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집합이 생긴 날]
지난 수요일, 송도 일정을 마치고 다음 일정까지 4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종일 혼자 계실 엄마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본가로 향했다.
엄마가 내어주신 차와 케익을 먹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드리고. 다음 일정 2시간 전, 동네 산책도 할 겸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엄마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엑스트라스몰에 방문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다면 진작 모시고 올걸, 하는 후회가 될 만큼 엄마가 너무 잘 즐겨주셨다. 신이 나신 엄마는 맞은편에 앉은 사장님네 형님 부부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시고, 고맙게도 사장님이 양조장 투어까지 시켜주셔서 나도 덩달아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됐다. 우리 동네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기쁘기도 하신 지 호기심 어린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살펴보시며 수다스럽게 재잘대시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너무 흐뭇했다. 내가 좋아하는 xs 사람들이 엄마를 반겨주는 모습도 너무 감사했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엄마 걸음에 맞춰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요즘은 이런 게 있어, 엄마” 하면서 소개해 드리는 것에 반응이 너무 좋으시니 더 자주 모시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효도가 별 게 있나. 그저 자주 찾아뵙고, 두루 살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모든 일상의 작은 것들이 쌓이는 게 어떤 큰 이벤트보다 값지다는 걸 새삼 느꼈다.
엑스트라스몰에서 나와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연신 재잘대시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세 딸 중에 문화적인 코드는 나랑 제일 잘 맞는다고, 나랑 놀 때가 제일 재밌다고.
나도 엄마랑 시간 보낼 때가 가장 좋아. 🤍
처음엔 단순히 장만옥의 풋풋했던 배우 초기 시절의 모습이 눈에 띄어 이 영화를 선택했다. 내용은 조금 어둡고 다소 지루한듯 했지만 아르데코 양식의 전성기였던 30년대 상하이라는 배경과 90년대 장만옥의 우아함과 치파오 의상, 그리고 미장센이 너무 좋아 결국 끝까지 다 봤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내용은 그리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영화를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세번 째 보는 영화다.
영화 〈롼링위〉(1991)는 한 여배우의 삶을 단선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장만옥이 연기하는 롼링위의 삶은 컬러로, 현재의 시점에서 감독과 장만옥이 그녀를 분석하는 대화는 흑백으로 서로 교차하며, 한 인물은 수많은 시선 속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1930년대 상하이.
혁명과 근대의 바람이 동시에 불던 이 도시에서 롼링위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영화 밖의 삶에서는 늘 감당하는 쪽에 서 있었다. 몰락한 연인의 방황을 떠안았고, 이후 만난 유부남 재력가와의 관계에서는 안정과 죄책감을 동시에 짊어졌다. 조용히 연정을 품었던 신인 감독과의 관계는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남았고, 세 남자와의 감정적 좌절 위에 옛 연인의 사생활 폭로로 언론의 공격이 더해진다. 사실여부 보다 도덕적 잣대가 앞섰고, 그녀는 해명보다 침묵을 택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자주 물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요?”
그 질문을 반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롼링위는 타인에게 남기는 흔적을 누구보다 의식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극도로 꺼렸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불편과 고통은 차라리 자신이 감당하는 쪽을 택했을 사람. 갈등을 외부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삼켜 침묵으로 처리하는 성격. 그래서 그녀의 선택들은 언제나 조용했고, 고통은 늘 혼자만의 몫으로 남았다. (장담하건데, 그녀는 분명 INFP였을 것이다!ㅎ)
결국 롼링위는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죄를 인정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윤리 의식이 남아 있던 그녀가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감당해야 할 형벌로 여긴듯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선택을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인간의 결핍은 어디까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도덕이라는 명목으로 재단해왔는가. 유명하다는 이유로, 한 인간의 삶은 어디까지 해부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결핍과 실수를 얼마나 쉽게 이야기로 만들고 소비해왔는가.
