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ART GALLERY
조금씩 굴러가는 동그라미 / 오시영
• 오시영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시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사물이 단순해지고, 함축되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시 같다는 표현 감사합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얘기인 것 같아서 좋아요. 제가 만들어 놓은 모빌 조각인 모빌 개체가 80개 정도 되는데요, 몇 가지는 즉흥적으로 만들었고 어떤 개체는 오랫동안 관찰해서 만듭니다. 많은 분이 좋아한 모빌 중에 <하품이의 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하품이’는 저와 6년째 함께 사는 반려견인데, 작업실 주변에서 구조했어요. 세상에, 어쩜 이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을까 싶어 하품이 눈을 계속 바라보다가 모빌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 ‘너와 내가 만난 봄과 같은 나날을 보내자’라는 응원을 담았습니다. 완성된 모빌을 포장해서 보낼 때면 하품이의 찹쌀떡 같은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보내요. 앞으로도 모빌에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 작품에서 아이의 동심도 많이 느껴집니다. 아이의 웃음, 아이의 느낌, 아이의 순진무구함 같은 것들……
아마도 제가 좋아하는 소재에 집중해서일 겁니다. 단순하게 접근하고 오랫동안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와 밝은 색채가 그런 느낌을 주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 오시영 작가님의 모빌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큰 기쁨을 안겨 줍니다. 이유가 뭘까요?
제 모빌이 바람에 의해 반짝이고 움직일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위로를 받곤 합니다. 저는 고유의 개성을 갖고 싶어요. 작은 돌멩이도 풍화 작용을 비롯하여 긴 시간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모습이 된 것처럼, 제 모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로 ‘여린바람’이란 이름도 만들게 됐습니다.
• 색을 정말 잘 매치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해맑던 날들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색을 쓸 때 주안점을 두는 게 있다면요?
작업 스타일이 즉흥적인 편이라 최근에는 좋아하는 색, 꽂혀 있는 색 위주로 시작해요. 저는 색을 좋아해서 색에서 위로받기도 해요. 우울한 날에 일부러 밝고 강한 색의 옷을 찾아 입는 것처럼, 색만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색은 구체적인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줄 수 있는 위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날 좋아하는 색, 지금 나한테 위로가 되는 색이 그 시작입니다.
• 따로 운영 중인 드로잉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니 푸른색과 옅은 주황색 라인으로만 그리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9년 전 두 달 가까이 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재료를 많이 챙겼지만, 작은 스케치북에 흔하게 볼 수 있는 5색 볼펜으로 그리는 게 마음이 제일 편했습니다. 그 다섯 가지 색상 중 파란색과 주황색만 사용했습니다. 그때 그렸던 드로잉에 큰 애정이 생겼는데 그게 지금까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당시 돈이 넉넉지 않아 힘들었지만, 자유로움이 좋았어요. 여행 중 고마운 일이 생기면 펜 드로잉을 선물했는데, 다들 좋아해 줬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재능을 인정받은 기분도 들고, 즐거운 일화도 많았습니다.
• 오시영에게 있어 그림과 모빌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를 움직이는 수단. 같이 움직이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PAPER 2023년 봄호
글과 그림, 사진 오시영
#PAPER #페이퍼 #페이퍼봄호 #비행기모드 #모빌 #오시영
황의정의 제주 일기
제주 동쪽 자연에서 만들어진 가게 이름
제주도의 시골 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한다. 이런 외딴곳에서 가게를 한다고 하니, 처음 문을 열 당시에는 주변의 걱정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올가을이면 가게는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그리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아직 망하지 않았고 이 시골에서 먹고 사는 정도는 해내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우리 부부가 처음 제주로 내려온 건 정확하게 13년 전이다. 처음부터 이 마을로 오려던 계획은 전혀 없었다. 우리 형편에 맞는 매물이 마침 이 집뿐이었다. 친한 친구가 살고 있던 것도 아니고, 동네가 너무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다른 낭만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집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로 왔다.
(...)
남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당시에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해외 소싱 매니저도 겸업하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도로 출장을 다녔는데, 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인도를 오갔다. 그런데 제주에 내려온 그즈음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인도의 친구들로부터 우리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권유받기 시작했다.
