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전의 재미는 그 미술관이 추구하는 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미술관은 그 기업이 가진 감각과 세계관이 어떠한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래서 전시 역시 그 기업이 가진 산업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점를 생각하면서 보면 재밌다. 기술산업을 기반으로한 삼성의 리움은 동시대 기술과 미래적 감각을 보여주는 전시가 많고, 화장품산업인 APMA는 컬러와 재료, 표면의 질감과 같이 감각적 표현에 집중한 전시가 많다.
나는 큰 기업이 예술품을 수집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이 일종의 공공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을 자본을 통해 보존하고, 더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은 기업의 사회환원이자 문화적 지원이기도 하다.
소장전은 결국 자본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작품만이 아니라, 그 기업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철학, 그곳의 미감을 함께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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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이것저것 볼 시간이 없다면 큰 공간을 굵직한 작품들로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전시를 추천한다.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한다기보단 그 그림 안에 담긴 그의 크고 깊은 사랑의 마음을 좋아한다.
그의 사랑은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그리움의 시간이 더 컸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런 사랑이 담긴 절절한 편지들이 남을 수 있었겠지.
무엇보다 사랑을 앞에 두며 사는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귀하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그 마음을 가족을 그리며 버텨낸 시간이 무색하게 정작 그는 그의 삶의 끝에 가장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 비극이라 더 안타깝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아름답기보다 슬프고, 그 슬픔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되었기에 오래 남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랑하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
어떤 것들은 멀어졌을 때 선명해지고,
어떤 것들은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비로소 보인다.
이 전시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닿아오는 그 인식의 순간에서
쉽게 읽히지 않는 것들이 시간과 간격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것은, 나의 거리감을 조절하며 바라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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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대개 즉각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해의 속도가 감각의 속도를 앞지를 때, 경험은 종종 생략된다.
(좋았던 전시 서문 중)
산길이나 절로 들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돌탑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염원이 쌓여 만들어진 돌탑은 각자가 고른 크기와 형태가 다른 돌을 이미 놓여 있는 탑 위에 조심스럽게 얹으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완성된다.
나의 일상과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 또한 그 돌과 닮았다.
기준을 잡고, 균형을 맞추며 하나씩 쌓아가기위해 애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중심.
기후 위기를 알리는 방법은 기후변화로 파괴된 현실을 보여주며 심각성을 상기시는 것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며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것.
빙하의 소멸은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가장 익숙한 장면이지만 이 기록들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식상하지않다.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현실보다 더 미학적으로 풀어낸 아름다운 풍경들로 지금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되묻는다.
라고 남기고 있지만 이러쿵저러쿵 전에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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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glacier는 류이치사카모토가 그린란드에서 북극의 빙하 아래에서 녹음한 소리를 담은 곡
행위가인 이건용 작가를 좋아한다. 신체를 이용한 그 끝지점에 도달하여 나오는 표현이 인간의 한계의 범위를 표현하는 것 같아 좋다. 작가는 그 한계의 선을 정확히 보여준다. 작품은 그저 신체의 한계지만 실은 개인이 가진 모든 한계의 지점이다. 인간은 다른 신체를 가진것 만큼 모두 자기만큼의 한계가 있다. 그 표현이 퍼포먼스와 회화까지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도 행위의 장소만 바뀌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 행위자는 같다. 의미에 대한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으나 작품안의 작가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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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회화뿐 아니라 작가의 메인인 퍼포먼스와 함께 회화로 연결시켜 친절히 작가에 대해 알려주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안밖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고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둔 전시.
이런 기회는 많지가 않으니 마지막 날 부지런히 방문.
작품 수는 적지만 작가들의 과거작과 현재작이 같이 있어 변화된 화풍을 같이 볼 수 있어 작지만 큰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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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정상화 개인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술계 관계자분들 제발 힘을 모아 다시 한번 열어주세요🙏🏻
우리가 느끼는 미생물의 존재처럼 우주에서 보는 인간이란 그것과 같은 것이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는 그저 인간의 시야일 뿐.
우리는 거대 세계 안에서 인간보다 오랫동안 살며 더 먼 과거에도 존재해온 것들을 해치는 종일 뿐이다. 게다가 살고 있는 자신들의 세계도 부순다. 지독한 이기가 종국엔 살아있는 인간도 다 몰살시킬 것이다. 충분히.
’소우주‘의 이름을 가진 작품이 정말 아름다운데, 그 흙의 색과 광물의 반짝임은 대지가 아니라 밤하늘을 보는 것 같다.
국제갤러리에서 했었던 최재은 작가의 개인전을 봤던 사람들이면 더 많은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더 늦기전에 보기를 추천!
저녁에 보는 전시는 항상 다른 느낌.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 전시 제목에 감탄했다.
삭다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며 흙을 키우는 흡수의 작품을 걷는다. 흙을 살리는 것은 그 안의 미생물들을 살리는 일인데 그 흙을 살리는 일은 다른 것들이 죽고 나서야 살아있는 흙이 된다.
이 작품이 전시 주제를 관통하며 시작한다.
영원하다는 것만이 가장 큰 의미이자 가치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변하는 것들은 변할수록 그 값이 떨어졌다.
영원을 열망하다니 얼마나 어리석고 미숙한가.
어쩔수없이 변하는 모든 것들이 때가 되었을 뿐이라 받아들이고,
영원하지 못했지만 내게 남은 가치는 같다고 말하는 지금.
지금이란 모든 것들이 소멸하고 있을 뿐.
쉬운 설득은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으로 살며 보고 겪게 되는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아 일상에서의 소재들은 더 빠르게 관람자 기억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어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
호분을 덮어 그려낸 방식으로 ’기억‘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구현된 것과 거기에 어둠에서 빛을 내는 초, 성냥의 표현은 정말 좋다. 색이 바랜듯한 청색과 노란색도(시간이 지나 기억이 바랬듯이)
권세진 작가의 초 그림을 본 후 똑똑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개인전으로 더 많은 작품을 보게되니 작가의 기억의 부분들을 관람하는 기분이다.
한지에 스며든 먹의 표현도 아득한 느낌을 주어 좋다.
내가 동양화를 베이스로 둔 작가들을 좋아하는듯🤔
표현에 있어서 다른 도구들은 회상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사진은 어떤 것보다 확실한 현재의 영역이다.
누군가는 사진은 의도를 가지고 연출된 것이라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의도와 연출은 모든 작품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뚜렷이 이렇다 직관적으로 표현되는 사진이 가장 솔직하지 않을까.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보았는가의 기록.
같은 곳에 서 있어도 모두 다른 눈으로 다른 것들을 본다.
시선의 미학,
자신의 폰 사진함에 자신의 시선이 들어있다. 그렇게 쌓아가는 기록이 나중엔 명확한 기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