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많다는 것은 늘 느끼고 있었지만, 2025년 10월 11일 이 날은 그것을 더더욱 마음 깊이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고마운 마음 오래오래 간직하고, 서로 아끼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저희 결혼식에 참석해주시고 멀리서 마음써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24년도에는, 사회적으로도 그러하였으나 개인적으로도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0. 일
힘든 일 있으면 “나 힘들어요~”하고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조언을 구하고 다니는 성격인지라 가까운 지인들은 잘 알겠지만, 21년도 12월에 입사한 이후로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나에게 있어 이 일은, 물탱크만한 양의 모래를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온몸으로 감싸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아무리 힘을 주고 수십번 수백번 자세를 바꿔봐도 도무지 잡히지 않는 느낌.
그래서 그 구멍들을 틀어막고자 일과 일상 구분하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외출을 하더라도 회사 노트북을 들고 나갔고, 휴가를 가더라도 그 기간엔 내 애인 얼굴보다도 노트북을 대면하고 있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실수가 안나게 하고자 모든 일을 세번 네번, 어떨 땐 다섯번까지도 다시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두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고 그로 인해 건강이 많이 상하고 정신도 꽤나 피폐해졌던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했는가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무능력하다고 느껴지는 그 기분이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특히나 팀에 피해가 간다는 점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면 이직하든가 관두라는 조언도 많이들 해주셨지만, 일단은 지금 이 업무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이직을 알아볼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무언가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관두면, 다른 곳이라고 과연 나을까 싶었다. 나에게 안맞는 일이다라고 판단하기에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도망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련했나 싶기도)
어느날 나의 상사는 나에게 면담을 하자하였고, 역시나 내가 뭘 또 잘못했구나 하면서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하는 말이, “이러다 영지씨 말라죽겠어요”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당시에 꽤 오랜시간 울었던 것 같다. (내 기준에) 내가 내는 결과가 엉망이었음에도, 그 과정 속에서의 노력들을 알아봐주고 계셨구나 하는 맘에 눈물이 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팀원들은 여러방면에서 내가 하는 일을 함께 봐주었고, 재정비할 수 있도록 많은 논의를 함께 해주었다.
회사란 곳은, 과정과 상관 없이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곳이고, 그래야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팀원들의 마음은 정말 뜻밖이었고 내게 계속해서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팀원들을 비롯하여 회사 밖의 직장인 선배들에게도 여러 도움과 조언을 구해가며, 이 일이 손에 좀 잡힌다고 느껴진 시기가 작년 6월 쯤부터였다. 일이 더이상 모래로 느껴지지 않고 코코넛(?) 정도로 느껴진달까.
이런 것을 인정받아서인가, 감사하게도 24년도 12월 31일에 나는 승진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고작, 주니어에서 좀 덜 주니어가 된 것 뿐이고, 잘해서라기보단 앞으로 더 잘해달라는 점에서 하게 된 승진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름 인생의 큰 챕터였던 대학입시, 취준, 그리고 그 다음으로 치열했던 나의 주니어 시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이틀 정도는 뿌듯한 기분을 좀 즐겨볼까 한다.
그 과정에서 항상 함께해주셨던 제 가족과 지인 분들... 함께 술마시며 수없는 나의 눈물과 징징거림을 받아준 귀한 나의 언니오빠들, 동생들, 친구들 모두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유로 더이상 예전만큼 가깝게 지내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이 글이 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고마웠고 모두 그대들 덕분이라는 점 알아주세요! 맘 속에 꾸욱 꾸욱 눌러담아 넣어두고 잊지 않고 살아갈게요.
그리고 이 글이 뭐라고 여기까지 다 읽어준 그대들도!!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고 25년도에는 꼭, 꼭! 더 평안하고 무탈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