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름모를 아줌마. 1월 7일 오전에 오셨던 이후로 왜 한번도 청파카페에 오지 않으셨나요. 솔희와 저는 항상 아줌마를 생각하고 그날 오전을 그리워 했어요. 아줌마 떠난 뒤 아줌마 이야기도 자주 나눴어요. 아줌마는 생강차를 주문했죠. 뒤이어 올 다른 친구들을 위해 그들의 계산까지 하신다며 성주사랑카드를 카운터에 화투장처럼 내던지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그리고선 아줌마는 쿨하게 화장실을 갔더랬죠. 솔희와 저는 아줌마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식어버린 생강차를 마실까봐서 아줌마가 오면 따뜻한 물을 부어 나가려고 생강청을 잔에 담아두고 기다렸어요. 화장실에 다녀 온 아줌마는 “생강차 좀 먼저 주지?”하며 도끼눈을 뜨셨죠. 추운 겨울날 그 말씀 한 마디가 어찌나 따스한지 온몸이 후끈했어요. 생강차를 드리니 곧장 “뜨신 물 좀 더 부어 주이소”하면서 가게 찻잔이 작으니 커다란 머그컵에 담아주면 좋겠다던 아줌마, 당신은 손발이 차고 눈알도 차갑고 마음도 얼어붙으셨나봐요. 수륜면 최고 쿨한 아줌마, 생강차는 투명한 찻잔에 나간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질 못하시고 머그컵을 고집하시는 줏대 콧대 높으신 아줌마, 당신은 뇌가 저 모레노 빙하처럼 아름다운 파랑으로 얼어붙어 계신걸까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우리네의 생강차가 아줌마의 얼어붙은 무언가를 녹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요. 생강차를 마시며 아줌마는 붕어빵을 주문하셨죠. 붕어빵 한 마리를 달라고 하시기에 붕어빵 한 마리를 구워드릴까요 라고 되물었더니 역정을 내시며 사람이 몇 명인데 한 마리를 굽냐고 한 사람당 두 마리씩 여섯 마리를 구워달라고 하셨죠. 아줌마는 지금 혼자 앉아 계세요. 오지 않은 친구 분들이 몇 명인지 제가 어떻게 알까요. 제겐 아직 그만큼의 선견지명은 없기에 세 명이 올거라고 말씀하셨으면 제가 세 명이 올거라고 알았을 텐데 말이에요. 저에 대한 아줌마 당신의 과대평가에 저는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에요. 저의 그 마음을 어찌 알고 감사의 마음 고이 담아 그저 따스한 당신 아줌마에게 드릴 붕어빵을 굽는 솔희에게, 아줌마는 “어제 보이께네 붕어빵에 팥이 없던데?”라고 하셨죠. 아무렴 저희가 붕어빵에 팥도 안 넣고 팔았을까요. 붕어빵엔 팥이 들어간다고 답하는 솔희에게 아줌마는 “어제 보이께네 팥이 없더라고”하며 같은 말씀만 하셨죠. 덧붙여 “붕어빵 허투루 만드네”라던 아줌마, 팥은 콩처럼 생겼는데 붉은색이에요. 붕어빵에 들어가는 팥은 짙은 보라색에 가깝고요. 거기 붕어빵 한 입 먹어 보시면 마주보실 수 있는 그 거무튀튀한 걸 세상 사람들은 팥이라고 불러요. 제가 붕어빵을 가져다 드리자 한입 드시고는 “오늘은 옳게 들어가있네”라고 하셨죠. 네 맞아요. 어제도 넣었고 그제도 넣었어요. 아줌마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따뜻해진 솔희가 어제도 넣었다고 말씀드리자 “아니 어제는 팥이 없이 텅 비었더라고”라는 일갈하는 아줌마, 솔희가 아줌마 생각이 많이 난데요. 우리는 이제 아줌마를 허투루 아줌마라고 불러요. 청파카페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아줌마 같은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서 말씀을 따숩게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알아요, 수륜면엔 따뜻한 분들이 참 많아요. 허투루 아줌마도 참 따수운 분이라고 느껴요. 청파카페 걱정을 어찌 그리 제 일처럼 나서서 하시나요. 아줌마 댁에 붕어빵 기계가 있어서, 붕어빵 장인이셔서, 저희가 허투루 만든 붕어빵을 만들어 팔다가 가게가 망할까 봐 마음이 쓰이셨나봐요. 한두 번 해 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얘길 주위 손님 다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말씀하시는 건 붕어빵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따수운 마음 없인 감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허투루란 참 따뜻한 단어인 것 같아요. 허투루 허투루 휘뚜루 마뚜루 생각만 해도 따스하고, 입 밖에 내면 다들 그 따스한 온기에 부르르 떨어요. 허투루 아줌마, 청파 카페 이제 붕어빵 마감일이 다가왔어요. 이 겨울 붕어빵 접기 전에 붕어빵 한 입 하러 오셔요. 아 물론 저랑 솔희는 가게에 없습니다. 저희 사장님과 삼한사온 이열치열 뜨거운 대화 나누시길.
