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이리도 큰 구멍에 내던져진 기분인 것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한다.
어제는 끝끝내 죽어버리는 결말을 가진 소설을 보았다.
주인공M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양 팔을 머리 뒤로 젖혀 괴어놓고 와상에 잠기다 자신의 운명을 납득했다. 같잖은* 신의 인도를 위한 사제를 위협해놓고 그는 누웠다.
그러나 M은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이대로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다보니 사실과 거울처럼 마주보게 누워있었다.
하늘은 진실을 보여주며 사실 옆에 누웠다.
나는 M의 옆에 똑같이 양 팔을 머리 뒤로하고 누웠다.
신앙심을 대개 상실해버린 이후 죽음은 한껏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뿌리쳐야 할까 고민했던 적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그것은 너무 가볍게 사뿐히 내 몸에 들어와서 모든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때 미끈하게 뜨끈해진 바람같이 어딘가 매우 불쾌해진다. (대부분 그 냄새는 하수구에서 올라오기에-)
나는 언젠가 껍데기만 나의 모양을 한 죽음이 나 대신 행색을 하며 길을, 도시를 걸어다닐까 두렵다. _7_
*오래된 노인과 아저씨들, 고등학생들, 커플들*
몇개월 전 대낮에 한창 취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노인을 보았다. 그는 머리가 약간 벗겨지고 백발에 어딘가 풍족한 내심을 품고있는 듯이 겅중겅중 걸어오더라. 그와 엇갈려 지나선 인도의 턱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뒷바퀴가 번쩍 들어올려지며 내달리기 시작하는 오토바이의 뒤통수를 보았다.
어제는 똑같은 노스페이스에서 나온 검은 패딩을 입고, 비슷한 머리모양을 한 7명의 남고생들을 보았다.
그들은 작은 간이 놀이터에서 운동기구를 번갈아 타면서 놀고있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들이 약간은 귀엽다 생각했다.
지금은 눈이 내린다. 옆자리엔 남녀 한쌍의 커플이 앉아 그들만의 대화를 즐기고 있다. 남자는 여자보다 한참 먼저 도착해 작고 푸르스름한 꽃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기다렸다. 작게 끄덕이면서 책을 몇페이지 읽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식의 제스처를 자꾸 해댔다.
한참 지나서 여자가 왔다.
둘은 활짝 웃으며 서로를 환대했다. 남자는 즉시 꽃을 여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둘은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대목에서 주인공이 남자에게 키스하고싶어진 것은 처음이라는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 또 몇개월 전, 노인을 마주한 아침에 혼자 길에서 회를 먹고있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는 매우 공주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러니 우스워졌다.
그는 내 기억속에서 얼마간 몰래 회를 먹고 있었던 걸까._6_
*짝퉁 유토피아*
눈을 감는다. 거센 비가 회오리를 만들며 세차게 내린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소리일 것이다. 오로지 검은 구덩이만 사방에 펼쳐져 있는 곳에서 눈을 떴기 때문일 것이다.
눈꺼풀의 안쪽을 가만히 쳐다보면 이 공간에 다다를 수 있다. 오로지 암흑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암흑은 대부분 가만히 숨을 죽이고 나를 관찰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은 빗소리를 깨트리며, 작고 축축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와 선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관찰하거나, 나를 중심으로 돌면서 괴이한 춤을 추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럴것이다. 그것의 움직임 떄문에 너무나 많은 불규칙한 빗물이 생기고, 그 빗물이 날 자극해 언제나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더 드물게,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정확히는 질문한다. 더 정확히는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질문한다.
나는 언제나 대답할 수 없다. 생각을 한 점으로 모아보려다가도, 이 빌어먹을* 빗소리 때문에 생각이 분해되어 흩어져버린다. 그러면 이제 암흑은 내 마음속에 훌쩍 들어와서는 눈꺼풀과 눈알 사이를 파고들어 굳이 밉살스러운 웃음을 보여주곤 한다.