“리(Lee), 너도 이제 너의 일을 해보지 그래? 남의 일로 10년 넘게 이곳을 왔다 갔다 했으니 이제는 너희다운 너희의 브랜드를 만들어도 좋을 거야.”
(...)
사실 그때는 <파앤이스트>라는 이름을 짓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로고에 이미지가 필요하다면 이 아름다운 장면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미지는 정해졌으니 이제 이름만 정하면 된다. 그런데 이 이름이라는 게 당최 지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제대로 해보려 하면 더욱 일이 안 풀리듯이, 우리와 함께 할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떠오르지 않는 이름을 억지로 쥐어짤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그렇게 대략의 이미지만 정해 놓고 구체적인 가게 준비를 위해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우리는 한국의 제주도라는 섬 동쪽에 살아. 거기서 핸드메이드로 만든 물건을 파는 아름다운 가게를 하려고 해.”
우리를 설명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도 세계 지도상에서는 동쪽 끝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거기서 이름을 찾기 시작하다가 <파앤이스트>라는 이름에 다다르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제작하는 업체를 일일이 찾아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성을 설명한다는 건 진땀 나는 일이었지만 기죽지 않고 다가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히 기죽을 일도 없었다. 세상일이란 게 크고 작고의 문제로 결정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비즈니스라는 것 또한 어차피 사람 사는 일이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 이름을 설명하면 대부분 너무도 좋아했고, 우리를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거래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오랜 시간 품과 시간을 들여서 가져온 인도산 최고급 핸드메이드 카펫과 담요, 패브릭 제품들이 지금 매장에 진열되어 있다. 그만큼 특별하기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파앤이스트>의 ‘이스트(East)’는 우리가 사는 제주 동쪽의 외딴 마을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구 동쪽의 우리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동쪽은 세상의 중심에서 많이 먼 곳이니, 멀고도 멀다는 의미를 더해 ‘Far&East’, <파앤이스트>로 지었다. 어쩌면 ‘finest(최고급)’처럼 읽힐지도 모르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
브랜드에 대한 전반적인 컨셉과 로고, 이름 모두 제주가 준 선물이었다. 제주의 자연에서 채집한 나무와 돌멩이처럼, 따뜻한 온도를 머금은 제품을 만드는 가게.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될 우리의 인생 2막.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파앤이스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PAPER 2023년 봄호
글과 사진, 그림 황의정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앤이스트> 운영
#PAPER #페이퍼 #페이퍼봄호 #비행기모드 #황의정의제주일기 #파앤이스트 #제주도
PAPER 봄호 <비행기 모드> 특집에 실린 모든 글들은 스마트폰과 SNS에 지친 우리들이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순간을 담고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독자 여러분과 나눕니다!
◆ 인터뷰
<낮에는 집 짓고 밤에는 글 짓는 노가다꾼> / 작가 송주홍
“예전에 원룸 공사하는 곳에서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거기 아저씨들이 매일 술 마시며 일을 해요.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다음 날 다시 일하고 일 끝나면 또 술 마시고. 뼈는 노동에 닳고 살은 술에 녹아나는, 늘 촉촉하게 젖어 있는 사람들이죠. 책에서 읽은 게 진리라고 믿었던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거기엔 나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어요. 그걸 깡그리 다 거세하고 ‘술 마시며 일하면 반칙!’ 이렇게만 볼 수 없다는 걸 제가 노가다 판에 가서야 깨달았어요. 말이나 글로 그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세상에 대신 전하고 싶어요. 제가 책을 내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 특집 비행기 모드
<귀례 씨가 동굴로 들어와 쇠고기라면을 끓여 주었다> / 홍소영
“지금은 사람 만나기가 싫지? 그거 잘못된 거 아녀. 짐승도 상처 입으면 동굴에 들어가서 홀로 웅크린다잖여. 할미는 사는 게 바빠 그럴 수도 없었어. 그래서 우리 소영이가 동그마니 웅크려서는 상처 핥고 있는 이 시간이 할미는 참 좋아. 언제든 배고프면 나와. 할미가 쇠고기라면 끓여 줄겨. 아니지? 동굴에서도 배는 고프잖여? 할미가 동굴로 들어가서 라면만 후딱 끓여 주고 나오면 되니께 배고프면 언제든 말혀. 심심하면 전화하고.” 그런 귀례 씨 덕분에, 다시 내 방에도 따뜻하고 노란 불빛이 반짝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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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 디지털 디톡스
<덜어 내는 기쁨> / 김우영
스마트폰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보고 싶지 않은 컨텐츠들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웹상의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남의 삶이 과다하게 노출되는 SNS, 필터링 되지 않고 쏟아지는 나쁜 뉴스, 그리고 자극적인 광고들이 나의 무의식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삶의 균열을 인지한 건 그때였다. 식구들의 시선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꽂혀 있는데 우리는 영혼 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마치 무언가가 우리의 시선을 빨아들이며 삶을 몰래몰래 갉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느낌과 생각을 그때그때 메모하고, 드로잉 하는 습관이 있다.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차곡차곡 쌓이는 이 불쾌함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 내 마음을 살피는 힐링 체험
<소리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 / 음악 치료실 클랑 포레스트
“손과 발을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 몸이 충분히 준비되면 일어나 앉으시면 됩니다.”