청파 카페의 한가한 오전, 황연규는 최근 통 보이지 않는 자주 오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는다. 그 할아버지가 처음 카페에 온 건 동생 황솔희와 우당탕탕 영업을 시작하며 아직 어리버리했던 초창기였다. 그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 두 분과 카페에 들어왔는데, 다른 두 할아버지에게 회장님 형님 하는 걸로 봐서 이 모임에선 막내인가보다. 머리숱은 많이 없지만 정성껏 빗어 빈 곳을 채운 헤어스타일에 눈썹이 짱구처럼 진하고 길었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그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굵은 금팔찌를 끼고 있었다. 뒷주머니에 화려한 자수가 그려진 면 바지를 입고 온 이 할아버지는 회장님과 형님에게 “촌뜨기는 쌍화차나 먹어야 해”, “늙은이들은 생강차나 먹어야 해” 하며 너스레를 떤다. 어디 대도시 대구 쯤에서 나고 자라신 걸까. 사람좋은 촌뜨기 늙은이 할아버지 둘은 생강차와 쌍화차를 주문한다. “늙은이는 이런 거 먹어야 하는겨?”하며 사람좋은 소리를 한다. 막내 할아버지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황연규는 서빙을 마치고 카운터에 서서 세 할아버지의 대화를 듣는다. 흥미로운 주제는 없다. 다만 막내 할아버지가 지속적으로 ‘너희 둘은 시골쥐야’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다. 막내 할아버지는 눈빛에서부터 손짓을 지나 발가락 꼼지락거림까지 도시적인 윤기가 좔좔 흐를 것만 같다. 그러다 카운터에 선 황연규와 황솔희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친다. “여는 커피 뭐 쓰노?” 황연규는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청파카페가 맘에 걸렸다. ‘뭐야 커피도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하는거야? 다음 메뉴판에 써 넣어야겠다.’같은 생각을 하며 커피 원두 봉투를 선반에서 꺼낸다. “어.. 브라질,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아라비카 원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내 할아버지가 치고 들어온다. 호통을 친다. “과테말라아? 마 커피는 베트남 커피 쓰라!” 황연규는 이게 뭔 시발 개소린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 베트남 커피 유명하지.’, ‘어 과테말라 가 봤는데 아보카도 맛있었지.’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황연규는 애써 답한다. “아.. 베트남 커피가 좋아요?” “내가 예전에 커피 좋아해가꼬 집에 커피 기계도 이것저것 사 보고 어? 커피도 이래저래 다 사가꼬 무 봤서..(중략)” 말이 길다. 아무튼 본인이 커피 박사라는 얘기다. 내가낸데 수륜면엔 박사가 많다. 입을 터는 사람들 모두가 전문가다. 아 그러시냐고 어버버 대화를 마무리하고자 노력하는 황연규. 베트남 할아버지는 가게를 두리번거리더니 또 호통을 친다. “내가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여긴 불 안 켜놓으면 장사 안돼!” 황연규는 영상학과 영화연출전공 학부졸업생이며 인생의 단맛 바에서 배운 조명철학을 반영하여 디머도 없어 조광이 조절되지 않는 청파카페의 조명시스템을 안타까워한 바가 있다. 청파카페는 크게 흰색과 노란색 두 가지 조명이 있는데, 황연규는 가게의 노란 조명과 통유리에 들어오는 자연광을 실시간으로 밸런스를 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어둡게, 좀 더 편안하게,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좌절되고 어쩔 수 없이 켜 둔 노란 조명들은 황연규의 눈에는 한없이 눈이 부셔서 신경이 쓰이는 터였다. 그런 그에게 베트남 할아버지는 흰 조명을 밝게 켜서 횟집을 만들라고 버럭! 우기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눈이 안보이가꼬 이래 어둡게 해놓음 안 온다!” 그동안 수륜면을 대차게 까대던 황연규는 갑자기 수륜면 주민에 빙의되어 울컥한다. 그때 원여사는 옆 테이블에 앉아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베트남 할아버지의 일갈에 벌떡 일어난 원여사는 친절하게 흰 불을 모두 켠다. “아, 잘 안 보이셨어요? 불 켜드릴게요.” 가게의 모든 불이 켜졌다. 청파카페 바닥의 흰 대리석이 빛난다. 온갖 치부가 하얗게 드러나는 느낌을 받은 황연규의 안광도 빛난다. “아 좋네. 이래야 가게가 잘된다카이.” 베트남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워한다. 황연규의 분노는 애먼 원여사를 향한다. 황연규는 이런 새하얗고 부끄럽게 빛나는 가게에서 일하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베트남 할아버지 테이블이 모두 나가고 난 뒤 황연규는 원여사에게 속삭인다. “엄마. 다시는 흰 불 켜지 말아줘.” 해맑은 원여사, 나이많으신 분들은 밝아야 메뉴판도 볼 거라고 말을 이어가지만 황연규에게 단호히 묵살당한다. 머리검은 짐승같은 효심이 넘치는 청파카페의 2025년 12월 29일. 오픈한 지 10일차. 베트남 할배 탄신일.
