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서 올해 2월 그 중 3개월 가량 영해에 네명의 식구가 함께 살아봤습니다. 작은 일상들을 묶어 25분 분량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소소한 이야기이고 초저예산 프로젝트 입니다. 하지만 솔직했고 현재를 충실히 담은, 저에게는 귀한 영상입니다.
가족을 꿈꾸는 분들 육아를 하시는 분들 그리고 이미 지나간 분들이 보신다면 그때를 꿈꾸고 추억할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신청하신 분들만 모시고 작게 1회만 상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서울영화센터 상영관1 (서울 중구 마른내로 38)
👉4월 11일 오후 4시 00분
👉프로필 URL링크 신청 (구글폼)
교수님의 제안에 ‘못먹어도 고!’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왜 전시를 혹은 어떤 목적으로라고 되묻기도 했지만, 귀한 분들과 함께 만든 영상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나에게 명분과 목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작으로 여럿 기사에도 실리게 되고 8시 뉴스에 우리의 이야기가 전달되기도 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고 아내가 뿌듯해했다. 함께 하는 팀원 분들에게 영상을 보내드리고 촬영감독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눈물을 훔쳤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전시가 가능했고 매일 전시에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의 전통이 주는 이야기와 우리의 과정이 옳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앞으로 또 갈길이 멀지만 그 과정에서 날 믿어준 사람들에게 “우리 잘 가고있다고.” 자랑 할 만한 일이 생겨서 제일 기분 좋다. 앞으로 서로 자축할 일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내일 뒤풀이다. 맘껏 즐겨야지
KULTURE의 첫 미디어 전시
<장인이 된, 소년展>
일시: -3.9(토)
장소: 탑골미술관
운영: 평일 10:00-18:00 토요일 10:00-15:00 (일요일,공휴일 휴무)
행사: 2월 28일 19:00 감독 도슨트 20시까지 운영
문의: Dm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상영회가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온이의 표정이었다.
처음 영화관에 온 온이는 첫 영화를
자신이 나오는 영화로 기억하게 됐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 온이를 보았다.
스크린의 불빛이 온이의 눈을 반짝이게 했고
온이는 등을 떼고 스크린에 더 가깝게 앉아
신기한 듯 웃으며 영화를 보았다.
‘처음’ 이라는 순간이 저런 표정이구나
그런 황홀한 표정을 나도 처음 경험했다.
부모로서 풍족한 것은 못해줬지만 나름
이 업을 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솔이는 어땠을까.. 나중에 솔이가 섭섭하지않게
솔이 영화도 만들어야겠다. 그땐 여름바다로!
<저~푸른 바다 앞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색보정이 끝이났다.
십년도 넘은 오래된 카메라를 가지고 카메라감독도 하고
편집감독도 하고 아빠도 하고 남편도 한 3개월의 영해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졌다.
광고주가 없으니 눈치볼 것 없지만 어느때보다 떨리고 아쉽고 입술이 부르트는 후반 작업의 연속이다. 영상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지금이 아닌 그때여서 더 그런 것 같다. 행복은 조금 늦게 찾아온다.
아름답게 칠해진 과거의 조각들이
미래의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 마주보고 행복하라 라고.
전통시장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사람의 방문이 적고, 그렇다고 멋드러지지도 않은 이 시장의 영상을 의뢰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렇게 하루 정도를 무의미하게 촬영하던 중, 문득 할머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적어도 삼십 년.
한겨울의 추위에는 꽁꽁 얼고, 한여름의 더위에는 퉁퉁 불었을 그 손.
이고 지는 짐에 짓눌려 마디가 닳고, 손가락이 꺾여버린 그 손이
내게는 훈장처럼 보였다.
그때는 모두 가난이 무서웠다.
그 가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텨낸 세월이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만, 습관이란 것이 무서워 새벽 네 시면 매일 물건을 하러 나갔다.
비록 나는 하루만 그 새벽을 따라가 보았을 뿐인데,
매일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에 내 삶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시장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매일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다시 똘똘 뭉치는 곳.