롼링위의 삶에는 분명 모순과 흔들림, 인간적인 약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어둠을 확대해 비난하며 스스로를 안전한 위치에 두려 한다. 흠 없는 사람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면, 과연 이 세상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롼링위〉는 한 여배우의 삶을 애도하는 영화이자, 지금의 우리를 조용히 비추는 거울이다. 그녀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끝내 드러내지 않은 진실의 다른 이름처럼 남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인간의 이중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 해를 돌아보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예배를 드렸지만
모두 다른 결로 한 해를 살아왔다.
누군가는 말없이 자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웃음으로 분위기를 밝혔으며
누군가는 조심스러운 기도로 공동체의 숨을 이어왔다.
‘같은 순’이라는 작은 공동체 아래 있었지만
각자의 사랑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흘렀다.
조용한 배려로, 꾸준한 섬김으로,
혹은 그저 곁에 있어 주는 따뜻함으로.
특별해서 빛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그대로 두었기에
더 온기가 있었다는 것을
한 해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주인공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그 전까지 화면을 채우는 것은
주변의 소리와 침묵뿐이다.
히라야마의 삶은
겉으로 보면 단정하고 안정돼 있다.
잠에서 깨어 이불을 개고, 이를 닦고 면도를 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집을 나서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다.
영화에서 청소부로 등장하는 그는
공중화장실을 구석구석 닦고,
공원에서 혼자 점심을 먹으며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
늘 같은 나무를 찍는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 들르고
늘 가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와
중고서점에서 산 책을 읽다 잠든다.
그의 하루는
이렇게 묵묵한 루틴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쉽게
“그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 확신을 조금씩 흔든다.
무료한 일상 속에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
-젊은 동료, 그의 여자친구,
오랜만에 찾아온 조카, 식당 여주인-
그들은 히라야마의 단조로운 삶에
짧은 사건을 만든다.
그 파문 속에서
히라야마는 분명 살아 있는 얼굴을 한다.
웃고, 흔들리고, 설레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르는 장면.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얼굴에는 단순한 평온이 없다.
눈물이 차오르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가
이내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웃는다.
그 웃음과 슬픔의 반복은
“나는 괜찮아”라는 표정이면서 동시에
“괜찮다고 믿고 싶어”라는 얼굴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자신의 삶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책방 주인이
그가 고른 책, 페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을 보며
“불안과 공포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히라야마가 고른 책, <야생 종려나무>와 <11> 두 책 모두
사회가 규정한 제도와 일상에서 도피하려는 인물들의 불안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가
이 단조로운 루틴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 삶이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깨는 순간 따라올
불안과 공포 때문은 아닐까.
내 눈에 비친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할 용기와
지금의 삶을 부정할 용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내게 위로를 건네면서도 숱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지금,
정말로 이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에서 나는 힘을 얻는다.
늘 같은 햇빛,
하지만 매번 다른 그림자처럼.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지금’은 언제나 다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두려울지라도
그저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Perfect Days다.
지금까지 숱하게 백패킹을 해왔지만 처음으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좁은 공간의 갑갑함을 느꼈다.
점점 목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어지러움과 함께 호흡이 가빠졌다. 급해진 마음에 후드를 벗고 침낭 지퍼를 열어젖힌 뒤, 부티와 양말도 벗어 던지고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았다. 침낭을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히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몸은 갑갑했고, 근육은 점점 뻣뻣해졌다. 이대로 패닉 상태에 빠질 것만 같았다.
이번에 가져간 텐트는 공격형 1인 텐트라 앉으면 머리가 닿았다. 그 사실이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와 이너텐트 지퍼를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보았다. 하지만 갖은 방법을 다 써봐도 여전히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지러움과 함께 공포감이 점점 밀려왔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폐소공포증’인가 싶었다.
살면서 어느 순간 터득하게 된 것 중 하나가 있다.
어떤 감정에 매몰되려고 할 때, 그 감정에 집중해 빠져들며 증폭시키기보다 무시하고 흘려보내는 것. 이번에도 그 방법을 선택했다. 기도를 드리며 오로지 내 안의 소리에만 집중했다. 갑갑함과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애써 붙잡지 않고, 점점 흐릿하게 흘려보냈다.