원경순의 남편 황만성은 청파카페에 오면 말이 많아진다. 청파 카페에 붕어빵 기계를 기증(?!)한 그는, 붕어빵 기계를 이 가게에 사줬다는 말을 가게에 올때마다 서너번씩은 내뱉는다. 황만성은 ‘붕어빵 기계를 사 줬으니 붕어빵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라는 일방적이고 제멋대로의 바람을 여러번 표현했으나 이는 황만성의 딸 황솔희에 의해 기각된다. 가게에 방문할 때는 돈을 내고 드시라. 하지만 붕어빵에 대한 기여도를 참작하여 청파 카페 근무자들이 퇴근 후에 황만성의 붕어빵을 따로 만들어 싸 가는 것은 무료다. 그렇게 정해졌다. 황솔희가 이렇게 야박하게 들릴 지 모르는 조건을 처음부터 내건 건 아니었다. 청파 카페가 오픈한 이후로 종종 가게에 들른 황만성은 심심찮게 붕어빵을 공짜로 먹었다. 왜냐하면 가게 오픈 초기엔 붕어빵 수석쉐프 황솔희의 수많은 테스트 붕어빵들이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황만성은 지인과 함께 카페에 왔다. 황만성의 지인은 가게 매상을 올려준다며 카드를 꺼내들고 음료와 함께 붕어빵을 주문한다. 지인에게 귀가 따갑도록 얘기했을 붕어빵의 존재. 지인은 메뉴판에서 붕어빵을 찾아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 그의 뒤로 황만성의 너스레가 들린다. “내가 여기 붕어빵 기계 사 줘서 붕어빵은 돈 안 내도 돼.” (... 중략) (무슨 이유에서 시작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황솔희는 오기롭게 황만성이 지겨워할 때 까지 붕어빵을 구워주겠다는 자신과의 내기를 시작했다. 황만성의 붕어빵 타령이 꼴 뵈기 싫어서였을까. 아무튼 황솔희는 일이 한가했든 고되든 상관 없이 마감이 임박하면 황만성의 붕어빵을 구워갖고 퇴근했다. 황솔희는 이런 하루의 루틴을 주위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며 동조를 구했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황만성은 붕어빵을 지겨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우려를 표하자 황솔희는 점점 힘이 빠진다. 어쨌든 황만성은 매일같이 퇴근하면 붕어빵을 구워다 주는 황솔희에게 “뭘 이런 걸 다 구워주고. 고맙소.”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봉투 속 붕어빵을 쏙 뽑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덧붙인다. “근데 겉이 좀 많이 익었다잉.” 얘길 들은 황솔희는 분노한다. “카면 도로 내놔라!” 황만성은 웃는다. “내일도 잘 부탁하요~” (... 중략)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황만성은 본인이 코흘리개 꼬꼬마 시절 5km 거리의 통학버스를 타지 않고 그 돈으로 붕어빵을 사먹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 이야기를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황만성의 얼굴에 퍼지는 추억 가득한 미소를 보며, 황만성이 붕어빵을 지겨워할 일은 영원히 없을거라고 황연규는 생각한다. 1월 11일. 고모와 고모부가 왔다. 커피와 붕어빵을 먹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고모는 할머니 머리 염색을 하러 가고, 황만성은 고모부와 해인사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와 유자차와 커피와 붕어빵을 먹으며 청파 카페를 즐기다 갔다. 그런 오늘 하루동안 황만성은 저 붕어빵 기계를 내가 사 줬다는 말을 세 번을 한다. 꿀밤 마려운 소리많은 아우성. 황만성. * 2월 13일 오늘, 황솔희가 그만둔 이 시점에도 퇴근 후 붕어빵 루틴은 황연규에게 인수인계되어 여전히 퇴근 후 황만성에게 붕어빵을 구워 바치고 있으며, 황만성은 붕어빵을 오래도록 촉촉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해냈다고 한다.
2026년 2월 12일 오늘은 황연규의 생일이다. 11시 포장 예약 붕어빵 18개를 구운 그는 행주들을 락스 푼 물에 불리고 씻고 뜨거운물로 불리고 씻는 아침 루틴을 만족스럽게 수행한 뒤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뭘 쓸까.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기에 오늘은 꼭 써내고 말리라 다짐을 한다. 이런 불경한(?)생각을 품은 날이면 여지없이 손님이 들이닥쳐 정신없이 바빴던 기억이 번뜩 드는 그는 조금 겸손한 마음을 갖기로 한다. 이 카페를 관장하는 신은 성격이 지랄맞다. 소심하고 뒤끝있고 질척거리는 이 신은 보통 근무자들의 혀를 관찰하며 일과를 보내는 모양이다. 그리고 언제나 심통이 나 있는 심술궂은 이 신은 지 꼴리는데로 전능을 행사한다. 내가 낸데가 난무하는 수륜면의 화신이라 해야 할라나.
어느 한가한 오후의 청파. 커피 그라인더의 커피콩이 바닥을 보인다. 황솔희가 그걸 발견하고는 “커피 더 채워야되나?라며 황연규를 바라본다. 황연규는 황솔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데이. 입방정은 니가 털었디.” 황연규의 말을 들은 황솔희가 입을 틀어막는다. “이제 손님 몰아치면 니때문이다.” 황연규가 이죽거린다. 한개도 바쁘지 않았던 청파의 오후였건만 그 발언 이후 미친듯이 바빠졌고 부은 커피에 더해 음료를 만들면서 커피를 더 부어야 했다. 이후 다른 날에도 황솔희는 두어번 더 같은 입방정을 떨었고, 그 때마다 청파의 신에게 호되게 혼난 황솔희는 커피콩을 그라인더에 부을 때 입을 닥친다. 청파의 신은 청개구리다. 황연규와 황솔희가 굳은 결심을 하며 커피 콩을 가득 채우거나, 붕어빵 반죽 두 통을 야무지게 담아 두거나, 팥 통에 팥을 꽉꽉 채워 놓으면 그날 저녁밥은 수돗물이다. 근무자들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언행은 모두 청개구리 신의 전당에 기록되며, 그날 그날 신의 지 꼴리는 기분에 따라 청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관심병자같은 이 신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황연규와 황솔희는 닥치고 일한다. 오늘 정말 한가한 것 같다느니, 집에 일찍 가고 싶다느니 같은 넋두리가 사라졌다. 황솔희는 그런 청파의 신과 대적한 적이 있다. 황솔희는 케이크를 굽고 싶었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검색하며 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 그녀는 가게로 재료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버터를 녹이고 커다란 볼에 설탕과 치즈를 덜고 치대며 계란을 넣고 반죽을 만드는 황솔희의 눈은 빛난다. 황연규는 일련의 저 행위들이 신성한 청파의 근무태도에 반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그 업무태만을 두고 보지 않는 청파의 신은 여지없이 수륜면의 손님들을 보내어 가게를 바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총 3번의 케이크를 만들었지만 단 한번도 무난히 반죽을 완성시킨 적이 없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황솔희는 케이크에 대한 일념 하나로 신과 대적했고, 케이크를 쟁취했다. 황솔희는 2월 1일부로 잠정적 은퇴했다. (매일 오후 6시면 마감요정으로 등장하지만, 아무튼) 황연규는 2월 2일부터 원여사와 함께 카페에서 일해왔다. 