‘천천히’ 숨 쉬고 ‘충분히’ 준비되면, 이런 말이 왠지 낯설었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나를 재촉하며 살아오느라 삐걱거리는 몸에서 나사처럼 빠져 버린 단어들이었다. 산다는 건 속도전, 어쩌면 숨조차 빨리 쉬었는지 모른다. 결혼 생활 25년 동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쉴 수 있는 나만의 방 하나를 갖지 못했다. 싱잉볼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와 진동이 ‘몸으로 듣는 수화’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손 모양과 동작의 의미를 알지 못해도 느낌으로 전해지는 위로와 치유, 가슴에 고여 있던 오래된 숨이 신선하게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 외딴섬, 굴업도에서
<안개와 파도가 선물한 안락한 단절의 기억들> / 전진우
사슴이 없어도 개들은 내내 달렸다. 탁 트인 해변에 풀어놓자 해안선을 따라 전력으로 달렸다. 가끔은 바닷새들을 쫓았지만, 잘 보면 개들은 아무것도 쫓지 않고 그냥 달릴 때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 친구가 이걸 보러 여기에 온 것 같다고, 혹은 이걸 보려고 개를 입양한 것 같다는 뉘앙스의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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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페이퍼봄호 #비행기모드 #PAPER #송주홍 #노가다칸타빌레 #홍소영 #김우영 #클랑포레스트 #디지털디톡스 #전진우 #굴업도
Animal Family Story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을 훌쩍 넘어 1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 한 집 건너 한 집이 반려동물을 키울 정도로 반려동물 인구가 부쩍 늘었다. 하물며 독거 인구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의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난다고 동물의 처우나 복지가 같이 좋아지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현실을 살펴보면 먹구름부터 몰려온다. 그리하여 Animal Family Story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한다. 우선 PAPER 편집부가 위치한 홍은동 옆 골목에 사는 엄마 김미연, 딸 이정미네 동물 가족 이야기를 들어 보자. 포클레인 회사를 운영하는 엄마 김미연과 중국어 공부를 하는 딸 이정미가 각별한 사랑으로 반려하는 라온이와 나비 이야기! 김미연과 이정미는 편집장과 가까운 사이여서 평소 말투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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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희: 동물과 가족을 맺고 난 뒤에 가장 달라진 점이 뭐야?
김미연: 라온이랑 나비가 온 뒤로 가족끼리 대화가 많아졌어. 애들 때문에 웃고, 애들 때문에 싸우고, 또 애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도 해야 하거든. 이전에는 하교 후나 퇴근하고 각자 방에 들어가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라온이와 나비 일로 계속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 특히 다윤이가 사춘기라 어찌 보면 부모와 대화가 단절될 수도 있는 시기인데 라온이 덕에 우리집은 늘 시끌벅적해.