미친놈! 미친놈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것이 하는 그 얼굴도, 이상한 춤도, 아니 그것 본인 자체도 전부 무어라 부르는지 알고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것을 명명해 당장 불러세우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되겠지,,,,,,,
이름을 부르면 그것은 더 뚜렸해져서 더 큰 발소리로, 더 큰 눈으로, 더 큰 웃음으로, 더 큰 춤으로 보답할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렵다.
이곳은 나만의 짝퉁 유토피아. 언젠가부터 내 안에 생겨나선 사라지지 않는 나만의 아공간이다. 과거에 이곳의 주민을 알아채지 못했을 적에는 종종 놀러와 이것저것 들여다 놓고는 쥐죽은 듯한 검정을 즐기다 가곤 했다. 어느날 내 꿈에서부터 등장한 그것이 내 암흑을 날치기 한 이후로는 그것의 것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짝퉁이니 그래도 좋다.
진짜는 내 안에 담아놓을 수 없을만큼 거대하니까.
비가 내려도 좋다. 오히려 비가 내려서 좋다.
진짜는 눈이 내린다. 주먹만한 밤눈이 내려서 회색이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보지 않아도 된다. 보여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진짜 암흑에 도달하기 전까지, 나는 내 짝퉁 유토피아에서 그것과 동거한다. 언젠가 그것이 나를 떠나면, 나도 그곳을 떠날 것이다. 진짜 암흑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니, 돌아갈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끼지도 않는—.
그리고 만약 여유가 된다면, 그런 권리가 주어진다면,
죽을 수 있다면 이런 고요 속에서 죽고 싶다.
*A와 눈*
어디를 보고 있느냐고 들었다. 나는 분명히 지정된 곳을 보고 있었다. 대화하는 A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A는 작게 웃었다.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가끔 어딜 보고 있는건지 모르겠어.>A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무었을 던져준 걸까 가끔 A는 이상한 질문을 한다.
나는 당신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눈을, 표정을, 안색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A는 눈도 같이 작게 웃었다.
지금은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다. 심야버스로, 주변은 검은색으로 가득하고, 고속도로의 열에 맞추어 작게 불규칙적으로 덜컹거린다. 많이 추워진 날의 탓에, 난방을 켜니 창밖에 성에가 껴 밖이 흐릿하게 번쩍인다. 나는 그 검은 세상을 더 자세히 보고싶어서 차에 딸린 커튼 조각으로 자꾸만 창문을 닦는다.
다시 성에가 껴서 흐릿해지기 전까지는 줄곧 밖을 내다 볼 참이다. A는 그런 나를. 게속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더라.
세상은 밤이었다. 심야가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 공간이었다. 가끔 박혀있는 가로등의 누런 빛은 때로는 주황색으로, 때로는 흐릿한 연둣빛으로 바뀌며 빛나고 있다. 저 먼 아파크의 칸칸이 박혀있는 네모난 빛의 상자들만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 공간은 심야 속에 은하가 펼쳐져 잇는 인상이었다. 가로로 긴 은하의 옆면을 내달리는 풍경이더라.
<뭐가 보여?> A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검은색만 보여.>나는 대답했다.
A는 어째서인지 다 이해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별난 사람이네.>
A는 언제나 나에게 별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리라. 나는 그저 밤은 밤 다워야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밤다운 공간을 가진 장소도 몇 남지 않았으니 지금 봐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나는 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고도.
A는 또 별난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럼 다른건 무얼 좋아하냐고 물었다.
<네가 뭘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왜이렇게 이상하지.>
A는 질문에 감상을 덧붙였다. 아마도 무엇에도 그닥 흥미를 보이지 않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직접 언급한게 우스웠을지도 모른다.
<겨울에 보는 바다랑, 새랑, 음악이랑, 커피.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의 전부야.>- 정말 전부였다. 나는 혹시 모를 추가적인 질문을 생각해 내가 가진 전부를 한꺼번에 말했다.
<생각보다 많네.>A는 작게 웃었다.(여전히 눈은 제외하고) 나는 또 생기면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했다.