원여사는 황연규와 황솔희의 종교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쩔씨구 라는 표정과 웃음으로 답했다. 황연규는 불안했다. 뒤늦게 가게 영업에 뛰어든 원여사는 열정이 넘쳤고, 가게의 재고 파악과 채워지지 않은 온갖 가루와 티백과 커피콩과 시럽과 반죽과 앙금에 집착했으며, 그 빈틈이 보일 때 마다 황연규에게 “채워야 할까?”를 물었다. 그럴 적마다 황연규의 가슴은 철렁인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이단을 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감정이 이런 걸까. 황솔희와 황연규가 금기시 했던 모든 것들을 순수하게 행하는 원여사. 며칠간 황연규가 느끼기에 청파의 신은 여러번 노했고 황연규와 원여사는 진빠지는 오후를 겪었어야 했다. 하지만 원여사는 굴하지 않았으며, 2월 12일 황연규의 생일날 오후 3시 지금도 “아~ 햇살 좋다. 차에가서 자야겠다.”라는 대사를 굳이 황연규에게 던지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황연규는 심경이 복잡하다. 더이상 할 설거지도, 닦아 둘 집기도 없다. 채울 것들은 모두 채워놓았다.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몰아쳐라 몰아쳐라. 그렇게 빌어재끼면 아마도 청개구리 신 덕에 한가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글쎄, 이런 불온한 심리를 파악한 청파의 신은 또 어떤 지랄맞은 생일날 오후를 선물하려나.
청파카페 사장 원여사의 아들 황연규는 생각보다 바쁜 청파카페의 근무환경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장사가 잘 되어 봐야 최저시급 인건비 빼고 재료비 빼고 저녁에 소주 없이 미나리삼겹살 한판 먹을 가격을 빼면 적자인데 바쁘기까지 하다니 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행한 직장인가. 가게 개업 준비를 도우며 간만에 둘러 본 수륜면소재지-나름 수륜면 핫플-의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황연규는 자신의 추운 골방보다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맥북을 펼쳐놓고 작업을 하는게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다친 엄마를 돕는다는 아주 훌륭한 도의적인 행위와 더불어 나의 자기계발도 규칙적인 생활과 윤택한 환경 아래에서 할 수 있다니! 이전 청파카페엔 손님이 있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는 황솔희의 증언도 이 깜찍한 상상에 한 몫 거들었다. 청파카페는 원여사의 아담한 사랑방이며 황연규의 작업실이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그였다. 황연규는 ‘원여사의 사랑방’을 간과했다. 그녀가 얼마나 인싸인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원여사가 황연규에게 도움을 요청할 적에, 소소하게 사랑방처럼 운영하고 싶고 매출은 크게 상관 없으며 어느정도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청파카페의 경영철학을 설파했다. 사랑방.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사랑방은 황연규에겐 프라이빗하고 여유넘치는 이미지였다. 휑한 도로 풍경 너머 가야산이 보이고, 뉘엿뉘엿 지는 햇살이 따사로운 원여사의 사랑방. 수술한 환자임에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원여사에게서 황연규는 간절함을 읽었다. 원여사의 제안에 오케이 답변을 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랬다. 황연규는 경솔했다. 황연규는 황만성의 영업능력을 알지 못했다. 원여사와 함께 황연규를 길러낸 황만성. 집에선 실없는 소리를 일삼아 가족 구성원들의 원성만 사는 그가 집 밖에선 파워E에 인기쟁이라는 사실을 황연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청파카페 개업 이후 황만성은 가게 매출이 걱정이라며 지인 단체 손님들과 종종 방문했다. 적극적이지 않아 보이면서도 은근히 메뉴를 추천하고 유도하는 황만성을 처음 본 황연규는 뻔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영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황연규는 어쩌면 저것이 영업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며 생각을 주워담는다. 황만성은 명실공히 수많은 지인들을 붕어빵에 중독되게 만든 장본인이며, 한번씩 출몰할 때 마다 가게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황연규는 수륜면 주민들의 욕망에 무지했다. 이 황량한 면소재지의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오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번듯한 카페에 가려면 차를 타고 10분은 가야 하는 동네 사람들이 집 앞에 생긴 청파카페를 얼마나 반가워할지 몰랐다. 비워져 가는 유자차와 생강차 유리병을 바라보며 쌍화차 고명 봉투를 뜯는 황연규는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수다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동안 어디서 수다를 떨었을까. 오늘은 누구네 내일은 너희네 이렇게 순방하며 놀았으려나. 황솔희와 황연규는 처음엔 오픈빨이라 생각했고, 원여사와 황만성의 지인빨이라고도 생각하다가, 한 달이 지나자 그냥 이건 수륜면의 욕망이며 핫플이 되어버렸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둘은 사기당한 기분이었지만 그 누구도 사기친 사람이 없었다. 원여사조차 예상치 못했으니까. 황연규는 청파카페가 수륜면 맞춤형 카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망해버린 저기 저짝 멋드러진 외관의 카페처럼 아이는 안된다느니, 자리는 지정석이라느니, 한사람 당 음료 하나는 주문해야한다느니 하는 규칙 따위는 없다. 차로 십 분 떨어진 큰 카페보다 가격도 싸고 제한시간도 없다. 황연규 기준 맛있는 커피가 있고 어설프지만 도란도란하기 좋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하는 마약같은 붕어빵이 있다. 자리 잡고 카페를 즐기다 보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죄다 아는 사람이라 반갑게 인사하기도 참 좋다. 그렇구나. 이전에 운영하던 카페를 그대로 물려받아 손 댄 것도 손 댈 수도 없이 시작했기에 애착을 가질 겨를도 없었던 이 청파카페는 꽤나 번듯한 카페, 무지막지한 사랑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티보이 황연규는 이 현실에 순응한다.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욕망을 채우기로 결심한다. 황연규는 가끔씩 출몰하는 신박한 주민들의 언행을 메모장에 기록하며 희열을 느낀다. 그 분노 섞인 도파민에 기대어 기대와 다른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희석시킨다. 황연규는 그렇게 카페를 떠날 2월 말을 기다리는 중이다.