이정미: 라온이 같은 경우에는 실내 배변을 못 하니까 하루에 적어도 3~4번은 산책하러 나가요. 나갈 때마다 10~20분은 있다가 돌아오니, 하루에 무조건 한 시간은 함께 걷는 셈이죠. 운동하기 싫어도 저절로 운동이 돼요. 살도 쭉쭉 빠지고.
• 정유희: 라온이에게 화식을 먹이고 있다고 들었어. 사료를 먹여도 될 텐데 굳이 왜 힘들게 화식을 먹이는 건지?
김미연: 강아지를 처음 키우니까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사료는 다 먹였어. 10kg에 10만 원씩 하는 해외 브랜드 동결 건조 사료 같은 것도 사 먹였지.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비싸다고 한들 어차피 잡육으로 만든 거더라고. 이런저런 중간 유통 비용 다 떼고 나면 원가는 훨씬 쌀 테고. 그래서 가족이랑 논의하다가 결론을 얻었지. 비싼 사료는 답이 아닌 것 같다고. 반려동물 영양학을 공부하려고 책을 한 8권은 읽었어. 화식 만들 때 매번 재료는 바뀌지만 고기와 채소 비율을 5:5나 6:4 정도로 유지해서 만들어. 한번 만들 때 열흘 치 정도 만들어. 귀리랑 새싹 보리 같은 걸 먹이면 털이 엄청나게 부드러워져. 이렇게 화식 한번 만들고 나면 둘째 딸 다윤이는 막 한 숟갈씩 퍼 먹어. 너무 맛있다고. 나는 아까워서 못 먹지.(웃음)
• 정유희: 동물 병원 과잉 진료에 대한 논란이 계속해서 나오잖아? 동물 병원 진료 체계에 관한 생각을 알려줘.
김미연: 동물 진료를 돈벌이로 환산하는 의사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게 문제. 양심적인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나는 예전에 시골에서 소도 키워 보고 돼지도 키워 봤어. 소나 돼지가 아플 때마다 수의사가 와서 진찰하고 치료까지 해 주는데, 절대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 가지 않아. 그런데 반려 동물 병원 같은 경우 동물을 자식처럼 키우는 소비자한테 너무 심하게 뜯어 먹는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많이 받아. 약의 원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걸 뻔히 아는데, 동물 병원의 상업적인 이윤 추구가 과한 것 같아.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곳에서 동물 병원의 진료비와 약값을 필히 진단해 볼 필요가 있어.
• 정유희: 마지막 질문이야. 앞으로 라온이와 나비와 함께 어떤 삶을 살고 싶어?
김미연: 지금처럼 행복하게. 둘 다 크게 아프지 않길 바라고 함께 행복하게 왁자하게 살면 좋겠어.
이정미: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엄마와 저의 건강도 계속 신경을 쓸 거예요. 사람도 건강이 최고, 동물도 건강이 최고!
PAPER 2023년 봄호
인터뷰와 사진 정유희
#PAPER #페이퍼 #페이퍼봄호 #비행기모드 #AnimalFamilyStory #반려동물 #라온 #나비
북극권 여행
ARCTIC CIRCLE 1
연착된 비행기가 가닿은 새하얀 풍경들
All flights are canceled
어째서 내 여행의 순조로운 출발은 아주 높은 확률로 실패하는가에 대해서 에든버러의 게스트하우스 식당에 앉아 생각한다. 두 달 동안 묵었던 에어비앤비는 체크아웃을 했고, 학교에는 마지막 주 수업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모두에게 인사를 해 두었다. 애매하게 남은 하루를 에든버러에서 거의 가장 저렴한 10인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후 공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의외로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에든버러에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눈을 치우고 비행기를 띄우지 않을까 싶었지만, 공항 직원은 오늘은 비행기가 뜰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허탈하게 시내로 돌아와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루 연장했다.
