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얼루어>에 이런 칼럼을 썼습니다. 다음번 카스를 마실 때 SNS에 올리자, 생각하고선 그때까지 5달 넘게 걸렸네요. 지금껏 가장 많이 마신 술이라면 역시 카스오비하이트…일텐데, 정작 사진을 찾아보니 몇 컷 없었어요. 국산 라거(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대기업 주류회사에서 만든 대량 생산 라거. 원고 쓸 때 이 호명으로도 조금 고민했는데, 암튼)는 그런 술인 것 같기도 해요.
_
이 술을 주문할 때면 고유명사보다 보통명사가 본능처럼 앞선다. 양조장과 술의 스타일을 바텐더 앞에서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이 술꾼의 은밀한 즐거움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맥주 세 병 주세요!" 술집 주인의 무뚝뚝한 말투에 실려 술의 이름은 그제서야 들려온다. "카스랑 하이트 중에 뭐 마실 거에요?"
갈색 유리병의 뚜껑을 딴다. 좌중에 긴장감은 없다. 모두가 이 술의 맛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열일곱, 열아홉, 스물하나, 처음 술을 입에 댄 나이는 제각각이라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첫 맥주'를 이 주종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국산 라거. 수제 맥주 유행이 한창 일어나던 시기, 몇몇 미식가들은 국산 라거의 풍미를 빗대며 ‘묽고 비릿한’ '말 오줌'이라는 표현을 썼다. 조금 더 인용하자면 '제조 공정상 몰트와 홉의 비율이 낮은 발포주'라는 설명이 있었다. 잘 유통되고 관리된 국산 맥주는 오래된 수제 맥주보다 오히려 맛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코멘트, 한국 라거의 싱거운 풍미가 한식과 잘 어울린다는 고든 램지의 증언(오비맥주의 모델로 일하던 중이긴 했지만)이 뒤따르며 말 오줌 운운하는 비웃음이 사라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국산 라거의 맛이 심심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다. 카스를 따르는 순간, 과연 누가 술과 거품 사이 '황금 비율'에 신경을 쓸까? 연노랑빛 투명한 액체가 콸콸 투박한 유리잔으로 쏟아진다. 비누 거품 같은 포말이 글라스 가득 포르르 솟구쳤다가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나도 모르게 꺼져버린다.
국산 라거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떠올리는 건 맛이 아니다. 그것은 술자리와 함께 마셨던 사람들, 기억과 취기 어린 이야기, 발포주 거품처럼 부글거렸다가 밤의 어둠 속으로 흘러가버렸던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술의 풍미를 알아가기 이전, 아니 지금까지도 술을 좋아하는 첫번째 이유다.
나는 이제 조금 심각하고 때로 우스꽝스러운 알코올 스놉이 되었다. 술의 맛과 향, 술을 마시는 ‘양식’을 통해 술집과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카스를 두세 짝씩 쌓는 가맥집에서라면 술자리가 마음을 사로잡는 근원적이고 거센 힘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서사로 빚어지는 데 성공한 삶은 예술이 되지만, 이야기가 될 수 없었던 삶은 망각으로 흐른다. 사람들의 일상은 말이 되고 싶어하고, 밤의 술집은 그 욕망으로 충만한 장소다. 나는 그런 풍경과 분위기를 언제나 좋아했다. 카스를 간이 테이블에 가득 열병하는 밤, 우리는 저마다 말하기에 열중한다. 각자의 특별하거나 시시했던 하루가 맥주 포말처럼 입술 위에 묻는다. 차갑고 싱거운 라거는 벌컥벌컥 들이켜질 뿐, 발화와 취기의 속도를 방해하지 않는다. '쓰여지지 못한’ 이야기들은 결국 아침 햇빛 너머로 사라지지만, 여기 잊혀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때 네가 거기에서 했던 그 얘기 말이야..." 정확한 농담과 어리숙한 고백에 대한 기억들은 언제나 카스나 하이트, '쏘맥'을 편하게 들이켜던 술자리에서 가장 흥건했다. 술집과 술의 맛이 희미하게만 떠오르는 대신.
오늘 밤에도 이 도시에는 그런 술자리가 수십만 번 명멸할 것이다. 칵테일의 가없는 변주, 하드리쿼의 바닥 없는 깊이에 반한 후에도 '내가 좋아하는 술'의 대답으로 국산 라거를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