1일 1음료에 대한 고찰 - 3화
또 다른 날 오후, 댄스부 아줌마들과 함께 방문한 박근혜 아줌마는 역시나 주문하지 않았다. 음료를 서빙한 황연규에게 따뜻한 물 한잔을 요청한 그녀는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물을 받아들자 옆 자리 아줌마의 캐모마일 티백을 빼 내 본인의 따뜻한 물에 담근다. 또 또 다른 날 손님이 북적이는 햇살 좋은 오후, 수다를 떠는 댄스부 아줌마들 사이에 늦게 합류한 박근혜 아줌마는 테이블의 의자가 모자라 다른 테이블에서 의자를 가져와서 앉는다. 황연규에게 물 한잔을 요청한 그녀는 따뜻한 물 드릴까요? 하는 황연규의 물음에 미지근한 물로 부탁한다. 물을 가져다 주는 황연규에게 박근혜 아줌마는 너스레를 떤다. “아유~ 이 물도 돈 받아야겠다~” 황연규는 바빠죽겠는데 이건 또 뭔 지랄인가 싶다가 묘한 오기가 생겨 받아친다. “그래야겠어요. 얼마 받을까요?” 박근혜 아줌마는 컵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올려다보며 비죽거린다. “글쎄요? 얼마 받을거에요?” 황연규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뜨며 박근혜의 옆자리에 앉은 주희 아줌마를 힐끗 바라본다. 얼마 전 원여사, 황솔희와 막창을 먹을 적에 주희 아줌마도 합류했었지. 소주 안주로 박근혜가 딱이었던 그 날을 추억하는 황연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동지애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느낀다. 주방에 돌아온 황연규는 황솔희에게 오늘의 담소를 전한다. 분노는 나눠야지. 1인 1음료. 쑥스러운 할머니들이 3-4천원을 아끼는 마음은 어찌보면 안쓰럽고 애처롭기도 하고, 어찌보면 카페라는 공간까지 힘든 걸음으로 걸어와 한 잔 음료를 마시고팠던 마음이 애틋하기도 하다. 아무런 논리 없이 음료를 안 마셔도 된다고 선동하는 어르신에게 씩씩한 할머니들이 “나는 온 거 한 잔 다 물낀데!”하며 바닐라 라떼를 주문할 때면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좀 떨어진 망한 카페의 예를 들며 각자 한 잔씩 마셔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그 카페가 너무 고압적이고 불친절하다고 떠드는 손님을 보노라면 수륜애가 싹 사라지다도 “할미들이 여럿 와서 세잔만 묵고 가니까 쫌 민망시럽다 맞지요?” 하며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가 떠오르면 맘껏 드시러 오시라고 오봉이고 머그컵이고 따신 물이고 다 내드리고 싶다. 황연규가 직장동료 친동생 황솔희에게 묻는다.
“솔희야. 1인 1음료 써붙이야되나 우짜노.” 황솔희가 심드렁하게 답한다. “1인 1음료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2인 1음료라도 하면 좋겠다.” 청파는 관대하다.