그렇게 하루씩 추가되던 숙박 연장은 어느새 사흘이 되었고, 나의 북유럽 여행의 사흘도 사라지고 있었다. 체크아웃을 했던 여행객들이 매번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항공편이 두 번째 취소되어, 또 숙소로 돌아온 캐나다 여자아이가 “캐나다에서는 이 정도 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라며 씩씩댔다. 캐나다 기준 아무것도 아닌 눈에도 에든버러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매일 계획을 다시 짰다. 자꾸만 짧아지는 여행의 일정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기차 시간을 조정하고, 어떤 목적지를 포기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새로운 멋진 목적지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르드룹고드 미술관(Ordrupgaard museum)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언제나 올라퍼 엘리아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출신 현대 미술 작가의 기후와 환경 변화에 대한 작업은 언제나 천재적이고 아름답다. 오르드룹고드 미술관에 간 이유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Vær i Vejret>을 보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청동 링에는 촘촘한 노즐이 있어서 아주 작은 물의 입자를 뿜는다. 그것들은 온도, 빛, 바람, 습도 등에 반응해서 그저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구름이 되기도 하고 안개를 만들기도 한다. 기후와 측정하기 힘든 것들에 끊임없이 반응해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작은 기후 현상들에 이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은 아주 조금씩 젖게 된다. 겨울에는 노즐이 얼어서 물 입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커다란 링으로 눈이 천천히 통과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KIRUNA
키루나는 스웨덴 최북단의 광산 마을이다. 백야와 극야가 나타나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라플란드라고도 불리는 지역이다.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부터 나는 키루나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온 마을이 눈에 익숙한 듯이 파묻혀 있다. 일 년 중 절반은 겨울인 이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온통 하얀색인 것이 보통이고 백야가 찾아오는 초록의 여름은 특별한 모습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는다. 내가 북극권에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키루나 시내를 목적 없이 걸었다. 목적 없이도 원하는 만큼 걸을 수 있는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다. 빛바랜 파스텔톤의 집들과 창문, 스웨덴어가 적힌 표지판, 작은 가게들의 쇼케이스들, 인형같이 보이는 사람들. 모든 것들이 눈에 덮여 조금씩 둥글어진 외곽선을 만들고 있었다.
인포메이션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작은 교회로 향하던 길에 걸어 들어간 작은 숲의 모든 나뭇가지에 빼곡히 눈이 내려 있다. 아무도 없는 하얀 숲은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사방이 순백색이었고 햇살이 눈에 반사되며 반짝거렸고 나는 첫 발자국들을 남기며 오랫동안 서성였다.
PAPER 2023년 봄호
글과 사진 영민
#PAPER #페이퍼 #페이퍼봄호 #비행기모드 #북극권여행기 #영민 #ARCTICCIRCLE #코펜하겐 #키루나
이번 PAPER 인터뷰 때, 줄리안이 다른 매체 인터뷰 시 입은 옷을 또 입고 나와서 내심 의아해하자 그는 “새 옷을 잘 안 사서 옷이 별로 없고, 이 옷이 편해 자주 입는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줄리안을 처음 만난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에코 토크 자리에서도, 그를 두 번째로 만난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웹3 성장 커뮤니티’ FFC 강연장에서도, 그는 이번 인터뷰 때 챙겨온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가지고 왔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또, 무대 위에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실천을 공유했다. 이러한 일련의 만남을 통해, 나는 줄리안이 ‘허울 좋은 환경운동이 아니라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 환경을 생각하며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줄리안이 올해 녹색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사고를 쳤다. 이태원에 환경과 동물복지를 중시하는 제로웨이스트샵이자 여러 행사를 위한 공간 등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 <노노샵>을 오픈한다고 한다. 또,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타일러와 함께 혁신적인 수익배분과 합리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춘 연예기획사 <웨이브 엔터테인먼트>도 설립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줄리안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각별한 기대와 희망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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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희의 덫에 걸린 사람들
지혜와 행동이 결합된 뜨거운 녹색 행보
방송인, 환경운동가 줄리안 퀸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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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안은 이제 방송인이라기보다는 환경 운동가로 많이들 여기시는데,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려고 해요?
현장에서 환경 운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저 자신을 환경 운동가라고 말하기에는 멋쩍은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운동가’가 꼭 거창한 실천을 하는 게 아닌, 소소하게라도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봤을 때, 저는 누구나 운동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사람들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역시 결정적으로 환경 운동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비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마어마한 것에 비해서 매스컴에는 매번 화석 연료나 이산화탄소 등등에 관해서만 논의가 되는 것 같거든요. ‘축산업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그냥 내가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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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완전한 비건이라고 들었어요.