주인이 없으면 대신 물건을 팔아주고,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젊은 사장이 대신 옮겨주는 곳.
이곳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무렵,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러닝타임을 늘려, 10분 가까운 영상으로 완성했다.
부족한 예산에도 추가 촬영을 두 번 진행했고, 서울에서 내려온 촬영감독님은 매번 전날 미리 내려와 새벽을 함께했다.
시사를 하던 날,
‘시골 분들이 이런 감성을 알아주실까’ 조바심이 났지만
상인회장님은 눈물을 보였다.
본인들의 마음을 딱 알아준 것 같아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훈장이 새겨진 그 손을 마주 잡고
나도 결국 눈물을 보였다.
멋진 배우들과 멋진 장면을 찍는 것에 우쭐하던 나는
점점, 보통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장면을 찍는 쪽으로
마음을 옮기고 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영해’라는 곳에 작가로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딸린 식구가 있어가 하나가 아닌 넷이서 바닷마을에 오게 됐다. 절대적인 행복을 바다에서 찾으려 했던 나는 아직도 바다에서 행복을 찾고 있지만, 이곳엔 행복이 애초에 없는 듯하다. 아니면 파도에 휩쓸렸나…
백일도 안 됐던 둘째 솔이는 5개월이 지난 지금, 여기서 뒤집기와 통잠, 그리고 눈맞춤을 하게 됐다. 첫째 온이는 어엿한 다섯 살이 되었고, 그만큼 말도 잘하고 말대꾸도 잘한다. 가끔은 말싸움에 질 때가 있다. 이 대책 없는 단칸방 바닷마을 살이를 허락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아내님은 24시간 전우조로 함께하니 아직도 모르는 게 투성이다. 신비로운 여자임이 틀림없다.
행복하기로 다짐한 이 여정이 어느덧 이번 주면 막을 내린다. 내가 찍고 기록한 것들은 도시로 올라가 열어볼 셈이다. "그렇게 이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파도에 밀려와 닿은 행복이 잠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저푸른바다앞에그림같은집을짓고 #영해
오전 산책
이틀 전에는 집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 불더니
영상 10도가 훌쩍넘는 봄기운이 갑자기 찾아왔다.
더이상 바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단걸 알았지만
그래도 차로 5분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니 또
이곳이 아련하다.
마음의 바다. 영해에서 느낀 것은 마음의 바다렸다!
할머니의 손이 훈장처럼 느껴졌다.
그게 돈의 서러움이었을지 두려움일지
이제는 이유도 모를 습관처럼 반복한 노동의 흔적일지 모르지만
매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한시간 거리의 경매장에 나가 물건을 떼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할머니를 제가 유일하게 찍고 싶다고 고백하고 영하 10도의 새벽에 할머니 집 앞으로 향했다.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 배웠던 운전은 생선만 파는게 아니라 물건도 사와야하는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포항 어판장 굽은 허리 초등학생만한 키의 할머니는 순한 얼굴을 지우고 단단한 얼굴로 그날의 물건을 골랐다. “아휴 저 할매 깐깐해요” 지나가는 아저씨가 말을 거들었다.
도착한 영덕 시장, 마흔개가 좀 넘는 점포에 손님은 없지만 유독 이 할머니의 점포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점심은 구석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가난이 무서워 아이들을 키우려고 시작한 이 일의 처음은 길바닥 고등어 한 상자였다고 했다. 팔리지도 않아 남이 정리한 생선 대가리를 받아와 옆에다 진열해놓고 이미 많이 판 척을 하면서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은 시장에서 가장많은 생선 대가리가 보였다.
긴 촬영이 끝나고 드시던 믹스커피 골라 할머니 가게에 두고 왔다. 한참이 지나도 홀로 생선을 정리하고 계셨다. 불꺼진 시장 오늘 남은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일 팔기 위한 정리중이셨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장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게 신용이래요“ 라고 처음으로 말을 건네셨다.
엄두가 안났다. 나도 저 세월의 신용을 갖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