1일 1음료에 대한 고찰 - 2화 황솔희는 조용히 붕어빵 48개를 구웠고, 황연규는 부단히 서빙했고, 할아버지들은 냠냠쩝쩝 붕어빵을 물 한 잔 없이 먹어치웠다. 48개의 붕어빵을 흐름의 끊김 없이 모두 비운 할아버지들은 밥을 먹으러 간다며 우르르 나간다. 황연규와 황솔희는 빈 붕어빵 접시를 치우며 이 상황에 대해 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청파카페는 카펜데 빵집이 아닌데. 아니 빵집에서도 음료를 마시지 않는가. 게다가 저새끼는 왜 남이 먹겠다는것도 말리고 지랄인가. 황연규는 이런 상황이 또다시 반복될거란 사실을 상상하며 치를 떤다. 황연규는 사장님에게 연락한다. 1인 1음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할머니들 8명이 5개의 음료를 나눠먹는 얘길 들려준다. 원여사는 시골 분들이고 나이가 많으시면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황연규는 할아버지 6명이 48개의 붕어빵을 음료 없이 먹고 나갔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원여사의 눈시울이 파르르 떨린다. 좁아터진 시골. 모르는 얼굴보다 아는 얼굴이 더 많은 손님들. 그네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며, 더더욱 잘 알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누구네 누구에 대한 주제는 매우 일반적이다. 사실과 망상, 정치적이고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견해들이 잡탕이 되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시티보이 황연규는 유령마을처럼 보이는 이 수륜면의 오지라피즘 복잡난해한 관계성이 낯설다. 헤실거리는 얼굴로 1인 1메뉴세요 라며 말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님을 느낀다. 또 또 다른 날 오전 11시경,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 멤버쓰 다섯분이 다시 방문했다. 이번엔 가게 중앙 5인석에 앉았다. 카운터를 등지고 앉은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가 카운터를 돌아보며 말한다. “붕어빵 5개 줘.” “붕어빵 다.섯.개 드릴까요?” 라고 황연규는 확인질문을 한다. “아니이~한사람 당 6개씩 5개 달라고.” 그렇다. 청파 카페 붕어빵 포스터에는 1개 500원, 6개 3000원이란 문구가 있다. 그리고 6마리의 미니 붕어빵이 접시 위에 올라간 사진 혹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1붕어빵은 6마리라는, 청파 카페 오너와 매니저들도 모르는 암묵적 단위가 생겨버린걸까-와 같은 생각을 하는 황연규는 당연하게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 저 할아버지들에게 어떻게든 음료를 팔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붕어빵 기계 1판을 구우면 12마리를 만들 수 있다. 굽고 자르고 세팅까지 약 5분이 걸린다. 1판 12마리를 한 접시에 담아 나간 황연규는 친절x친절 미소와 함께 붕어빵을 내려놓으며 이를 악 물고 말한다. “음료는 어떻게 주문하시겠어요?” 황연규는 일부러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를 바라보지 않았다. 다른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 옆에 잠시 서 있었다.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가 음료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을 시전하면 붕어빵이랑 라떼랑 먹으면 참 맛있는데요~ 같이 한번 드셔보세요라는 친절한 대사를 혀 끝에 준비하고 있었다. 웬걸, 황연규가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유자차 먹자 유자차” 라고 말하자, 다른 할아버지들도 말 없이 끄덕끄덕했고, 유자차 5잔을 주문했다.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는 침묵했다. 3) 청파카페가 위치한 복지회관 2층에는 강당이 있다. 수륜면 주민들이 동아리활동을 하는 장소다. 그 중 가장 활발한 댄스부엔 많은 아줌마들이 소속되어 있는데 청파카페의 단골이자 원여사의 지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그녀들은 원여사의 청파카페를 사랑방으로 완성시키는 소중한 존재다. 그 소중한 존재 말고 약간 이질적인 아줌마를 소개하고자 한다. 황연규는 그 아줌마의 외모가 박근혜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아줌마가 댄스부 아줌마들 사이에서 은근히 밉상취급 받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황연규는 편견 가득한 눈으로 대여섯명의 댄스부 아줌마들과 박근혜 아줌마가 카페에 자리잡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줌마들이 씩씩하게 메뉴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박근혜 아줌마가 새침하게 말한다. “나는 안 마셔도 돼~” 이미 편견으로 가득찬 황연규는 올게 왔구나 생각한다. 주문을 받은 황연규는 만든 음료를 들고 서빙을 한다. 뭐라도 한잔 마시라는 아줌마들의 채근에 박근혜 아줌마가 말한다. “나는 안 마실래~ 저기 아이스 음료 그거 한입만 먹으면 좋겠다.” 다른 아줌마가 주문한 스무디가 먹고싶었나보다. 박근혜 아줌마는 스무디를 한입 마시고, 옆자리 커피도 한잔 얻어 마셨다.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다른 아줌마들의 표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3화에 계속)
1인 1음료에 대한 고찰 카페 손님 한 사람 당 한 가지의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1인 1음료’ 문구는 언제부터 시중 카페에 붙기 시작했을까. 수륜면 청파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한 황연규가 이 낯선 궁금증을 갖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 어느 날 여덟 분의 할머니가 카페에 들어왔다.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할머니 분들이었다. 할머니만으로 구성된 멤버가 카페에 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게다가 이 분들은 카페라는 공간이 어색한지 입구 바로 옆 단체석 자리에 앉아 자리를 잡고 평온을 찾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몇몇 할머니들은 메뉴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듯 한데, 대다수의 할머니분들은 목석같이 앉아 힐끗힐끗 메뉴를 바라본다. 눈이 좋지 않으셔서 잘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함에도 적극적으로 메뉴를 탐색하지 않는다. 어색한 기색이 완연하다. 황연규는 할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래도 할머니라 카페라는 공간이랑 친하지 않은 걸까. 하긴 그런 분들이 종종 있었지’라고 생각할 즘, 할머니 테이블이 주문을 시작한다. “아메리카노 넉 잔 주이소. 유자차랑.” “네 준비 해 드릴게요.” “따신 물도 쫌 주이소.” “네 준비 해 드릴게요.” “종이컵 있으면 쪼매 주이소.” 