우리가 육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고기를 먹는 것과 개고기를 먹는 것, 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개와 소의 지능 차이를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멀리 간 비유지만, 그러면 지능이 낮은 인간은 먹어도 되나요? 결국 철학의 문제예요. 육식은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환경에도 해롭습니다. 이 모든 걸 제치고 육식할 이유를 하나 굳이 꼽자면, 먹을 때의 즐거움밖에 없어요. 육식할 때 즐거워서 먹는다고 답하면 채식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그 즐거움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냐고 묻는다면, 큰 범위에서 그렇다고 봐요. 이제는 고기 먹는 즐거움이 기후를 망치고 있으니까. 나의 자유가 남의 혹은 인류의 자유를 짓밟는 순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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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플로깅과 비치코밍을 많이 하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주웠는지도 궁금할 거 같아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수거한 양을 계산해 보지는 못했어요. 물론 혼자 주운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합치면 수 톤은 될 거예요. 플로깅이나 비치코밍을 하다 보면 별걸 다 주워요. 한강에서는 노트북을 주운 적도 있고, 바닷가에서는 냉장고를 5개까지도 주웠어요. 제가 플로깅을 자주 하려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많이 파괴하는지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환경 운동이라는 게 들인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가 잘 보이지 않잖아요. 기후 위기 자체도 잘 와닿지 않죠. 오랫동안 생각하고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플로깅은 기후 위기나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쉽게 참여할 수 있어요.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든 사람에게 접근성이 좋은 환경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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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2023년 봄호
인터뷰 정유희
사진 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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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페이퍼봄호 #줄리안퀸타르트 #줄리안 #비정상회담줄리안 #환경운동
🌿 PAPER / MAYDAY에서 기획력을 가진 잡지 에디터를 찾습니다.
MAGAZINE PAPER / MAYDAY GRAPHIC STUDIO에서 경력 기자를 구인합니다.
MAGAZINE PAPER에서는 27년 된 문화 매거진 <PAPER>를 1년에 네 번 계간으로 제작 발행하고 있고, 각종 사보와 브랜드 매거진, 아카이빙북, 홍보물 등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기획력과 문장을 다루는 단단한 스킬, 문화 감성을 가진 분들, PAPER / MAYDAY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 모집 부문: 경력 에디터 / 편집장
- 경력 (3~7년 이하)
● 상세 업무
- 잡지 기획, 취재, 기사 작성, 원고 워싱 등을 전담할 수 있는 경력 에디터
- 사보, 브랜딩북, 홍보물 등의 기획, 브랜딩, 제작 경험자
- 환경, 에코 라이프 관련 글 작성 경험자
● 모집 인원
1명
● 제출 서류
- 이력서
- 기사 작성이나 이전 작업을 열람할 수 있는 URL을 첨부해주세요.
- 이력서에는 이전 직장 재직 기간을 정확하게 명시해 주세요.
● 접수 방법
편집장 이메일로 접수 papercool@naver.com
- 이메일 지원 시 제목란에 <경력 에디터 응모 + 이름>을 적어 주세요.
● 접수 기간
- 4월 24일부터 5월 2일 (서류 합격자 개별 통보 드림)
- 이후 편집장 면접 후 최종 합격자 발표 (면접 시 연봉 협의 합니다)
* 회사는 연희동 뒷편 홍은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문화, 예술 및 SNS 기반으로 한 영상 및 디지털 영역에 독자적인 기획력과 감성을 가진 분
- 운전 면허 취득자 우대
● PAPER 봄호가 발행되었습니다.
PAPER 건물 마당에 목련 송이가 곱게 피었다 졌습니다. 떨어진 목련잎처럼, 봄이 조금씩 로그아웃되고 있는 듯합니다. 영원히 피어있는 꽃이 없듯 계절 또한 바뀌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변화에 설레임 만큼이나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PAPER 봄호에서는, 익숙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 삶에 작은 변화를 줘보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비행기 모드>.
