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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morphosis ⠀⠀⠀⠀⠀⠀⠀⠀⠀⠀⠀⠀⠀⠀⠀⠀⠀⠀⠀⠀⠀⠀⠀⠀⠀⠀⠀⠀⠀⠀⠀⠀
Julie Chen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when she was twelve. In 2019, she is twenty-four years old. Twelve years have passed since she moved from China. Julie’s parents used to be gymnastics athletes. After their divorce when Julie was four, her mother moved to the states to coach gymnastics.
At that time, her name was still Shiqi Chen. When Julie was twelve, her father decided to send her to the states where her mother had started a new family with an American husband. Julie remembered her father’s words, “there will be a better environment for you in America.” That was the last moment she shared with him. From that point onwards, she was known as Julie Chen.
In America, there were hardships that she had to endure. There were times that she was homesick. There were changes within that took place without her notice. Unlike her Asian friends who were born and raised in the states, she said: “I have never felt that this is my home.” However, she lost the privilege to miss home as there is no more home in China for her.
“I am too Chinese to be American and too American to be Chinese.”
Julie는 12살 때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2019년에 24살이 되었다. 중국을 떠나고 12년이 흘렀다. 그녀의 부모님은 체조 선수였다. Julie가 네 살 때 이혼 한 뒤, 그녀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가 체조 감독으로 일했다.
그때 Julie의 이름은 Shiqi. 열두 살이 되던 해, 그녀의 아버지는 Shiqi를 미국에서 미국인과 결혼한 어머니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Julie는 아버지가 한 말을 기억한다. “미국에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때 이후로 그녀의 국적은 미국이 되었다. 미국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가 그리워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Julie가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의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한 번도 미국을 집으로 느껴본 적 없다. 이제는 집을 그리워할 수 도 없다. 중국은 더 이상 그녀의 집이 아니니깐.
“난 중국인이기엔 너무 미국인이고 미국인이기엔 너무 중국인이야.” 그녀가 말했다.
<Men Don’t Cry>
My dad cries a lot these days. Any sad movie never made him cry before. He didn’t cry when our dog died and when his son shaved his head to join the navy. He also didn’t cry on the day that his dad passed away and his mom abandoned him when he was six years old. And now I see his tears very often.
“Men don’t cry.” He said this to me, who used to cry a lot, like a habit. He said I have to learn how to hold tears to be a ‘man.’ When he was a kid, he held his tears to protect himself from people who despised him just because he was an orphan. After he had a family, he didn’t cry to protect his wife and sons from this harsh world.
The tears he held slowly rose from his feet to his eyes. And the night the ‘man’ realized that he can’t hold anymore, the tears were already flowing on his cheeks. Now I see dad’s tears that nobody hadn’t noticed filling up inside of him. I asked if I could take a photograph of him when he was crying. Even at this moment, he tries to be a ‘man’.
“Yes, but don’t show this to your mom. She will cry.”
남자는 우는거 아이다.
요즘 아빠가 자주 운다. 어떤 슬픈 영화를 봐도 울지않던 아빠였다. 우리집 강아지가 하늘로 떠난 날도 아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입대하던 날도 아빠는 울지 않았다. 6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아빠를 두고 사라진 날에도 아빠는 울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눈물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남자는 우는거 아이다.” 울음이 많던 나에게 아빠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눈물을 잘 참아야 ‘남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어렸을때는 고아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결혼 후에는 거친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삼켰다.
아빠가 삼켜온 눈물은 발바닥부터 눈물샘끝까지 천천히 차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버틸수 없다고 느낀 밤, 눈물은 그 남자도 모르게 두 볼 위를 흐르고 있었다. 넘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보지못했던 그의 눈물을 이제야 본다. 나는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이런 순간에도 아빠는 ‘남자’가 되려 한다. “그래, 근데 엄마한테 보여주지마라. 너희 엄마 운다.”
*Full story on my website
못섬
못섬은 1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인천의 작은 유인도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은 이 섬은 50년전 약 5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한 때는 초등학교도 존재했다. 2022년,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는 역사상 가장 높고 가파르며, 그 현상의 결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서울에서 떨어진 외곽, 그 외곽보다 더 떨어진 섬이다. 평균 연령 70인 못섬은 곧 80, 90 그리고 0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멸될 것이다. 사진 시리즈 <못섬>은 남겨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섬사람들의 삶을 통해 은유하며, 한국의 지방소멸 시작을 알리는 예보가 된다.
Motseom
Motseom is a small island in Incheon, South Korea, with a total population of 10. With more cats than humans now, the island was once a community of 50 and even an elementary school in the past. The tug of war between an aging population and a steep decline in fertility is becoming much more apparent in areas like small islands. Motseom, with a median of 70 will soon pass 80, then 90, and eventually back to 0 becoming an uninhabited island. portrays the lives of being left behind and their disappearance through the islanders’ lives while forecasting the extinction of the countryside.
철호, 2022–2026
4년 전, 못섬 분들에게 나를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지방소멸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고, 이곳에서 그 이야기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철호는 그때 유일하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던 사람, 나를 가장 경계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뷰파인더를 통해 마주한 철호의 두 눈. 그가 나에게만 허락해준 어떤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이제는 못섬에서, 내가 자신을 찍지 않는 날이면 은근히 서운해하는 철호. 오는 4월에는 함께 배를 타고 우럭을 잡으러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카메라를 가져갈까. 어떤 필름을 챙겨야 할까. 기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진을 그만두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오늘은 박용만 사진전 <HUMAN MOMENT>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정돈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며칠 글을 쓰고 지우다, 포기하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써 보아요. 작년초, 수연 님이 두산 전회장님의 사진전 기획을 하는데 같이 해볼지 제안하셨을 때 ‘재벌 어르신이 찍은 사진..? 안 봐도 알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미팅에 갔어요.(회장님… 편협한 인간이라 죄송해요.) 그리고 한 사진을 보자마자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3층에 걸려있는 두 사람 사진이에요.
용만 님을 처음 만난 날, 그가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왜 50년 동안 촬영한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는지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저는 사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즐기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사진을 아끼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하나 봐요. 얼마나 귀한 마음인지 알아서요. 용만 님의 활짝 웃는 얼굴을 전시장에서 보고 싶었어요.
첫 미팅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 제가 총괄 기획을 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진가의 전시를 기획하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그 처음을 이렇게 큰 공간에서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꽤 헤맸어요.(회장님... 걱정하실 때마다 다 할 줄 안다고, 다 할 수 있다고 뻥쳐서 죄송해요… 사실 잘 모르는데 일단 지른 거였어요.) 정말 정말 다행히도 무너지려 할 때마다 귀인들이 나타나주셔서, 태식님이 잘 잡아주셔서 전시를 잘 올리고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전시 셋째 주, “대성공이야!” 해맑게 말하는 용만 님을 보며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좋아하는 어른에게 좋은 선물해드린 것 같아 며칠을 뿌듯해했습니다.(물론 회장님 돈으로 한 선물이지만…) 사진하다 보니 이런 경험도 해보네요 큭큭. 저는 다시 현생으로 돌아가봅니다. 전시 들러주신 모든 분들 감사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3층에 있는 입 벌리고 있는 아이 사진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