한 할머니의 주문 이후에 목석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애시당초 청파카페는 1인 1음료 체제를 고수하지 않았기에 황연규는 별 생각 없이 음료와 함께 할머니들의 요구사항인 물과 종이컵을 준비해 쟁반에 담아 테이블로 나간다. “오봉은 두고 가이소.” 황연규 : “네?” “두고 가이소 따라묵구로.” “종이컵은 왜 하나삐 없노. 두개 더 갖다주이소.” “오봉 두고가이소.” “양이 만타 많아 다 못묵는다 이거.” 사운드가 겹쳐 살짝 혼이 삐져나온 황연규는 쟁반을 챙겨 주방으로 돌아와 종이컵을 챙겨 가져다 드린다. “오봉 두고 가라 카이.” “두고 가라.” 황연규는 그제사 입력된 명령을 알아듣고 쟁반을 두고 돌아온다. 카운터로 돌아와 단체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쟁반 위로 목석같던 할머니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바라본다. 한 잔의 커피가 두 잔이 된다. 후두두두 떨어지는 커피방울이 오봉을 두드린다. 오병이어가 아닌 오봉이어의 기적이 벌어지는 곳 청파. 2) 6명의 할아버지가 카페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할아버지들은 여 붕어빵이 맛있다고 떠들며 자리에 앉는다. 청파카페에 방문하는 보통의 시골 할아버지들은 앞서 언급한 시골 할머니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영세븐티 테토남 납신다. 황연규는 그들이 소싯적에 다방 깨나 다니며 아무도 듣지 않을 찌질한 농담을 던지길 즐겼을거라 생각한다. 황연규의 불순한 눈빛을 눈치챘는지 체크무늬 벙거지를 쓴 할아버지가 버럭 한마디 던진다. “니 야 누군지 아나?” 본인 맞은편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황연규가 그 할배가 누군지 알 턱이 있나. 하지만 밑도끝도 없는 이런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지 않으면 수륜면 불친절한 카페라고 소문나고 온갖 루머에 시달리는 깡시골 오지랖 충만한 비극적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황연규의 머릿속에 스친다. 카페 사장의 아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장착한다. “잘 모르겠는데요? 누구세요?” “야가 느그동네 산다!” “???” “니 황쌤 아들 아이가?” “네 맞아요.” “그래! 야가 느그동네 산다!” 뭐 어쩌라고 시발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이를 악 물고 네에 하고 총총총 돌아온다. 여섯 명의 할아버지들은 3잔의 음료와 붕어빵 12개를 주문했다. 할머니들처럼 음료를 노나먹진 않았지만 커피가 양이 많네 어쩌네 하는 구시렁이 등 뒤를 찌른다.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는 음료 없이 붕어빵을 와구와구 씹어먹고 있었다. 또 다른 날 오전 11시경,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 멤버 6명이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붕어빵 묵자 묵자 떠드는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단체석에 앉은 그들은 붕어빵 한 판에 몇 개 굽냐고 묻더니 붕어빵 4판을 주문한다. 4판은 미니 붕어빵 48개다. 한 사람 당 8개씩 먹겠다는 계산이다. 한 할아버지가 커피를 주문하려고 “커피..”라고 운을 떼자, 체크무늬 벙거지 할아버지가 “붕어빵 있으면 안 시켜도 돼!”라고 일갈한다. 카운터에 선 황연규와 황솔희는 벙찐 얼굴로 할아버지 테이블을 바라본다. “붕어빵 빨리 내온나바라!”
(계속)
* 인스타그램 포스트 2200자 제한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황연규는 담배 피우기를 즐긴다. 스물일곱 무렵부터 담배를 배운 황연규는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했다. 한국, 특히 회사에서 일하다 피우는 담배는 맛이 없다고 느끼는 그는 금연을 시도하다가도 여행만 가면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애초 처음 피운 담배가 태국 남부 따스한 바다위였기에 그랬을까. 여행지의 풍경 혹은 숙소의 여유로움 속에 달콤한 시럽같은 담배 한 스푼을 담아 소중히 마시길 좋아했다. 그런 황연규는 수륜면 엄빠집에서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담배를 즐기고 싶은 마음과, 엄마 아빠 그리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웃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워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미 십년쯤 전 부터 흡연자라는 사실을 엄빠 모두 알게 됐지만 집앞 데크 소파에 앉아 뻔뻔스럽게 담배를 태울 만한 똥배짱은 없는 황연규는 수륜면에서의 담배 맛이 쓰다. 카페를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오후였다. 카페 건물 옆에 마련된 작은 풋살장엔 테이블 벤치와 함께 재떨이가 마련되어 있다. 담배타임 알람이 울리자 황연규는 그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담배를 거의 다 피워 갈 때쯤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 하얀색 제네시스 SUV차량이 멈춰섰고 아줌마 한 분이 내렸다. 트렁크를 열고 짐을 잔뜩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줌마가 내 쪽을 보며 외쳤다. “짐 쫌 가꼬가게 도와줘예!” 개업할 때 오며가며 본 원여사의 친구분 중 한 명, 혜란이 아줌마였다. 혜란이 아줌마는 5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데, 엄마 최측근(?)모임에선 막내 포지션을 담당하는 듯 했다. 이 명랑하고 발랄한 아줌마는 꽤나 화려한 경상도 사투리를 붙임성 좋게 구사했다. 하이톤에 가게 공간을 가득 메우는 목소리가 인상깊었더랬다. 황연규는 남은 담배를 끄고 차 뒤에 내려놓은 짐을 든다. 꽃바구니다. 아마도 개업 선물이겠지. “어머니 안에 계셔예?” “네, 다른분들이랑 같이 앉아 계셔요.” 황연규는 가게에 들어와 가져온 꽃바구니를 쇼케이스 위 빈 자리에 놓아뒀다. 원여사는 뭘 이런걸 사오냐며 입이 귀에 걸렸고, 최측근 아줌마들도 이쁘다 어디서샀냐 한마디씩 거든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황연규는 손을 씻고 카운터에 선다. 신나게 떠드는 아줌마 사운드가 뒤섞여 화이트노이즈같이 웅웅거린다. 그때 혜란이 아줌마가 카운터에 선 황연규를 바라보며 특유의 하이톤으로 말한다. “근데 담배펴여? 담배끄너여! 몸에 해롭따!” 일순간 조용해지는 아줌마 테이블. 황연규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떤 놀이공원에 갔던 날, 어린이 장기자랑 무대 위에 엄마아빠에게 등떠밀려 올라간 그 순간이 플래시백됐다. 장기자랑은 커녕 아무 것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손가락만 쪼물딱거리며 하얀 조명만 바라보던, 귀가 먹먹하던 그 순간. 황연규는 원여사를 쳐다봤다. 원여사는 시선을 테이블로 내려뜨리고 침묵했다. 곧이어 아줌마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야이씨 입방정 주디 관리 안 하나 어쩌고 저쩌고. 지지 않는 혜란이 아줌마는 맞는 소리 했는데 와들그라냐고 역정이다. 황연규는 멍하니 돌아서서 싱크대 속 남은 설거지를 뒤진다. 그는 수세미에 세제를 바르고 붕어빵 접시를 무심하게 어루만지며 동생 황솔희에게 나즈막히 말했다. “솔희야.. 나 마흔이야 시발..”
