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완성 필름 (rough cut studio)의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대단한 유튜버가 되고 싶은 것도, 대단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각자의 작업물을 가지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로 돕고,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돈보다 과정에, 결과보다는 우리가 왜 이걸 좋아했는지, 그 여백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이 작은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문화를 위해 ! 또 모든 예술가들을 위해 !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계속 창작해내며 협력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금은 구려도,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전 영화를 전공하지도 배워보지도 않았으니까요.
미완성 필름의 첫 번째 이야기. 〈ACTOR JO!!〉 많은 관심도, 많은 질타도 좋습니다. 그러나 전 어디까지나 즐기면서 하는거니 그리 뭐라 하지 말아주시죠…. 😍
P.S 지금까지 찍어둔 거는 약 3개 남았습니다 한달에 하나씩이구요.! 저희는 로고도 없습니다 만들어주실 분 구합니다.
숭한 진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 애석하게도 동화와는 다르게 그 누구도 임금을 속이지 않았다. 내가 속여서 내가 속아 넘어갔다. 습기가 찬 거울 탓에, 나는 또 나를 못 본 척 넘어갔다. 나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 군중도, 진실을 외치는 꼬마도 없었다. 모두 나였기에 그들의 입을 막기엔 너무도 쉬웠다. 빼곡하고 정갈하게 채운 내 하루로 그들이 환호성을 지를 시간도, 꼬마가 진실을 외치는 틈을 주지 않았다. 길을 알려주는 노파도, 나그네도 내 이야기엔 없었다.
그래도 왕관에서 광이 나는군요.
역겨운 놈. 왕관의 광택이 내 나체를 잘 가려줬다. 닦을수록 안심했다. 빛나는 사람이 된거 같았다. 닳아버린 내 손을 보며, 나는 그걸 “노력했다” 라고 포장했다. 달력을 더럽히며, 왕관을 고쳐썼다. 꼬마의 입을 막고 오늘을 버린다. 내일을 위해 또 닦는다. 더 반짝이게, 더 문제없게, 더 멀쩡하게. 나는 어제보다 빛나는 왕관을 자랑처럼 쓰고 다녔다. 부끄러움은 입이 막힌 꼬마의 몫이었다.
무감각의 정교함은 무딘 칼 같았다. 예리하지 못하여 힘겨웠다. 한 번에 끝낼 수 없으니 매일 조금씩, 아주 정성스럽게 나를 깎아 내렸다.
깎아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무의미한 하루에 더할나위 없는 핑계를 붙여 내일을 기대했다. 그런 내일은 늘 정갈했다. 아직 내가 망치지 않았으니, 더할나위 없는 핑계를 붙이지 않았으니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렇게 또 오늘을 버린다. 오늘을 버린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성실하다는 증거를 잘 흉내내며 보냈다.
“쪽은 팔리지 않아 !”
오늘을 살고 있는 중이 아닌, 오늘을 통과하는 중이다. 그래 쪽은 팔리지 않는데, 난 ‘안 팔리는 쪽’ 탓으로 돌리며 정갈한 핑계를 가져다 붙였던거 같다. 어느새 성실함은 미덕보단, 도망의 포장지 역할을 해준다.
오늘을 버리는 기술은 나날이 좋아졌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오늘을 버렸다. 무딘 칼은 더 부드럽게 들어온다. 상처가 보이지 않으니, 나는 멀쩡하다.
멀쩡해서 그게 더 문제였다.
여느 다른 날과 다른 게 없이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지극히 범용한 하루를 보낸다. 그런 하루는 불행히도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간다. 평온이나 안락 따위가 아닌, 끔찍한 무감각이었다. 게을러짐에 있어서 관대해진 내가 미웠다.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한들, 거울을 보며 나를 이해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지고 있다. 비틀린 균열 사이로는 숭한 진리만 아주 옅게 보이는데, 이게 참 쓸쓸한 열등감만 남기게 된다. 본질을 봐야 하는 내 정신은 오만가지에 취했다가 다시 깬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인간이 되리라는 각오는 구차한 핑계로 내일을 옮겨가며 오늘을 피해살고 있다.
나는 비겁한 사람.
누구 처럼 나도 도망치지 않는 척 하며 살았었던건 아닌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닌, 용기를 낼 이유를 자꾸 잃어버린다.
이런 비겁함이 본질이라면, 또 그것을 마주하고 보아야 한다면, 썩 멋진일은 아닌거 같다. 오히려 고역이다.
고역이라 다행이다. 힘겹게 나를 곱씹으며 꾸역꾸역 삼켜낸 내 본질들은 좋은 영양분이 되어 내 갈증을 채워준다. 그리 삼킨 것들이 내일의 핑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는 그냥 작년보다 덜 속이며 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