A에게서 눈을 떼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뜩한 가로등이 강한 빛을 쬐며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이 부셔 찡그리고 성에가 낀 창문을 다시 닦아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깨끗하게 갠 검은 하늘이었는데, 이제는 꽤 멀리 나와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회색 하늘이 되어 산과의 경계가 뚜렷해져 있었다. 덕분의 산의 끄트머리를, 나무의 작은 가지와 잎맥의 모양을 하나하나 세어낼 수 있을 듯 명확한 구덩이들이 여기저기에 지나갔다. 나는 창을 통해 온통 검게 물들어 한 덩어리가 되어있는 심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차 그 구덩이는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해서, 내 시야 속에서 점점 벗어났다.
-내 눈은 그 검은 생명체에서 자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작은 가로등 불빛이 점점 일그러지며 반딧불이처럼 흩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 박자에 맞추어 버스가 움직이고, 파도가 내리치고, 음악이 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질러가는 저 화물용 트럭이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앞으로 뒤로 끄떡이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어린아이가 타는 목마같이. 저것이 심야의 박자에 맞지 않아 움직이다가 부서지지는 않을지. 그리고 언젠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더라도 제 목적지에 잘 다다라 그것의 안락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딜 보고 있는거야?>A가 묻는다.
그 순간 나는 심야의 내부에서 단숨에 빠져나왔다. 갑자기 모든 걱정이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작게 웃으며(눈도 함께 말이다.)
<곧 서울인가 봐. 차가 많아졌어. 가로등이랑 건물도.>
그러니 A도 뒤따라 작은 미소를 지으며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을 바라봤다.
나는 그가 시계를 바라보는 동안 꼭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이 글을 쓰는 것은(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오랜만에 나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내가 16살, 그러니까 만으로 14살이 되던 해에, 내 친구가 죽었다. 정확히는 스스로 15층인 그녀의 집에서 뛰어내려 중력에 못이겨내고 생을 끝낸 일이다. 나는 그 이후로부터 격렬히 요동치던 내 안의 신앙심을 잃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툭하면 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심약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으로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온순한 어린양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어버렸다. 그녀가 세상에 없어지면서 내 안의 신앙심도 죽어버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일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동네 근처의 유일한 큰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원망으로 울던 그녀의 어머니도, 평소엔 웃기만 하던 M양의 눈물도, 그리고 그 뒤에서 그녀의 교복 뒷덜미를 잡고 가짜로 흘렸던 내 가식의 눈물도. 자세한 일은 기록하지 않겠다. 이건 그녀를 위한 나의 마지막 예의이다.(기록은 영원히 기억되니까.)
분명 그녀는 9월의 마지막 날에 죽었다. 그 다음주는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일주일만 기다렸다가 죽었으면 무엇인가 달랐을까 의문한다.(다 소용없는 일이다.)
*제 손에 관하여*
어느날이 기억난다. 몇번이고 넘어지고 넘어지는 걸 보았던 돌판으로 대충 꾸려놓은 그 길에서 문득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날이다. 당시 나는 그 돌길에 작게 피어있는 무궁화나무 밑에 서서 채 피지 못하고 떨어진 무궁화 꽃 봉우리를 보고 그것이 다 살지 못하고 죽은 새라고 오해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생이 흔치 않은 것인지, 얼마나 쉽게 살아가고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에 몸을 종종 떨곤 했다.
아주 날이 맑은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길은 마주볼 수 있게 설치된 벤치 두개가 나란히 놓인 작은 정자로 이어지고, 옆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종종 큰 비가 내리면 그 위치에 홍수처럼 물이 고이고 범람해 때가 껴 있었다. 그 초록색 지붕을 바라보며 손에대해 생각했다. 나는 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발 밑에 짓이겨진 꽃을 보면서도 손을 생각했다. 그것이 손에 대한 생각의 시작이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본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여보며 여러 자세를 취해본다. 그때 그 손은 내 손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 이 피사체가 정말로 이어져있는것인지 재차 확인한 후에야 이것이 자신의 손일 수 있겠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당시의 나에겐 그렇게 멀게 느껴졌다.