이내 호흡이 안정되고 몸의 근육들이 하나둘 이완되었다. 몸에 다시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침낭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렸고,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작고 낮은 텐트 안에서 생각보다 단단한 잠을 잤다.
그날 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침낭은 압박붕대를 온몸에 두른 것 같았고, 텐트는 낮고 좁았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천은 얇았다.
달라진 건 공간이 아니라 나였다.
나를 삼키려 드는 감정 앞에 매몰되지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고, 그저 지나가게 두었다는 사실. 그 선택 하나로 공포는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사라졌다.
아마 삶의 많은 순간들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숨이 막힌다고 느껴질 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을 때, 어쩌면 내가 그 감정에 빠져들어서 이름을 붙이고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지.
굴업도에서의 경험은 그렇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두려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붙잡지 않으면 스스로 힘을 잃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하나의 증상을 만들어내 지니고 살 뻔했지만, 감정에 굴복당하지 않고 흘려보내며 나를 가두지 않는 법을 또 한 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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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 언니와의 첫 만남은 작년 여름.
내 오랜 친구이자 <아시아 세계 희곡 축제>를 기획하신 연극 연출가 이재상 선생님 덕분이었다. 나는 찬조금 대신 촬영으로 재능 기부를, 언니는 선생님이 각색·연출한 희극에서 배우로 참여했다.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처음 마주 앉았는데, 그때 언니는 내가 일할 때의 날카로운 눈빛과 카리스마와 달리 아이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너무 상반돼 놀라웠다고 훗날 고백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우리는 선생님의 통역 없이도 하루 종일 서울을 함께 걸었다. 이후 내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둘만의 대화는 점점 깊어졌고, 선생님은 언어가 안 통하는데도 떨어질 줄 모르는 우리를 신기해하셨다. 이제는 서툴게 단어 몇 개만 섞어도 눈빛만으로도 알아채고 서로 깔깔 웃는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도 한국을 방문한 언니는 선생님의 연극을 보러 강진으로 내려가기 전에 며칠간 인천에 머물렀고, 서로 하루 시간 맞춰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언니가 오랫동안 한국을 숱하게 오갔으면서도 혼자 지방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혼자 생소한 고속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걱정돼 내가 터미널까지 동행하겠다고 하자, 언니는 일본인 특유의 ‘폐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연신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입과 달리 눈빛 속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ㅋㅋㅋ
그래서 언니와 아무 말 없이 몇 초간 눈을 맞추다 말을 꺼냈다. “친구로서 뭐든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너무 기쁜 일이에요. 폐 끼치기 싫어서 혼자 가려고 한다면 친구로서 난 오히려 서운할거 같아. 나를 마음껏 이용해 주세요. 그러니 우리 같이 가요!” 몇 번의 승강이 끝에 언니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숨을 내쉬듯 “요캇타…” 하고 말하곤 그제야 편히 웃는다. ㅋㅋㅋ바보!
다음날 아침 일찍 주안역에서 만나 현지인도 찾기 헷갈리는 그 큰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호남선을 겨우 찾아 버스 승강장에서 짐을 실어주고 중간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 점과 짐칸 여는 법을 알려주고는 기사님께도 연신 부탁을 드린 뒤에야 마음이 놓여 가볍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늘 그렇다. 어디에서든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마지막엔 꼭 한 번 껴안고 다음의 기약도 없이 또 내일 볼 것처럼 “마따네”라고 인사를 나누며 쿨하게 돌아서서 간다. 서로를 오래 붙잡지 않고 담담히 돌아서지만 그 짧은 포옹과 한마디 속에 다음 만남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게 스며 있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설치미술 같은 곳
-배곧 카페 ‘willow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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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조명 아래,
생각도 천천히 흐른다.
이곳의 공기는 시간마저 느리게 만든다.
-배곧 카페 'willow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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