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전혀이렇지않을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장애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중추가 되는 이야기의 골격일 수 있다. 그것을 통해 고통과 아름다움, 투쟁과 숨소리를 직조할 수 있다. 장애는 나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게 만드는 도구이고, 그래서 더 섬세하게 보고 느끼는 눈을 갖게 해준다.“(22쪽)
_장은미 작가님
🌈 그림엽서 (C) 유지은, 2025
벤야민이 인용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따르면, 소설은 소설을 구성하는 원칙에 시간을 포함하는 유일한 예술 형식이다.
(아래 번역은 직접 해봄)
“시간은 초월적 고향과의 연결이 상실되었을 때 비로소 구성적이 될 수 있다. 오직 소설 속에서만 삶과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본질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이 분리된다. 소설의 내면적 행동 전체가 시간의 힘에 맞서는 투쟁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순수 서사시적 시간 경험, 즉 희망과 기억이 생겨난다. 오직 소설 속에서만 창조적 기억이 존재함으로써 대상을 포착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 이때 내면과 외부 세계의 이중성은, 주체가 기억 속에 압축된 과거 삶의 흐름에 나타나는 자기 삶의 총체성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총체성을 포착하는 통찰은, 삶의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세대에 대한 예언적-직관적 이해로 나아간다.
이데아의 ‘초월적 고향 상실’이라는 문학 양식인 소설만이 유일하게 실제 시간, 즉 베르그송의 ‘지속(durée)’을 소설의 구성 원리로 삼는다.“
_벤야민, ”The Storyteller”
나는 슬픔을 상자에 담았어. 상자는 축축했고 바닥이 물러졌지. 나는 그 상자를 수요일이라고 불렀어. 오늘은 일요일. 절간은 텅 비었고 나는 지장전 앞에 서서 앞뒤를 살피며 무엇이 바뀌는지를 지켜보았어.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가다가 상자에 걸려 넘어졌어.
10월 호 발표, ‘방과 복도의 영역’ 중에서
한 남자가 그의 죽음을 데려가 강으로 던진다. 그래도 던져넣은 강은 그대로 있다. 한 남자가 그의 죽음을 데려가 아주 멀리 던진다. 그래도 던진 그의 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죽음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틀 전 새벽, 꿈에서 그는 분노에 차 있었다. 그의 세례명은 우리 아버지와 같았고 그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 잘 가세요. 다음 생에 만나면 에스프레소 한 잔 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