그 손은 나에게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마치 자신도 모르게 어떤 실험 안에 들어와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게 자연스러워졌다. 어느새 이 물체가 내것이었고, 내것임(지금도)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내 발 밑의 이것도 자라다 만 새가 아니라 그저 꽃에 불과하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전과 같은 그것이 아니었다.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위치에서 똑같이 행동했지만 그것들이,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나 자신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작은 비밀이 있다는 듯이 은은한 눈웃음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급격한 세상의 태도 변화에 지금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연령이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그러나 내가 학교에서부터 들고나온 신발주머니를 걷어차고 있었던 그즈음,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날 이후로부터 종종 생은 무었인지, 내가 몸을 기대는 세상이란 무었인지 생각하곤한다. 아마도 그 날에서부터 나는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 이동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것이 자연스러운 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단서를 찾아가며 늙고 있는 이방인이 되어버린 걸지도. 나는 작은 소설 속 문구를 생각하며 다시 손을 들여다본다.
내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 학원에서 만난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종종 회색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근시용 안경을 썼다. 때로는 체크무늬 난방을 걸치고, 붓이나 연필로 긴 머리를 고정하곤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당시 동네를 걸어다니면 비슷한 사람을 하루에도 몇명은 볼 수 있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가 떠오른 이유는 내가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나보다 2살 위였고, 재수에 삼수를 겹친 여자였다. 그리고 음악을 과하게 좋아했던 당시 원장님은 그녀가 듣는 음악을 아주 싫어했다.
“싸구려 음악”이라고, 사람이 싸구려라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조금 지나서 다시 떠올려보면 그런 뜻이 아니었으리라. 원장님은 그녀의 음악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그녀가 싫었던 것이리라.
그녀는 잘 자책하는 성격이었고, 잘 도망치는 성격이었고, 나아가 잘 희생하는 성격이었다. 누구에게나 잘보이려 했고, 원래 자신은 그정도라며 자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잘 퍼주는” 그런 여자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의 집 사정은 안좋았고, 그녀 자신의 삶도 기울어가고 있었으며, 금전적/ 정신적으로 가정에 해를 가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원장님은 그게 그렇게 싫었을 것이다. 태도는 냄새같은 것이라, 지울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게 세어나와 악취나 축축한 습기를 선사했을 것이다. 그게 어쩌면 그녀를 질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또한 단지 나의 추측이지만— _28_
요 며칠동안 비만 내립니다. 오늘도 비가 안내릴것만 같다가, 오후 8시쯤 비가 막 쏟아집니다. 그것두 모르고 4일째 집 안에 있다가 나갈 채비를 했는데. 어쩐지 집주인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박스를 엘리베이터에 우겨넣는 아줌마의 모습에, 멋쩍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그 상황에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눈처럼 내렸습니다. 가로등 밑을 지나가며는, 야릇하게 우산 사이로 비치는 불빛들. 그곳에서만 보이는 빗줄기들. 설레설레 손을 흔들듯 내리는 비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늦은 저녁, 집 앞 공원은 몇몇 가로등만 있을 뿐 서울 속에서 아주 어두운 축에 듭니다. 그렇게 가로등 밑에서 눈처럼 내리는 비와 아주 어두워진 나무들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하늘은 붉은 회색, 갈색이기도 한 기묘한 색이고, 나무는 진한 녹색이고, 사람들의 뒤통수는 형형색색으로 적셔지고 있습니다.
계속 걸어갑니다. 연인들은 우산이 두개여도 하나만 필요합니다. 제 나이에 안어울리는 귀여운 인형을 달고 다니는 아저씨도 있습니다. 저 여자의 노란 꽃무늬 우산은 가로등 밑에서 발광하는 듯 합니다.
비에 젖은 축축한 몰골의 여학생들이 축구를 해댑니다.