봄의 와중에 잠시라도 폰을 끄고, 폰 안의 사람이 아닌 실제 사람을 만나 햇살을 느끼고, 바람의 촉감과 공기 내음을 맡으며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특집을 만들었습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 안물안궁인데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일상사까지 알게 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손바닥만 한 폰을 쥐고 있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사람을 쉬이 피로하게, 또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제 휴대폰을 잠시 꺼 두고, PAPER 봄호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살아있는 봄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보세요~
봄호 특집 <비행기 모드>는 제목부터 입맛 당기는 산문 <귀례 씨가 동굴로 들어와 쇠고기라면을 끓여 주었다>를 비롯해 세 편의 특별한 산문으로 시작합니다. 앱 기획자 김우영의 진솔한 디지털 디톡스 고백이 담긴 <덜어내는 기쁨>, PAPER 편집부가 춘천 <차마실산>으로 떠나서 폰 없이 누린 호젓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또한, 김규림의 공감 일상툰 <로그아웃 좀 하겠습니다>와 목수 전진우가 사진과 글로 전하는 외딴섬 굴업도에서 보낸 안락한 단절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 폰을 끄고 매주 화요일마다 푸른 운동장을 내달리는 살림 FC 여성 풋살팀의 짜릿한 풋살 스토리도 놓치지 마세요.
이 외에도 <고원>, <고독 스테이>, <클랑 포레스트>, <들을리 소향>에서 편집부 일당들이 각각 마음을 살피는 호젓한 힐링 타임을 가졌고요, 마음을 정화하고 본질을 사유하는 공간들을 섬세하게 선별해 독자님들께 알려 드립니다. 한편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각종 채팅방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방법을 알려주는 코너도 있습니다! ^ ^
이번 PAPER 봄호에서는 아주 특별한 두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생각들이 돌출되는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으로 이름을 알린 줄리안 퀸타르트. 요즘은 방송인으로서 보다는 환경운동가로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환경 관련 강연, 채식 홍보까지 전방위적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줄리안이 정유희의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유럽연합 기후행동 친선대사인 그가 올봄에 녹색 바람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사고를 쳤다고 하니, 그의 행보에 각별한 기대를 품어도 좋을 듯합니다.
다른 한 분은, PAPER의 골수팬이자 훈남 노동자인 송주홍 작가를 김양미 기자가 팬심으로 만났습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에서 송주홍을 고집한 이유는 그의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한꺼번에 수행하고 있는 자웅 동체 노동자. ‘거친 노가다판에서 인생 최고의 행복을 얻었다’는 송주홍의 땀내 나는 이야기에 함께 젖어 보시기 바랍니다.
봄호 표지와 아트 갤러리의 주인공은, 오시영 작가입니다. 오시영 작가는 꽃, 바람, 나무 조각, 산호 등 자연의 소재들로 그림을 그리고 모빌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사물을 대범하게 단순화 시켜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합니다. 이 밖에도 정세랑, 김연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작가가 보내준 <마음에 스미는 문장들>을 필사해볼 수 있는 페이지도 마련돼 있습니다. 건강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비건 대동여지도>, 영민의 흰 눈 감성 충만한 북극권 여행기, 손맛 좋은 소품집 <Far & East> 주인장 황의정의 제주 일기 등, 이번 봄호에도 얼굴에 벚꽃 미소 피우게 만드는 다양한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 독자님들, 요즘 폭등한 고물가 시대를 체감하고 계시죠? PAPER도 인쇄비 등의 제작비가 너무 높아져 고심 끝에 잡지 가격을 16,000원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잡지 가격이 오르더라도 PAPER 편집부에서 좀 더 힘내서 잡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PAPER에 큰 사랑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PAPER 구매 방법
온라인 서점과 전국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 통합 검색창에서 ‘페이퍼’ 혹은 ‘계간페이퍼’, ‘페이퍼봄호’를 검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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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호 표지를 골라주세요!
이상기온으로 인해 꽃은 너무 빨리 피면서도 조석으로 날씨는 을씨년스러운 봄. 이런 봄을 뚫고 PAPER 봄호가 발행됩니다.
