 우연하게도 우리가 되자.
그리하여 다시 도망치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 나의 자부심이었던 날마다의 열심을 맞이한다. 하루치 일기와 밀린 답장과 이야기를. 그 사람이 시간을 쌓은 것처럼. 뭘 그렇게 열심히, 해.
2화 (2) #시절과마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가? 아, 여기까지 쓰고 빅테크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잠시 내려놓는다.
왜냐하면 그날 어떤 일을 목격했냐와 별개로 청룡을 기점으로 내가 약간 달라졌음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인데, 수년간 내가 쓴 책이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슬픔과 두려움 앞에서, 써도 아무도 몰라 안 써도 아무도 몰라, 한없이 우울의 저편으로 고꾸라져 글이라면 편지마저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반년 이상이 흐르고, 정민이 응축해온 시간이 폭발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면을 채우는 글을 정말, 정말 오랜만에 쓴다.
올 것이 왔다. 그 사람이 사랑받는 일로써 나는 비로소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민채야, 열심히 하지 마. 넌 뭐든 너무 열심이야. 대충대충 해.” (그때 내가 꾸역꾸역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것도 그 선배를 좋아하는 일에 열심인 탓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뭔가를 열렬히 하는 마음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그 ‘열심’만이 곧 자부였는데, 그 열심이 이내 저주가 되었다. 선배의 말은 그림자처럼 내 발밑에 붙어 나를 따라다닌다. 여전히.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마다 나는 멈추어 선다. 역시 이게 문제인 걸까? 내가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어쩌면 내가 정민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도 그 열심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저 사람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그의 매일을 향한 열심이 내 마음을 주저앉혔다. 나는 그 사람이 안쓰러워 짠했다. 가끔 대단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