사이사이 서울이라 보이는 고층 건물의 이마는 파랗다가, 혼자 초록색으로 빛나는 이마가 있고요- 막 달려가는 수십 뒤통수. 나는 또 그들의 팔다리 구멍 사이로 튀기는 눈처럼 내리는 비를 바라봅니다. _14_
어제는 O양과 K양의 생일이었다. K양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여전히 종종 연락하기에 축하의 문자를 보냈다. O양은 얼굴을 마주한지도, 연락을 하지 않은 지도 수 년이 지났다. 이젠 서로 아주 멀리서 하는 일을 확인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오늘 꿈에 O양이 나타났다.
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O양에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 포기하려 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니 O양이 덥석 내 어깨를 잡아 나를 돌려 앉혔다. 왜 나한테 연락이 없냐고, 자신은 이미 잊은 거냐고, 이젠 우린 친구가 아닌 것이야고 화를 내더라. O양다운 답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용기조차 없었으니 대신 다가와준 셈이다. O양은 종종 내 일을 말 없이 응원하거나, 생일에 연락이 오기도 한다. 나는 그럼에도 그녀에게 연락을 보내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나는 화내는 그녀에게 이젠 내가 걸림돌이지 않느냐고, 남자친구 만나고 직장에 자리잡아 행복하니 오래된 관계에 윤택하게 흐르지도 못하는 나와의 사이는 조금 멀어지는게 좋지 않느냐고, 민폐가 될 생각은 없다 변명했다. O양은 분노했다. 조금 슬픈 얼굴에, 중학생 때 그대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격을 나는 이길 수 없다.
고양된 감정에 잠에서 깼다.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그 꿈은 지금 O양의 진심인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_49_
돈이 싫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지는것도, 단지 밥을 못 챙기고, 잠을 잘 수 없는 것도, 부자유함도 싫다. 사람들은 돈만을 바라보며 산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나는 세계여행을 다니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비록 수영도 잘 못하지만 알 수 있다. 더 많은 말을 알지 못해도 알 수 있다.
저 오후의 종말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끼얹으며 춤추는 플라타나너스를 보라.
세상의 아름다움은 오롯이 저기에 건재하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시간을 잊었다. 시간 속에 사는 것은 단지 시침, 분침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시침 분침을 때때거리며 따지다보니 저절로 시간 속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밤을, 낮을, 그리고 아침을 바라보지 않고 살게 되었다. 이제 도심 속에서 어두운 곳은 없고, 노동으로 인해 하루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나는 때때로 2층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곤 한다. 몇시간을 지켜보아도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인간은 네모난 것 밖에 봇보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세계 속에서 살지 않는 인간은 인간일까. 나는 슬프다.
내 삶동안 내가 세상 밖에서 사는 것인줄 알고 지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된다고 해도 상태는 여전하다. 네모난 세상에 들어가야 할까, 둥근 세상에 들어가야 할까. 그것도 여전히 의미 없는 질문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인 채, 나는 나인 채. _69_
*이것도 곧 있으면 사라지리라*
끄냉이를 달고 날아가는 저 먼 가억은 오늘도 아슬하게 지나치고,
잡아내려 했던 것들은 왜인지 언제나 한순간 늦게 깨닫게 된다.
끝이 없을 것이라 안심하거나, 지겨움에 인내를 느끼고 있던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끝이 난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살살 먼지가 날리우던 그 품 안에서, 미지근한 온기를 느끼며 언제까지나 끌어안고 있겠다던 작은 것들은 이젠 어디에 있는 걸까 알지 못할만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여전한 것들은 여전하다. 굳게 자리를 지키는 기억도 있다.
작게 뭉쳐서 단단한 구슬이 되었다. 이것은 내 심지에 붙어있어 한몸이 되었다. 그렇기에 더이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희망한다)
아무리 큰 불안이 다가와도, 그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
엄마가 하는 말. "오늘만 잘 살아내면 된다"고. 그러니 곧 사라질 것이다.
이 불안과 엄마가 공존하는 장면에선 구슬이 된 엄마만 남을 것이다. _54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