“원여사 아들이가?” “원여사 안 계시나? 어디갔노?” “회장님 안왔어요?” 원여사. 원여사는 누구인가. 원경순. 1960년생, 그러나 2년 늦은 출생신고로 공식적으론 62년생인 그녀는 아들 황연규를 40살까지 키운 강인한 여성이다. 10년 전 쯤 연고없는 수륜면으로 들어온 원여사는 시골의 오지랖에 질색했다. 하지만 2025년 말, 여행에서 돌아온 황연규가 성주군 수륜면 적송리 원여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수륜면의 미쳐버린 인싸였다. 연규엄마로 불리던 그녀는 어디에선 위원으로, 저기에선 회장으로, 그리고 그 위세에 힘입어 봉사활동 단체도 두어개 나가고 있단다. 황연규는 문득 어릴때 엄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딩 원경순은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더랬지. 지금도 저쪽 테이블에 아줌마들과 대화를 하며 언니야로 불리는 원여사에게선 든든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원여사는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황연규는 생각한다. 2025년 12월. 원여사는 카페 오픈을 앞뒀다. 이 카페는 여느 카페 창업과는 다르다. 수륜면 복지회관에선 회관 한켠의 작은 공간을 카페로 운영하는데, 그 운영을 맡아 할 사람을 해마다 새로 뽑는다. 2025년말 원여사가 지원했고, 유일했다. 하지만 카페 사장이라는 부푼 꿈을 이루기 직전 원여사는 산들이(할머니 댕댕이) 산책을 시키다 어깨를 다쳤다. 수술을 했고, 입원을 했고, 퇴원을 했다. 원여사는 보호대를 착용한 외팔이 상태로 카페 개업을 준비해야 했다. 원여사는 삼남매 중 둘째딸 황솔희와 함께 카페 개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황솔희는 2026년 2월달이 되면 다른 일을 해야 했기에 외팔이 원여사는 일을 도와줄 또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황연규가 수륜면으로 돌아왔고, 밥만 축내는 백수였다. 원여사는 황연규에게 말했다. “연규야. 이러이러한데 엄마 일 좀 도와줄래?” 백수의 왕 황연규는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서울로 다시 올라가 몇몇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이 시기에 원여사를 도와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사십 평생 말을 안 들었던 상불효자 황연규로서는 어쩌면 일말의 속죄 타이밍이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청파카페의 비극은 막을 올렸다.
“아유 총각이 아주 잘생겼네~” “잘생긴 총각이 가져다주니 커피가 더 맛있어보이네~” “아들래미가 너무 잘생기따~” “인상이 너어무 죠타~” 라는 소리를 듣는 성주 수륜면 청파카페 사장님의 아들래미인 황연규는 마치 성주군의 최고 미남이 된 양 기고만장하다. 엄마뻘이 훌쩍 넘는 나이대의 여성분들의 끈적한 대사를 처음 접했을 적에 황연규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건 성희롱인디?’라고 생각하기엔 깡시골의 관용성이란 생각보다 어마무시하다. 알지도 못하는 내게 반말은 기본이고 호구조사는 청문회마냥 대답해야 하는 이곳은 나이가 벼슬인 수륜면이다. 그런 대사를 들으며 언짢았던 나날들을 지나보내고, 지금도 드문드문 잘생겼단 소리를 들을 때면 이제 그냥 내가 졸라 잘생겼구나 라고 생각하며 넘긴다. 심각하게 생각하기엔 그들이 나이가 너무도 많다. 깊게 생각할 껀덕지가 없다. 사랑과 욕망은 커녕 썸은 커녕 영포티는 커녕 영식스티 영세븐티들의 해맑고 명랑한 대사는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은 그냥 그들만의 인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황연규는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고객들을 위해 그래도 이틀에 한 번은 면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아침마다 머리에 헤어에센스를 바르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다듬는다. 평소엔 잘 꺼내입지도 않는 셔츠도 입는다. 고고한 시티보이의 품위유지. 인생의 단맛 매니저 출신 황연규는 그렇게 도도하게 일한다. 이 와중에 사장님의 딸래미 황솔희는 그런 대사를 치는 여사님들에게 일갈한다. “왜 딸래미한테는 이쁘다 얘기 안해주는데요!!” 침묵하는 영세븐티
수륜면의 어느 작은 카페에 일하는 중입니다. 한달이 넘었군요. 이런저런 우당탕탕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장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고 하니 ‘가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인 것 같습니다. 같이 지내며 일하며 자잘한 순간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해들이 모이고 모이니 이해도가 높아진 기분이 듭니다. 오랜 세월 서울에 살았기에 떨어져 지내던 엄마와 아빠와 동생은 제가 알던 사람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튼 그렇습니다. 손님이 생각보다 많고 생각보다 바빠서 생각했던 것 만큼 행복하진 않지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라떼에 하트도 곧잘 띄우는 저는 2월 말까지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