이번 봄호 표지는 동심을 표방하는 듯, 어른의 마음을 더 환하게 만들어 주는 모빌로 유명한 오시영 작가님의 그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오시영 작가님의 작품은 지난해 가을, PAPER가 기획하고 준비한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전시 <일상감각>에서 제대로 접했습니다. 오시영 작가는 꽃, 바람, 햇살, 산호, 돌 등 자연의 산물에서 영감을 받아 모빌을 만드는데, 오시영의 모빌을 건 공간에서는 자연의 순수한 공기감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아크릴로 만든 모빌은 각각 여러 개의 개체가 즉흥적으로, 때로는 계획적으로 결합되고 변주되어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하게 합니다. 이번 아트갤러리에서는 모빌뿐 아니라, 모빌의 밑바탕이 되거나 모빌과 함께 발맞춰 진화하고 있는 그림도 함께 소개합니다.
어느 한쪽 손만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오시영 작가님은 모빌과 그림 작업, 양쪽에서 매력적인 결과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PAPER 편집부는 모빌과 그림 이미지를 표지에 번갈아 올려 보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요. 절정으로 치닫는 봄, 여러분을 찾아갈 표지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는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PAPER 봄호는 4월 21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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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활개를 필 것 같더니, 또 다시 날씨가 변덕을 부립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차가운 가랑비를 보고 있노라면, 날씨를 닮아 온유한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집니다.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목수 전진우의 라오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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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 컷의 여행
좋으니까 외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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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여행의 순간이라니, 천장을 잠깐 보는 사이에 몇 장면이 휙휙 지나간다. 그렇다고 지구본을 돌리듯 여러 장소들을 떠올린 건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 한국을 처음 벗어나 본 건 스물여덟 때였는데, 함께 떠나준 친구들은 눈이 커진 내게 비행기 창가 자리를 내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조금 높아지고 넓어지고 또 구름에 가려지기도 했던 것 같다.
사진 속 공간은 라오스의 꽝시폭포 어디쯤이다. 기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나간 해외취재였는데 나는 그때 혼자였다.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를 당장 던져 놓고 다이빙 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내가 물속에 들어가 웃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카메라를 가져갈 게 뻔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젊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찍고, 햇빛을 받은 하얀 어깨를 찍고, 연신 풍덩거리는 소리를 찍었다. 아무도 그런 내게 말 걸지 않았다. 유령이 된 것 같았다. “저는 여기에 온 게 아닙니다.” 페이스북에는 그런 말을 남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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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마음껏 놀 수 있다고 해도 여기에 앉아있겠구나.’ ⠀
몇 분 뒤, 정말 유령처럼 구석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던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꿈같은 공간에서 내가 원했던 게 단지 수영을 하거나,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던 것이다.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이곳에 오면 분명 바보처럼 소리 지르며 뛰어다닐 녀석, 어처구니없는 접영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녀석, 맥주만 계속 마셔댈 녀석, 그리고 유럽 여자들을 따라다닐 녀석... 몇몇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곧 장소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어서, 친구들 없이도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지냈는데, 좀 멍청한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몽롱한 물 색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분위기, 뜻밖의 친절, 맛있는 맥주, 어디서나 들려오던 음악, 햇빛, 한 번도 같은 적 없던 그 햇빛. 여행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꽝시폭포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아쉬워했던 거겠지. 그런데 그 아름다운 것들은 보통 내 삶의 바로 옆을 조명해 주는 것 같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건, 그래서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얘기’로 흐른다. 사진 속 세 명의 남녀가, 엉덩이만 나온 여자가 모두 나와 내 친구들, 사랑하는 연인, 엄마나 아빠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언젠가 혼자 여행하고픈 시절도 오겠지. 그때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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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2014년 5월호
글과 사진 전진우
#PAPER #페이퍼 #PAPER2014 #한컷의여행 #라오스여행
엄마 아들 여행: 일본 시코쿠 순례
‘봄에는 자전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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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시코쿠의 불교 순례길인 ‘시코쿠 헨로미치’는 1200년 전 진언종 창시자인 코보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만들어진 88개의 절을 들른다. 88번 절에 도착해 다시 1번 절에 다다르면 섬 한 바퀴를 돌게 되는 것이다. 산티아고 프랑스길보다도 긴 1200킬로미터의 순례길이 닿는 네 개의 현을 네 계절로 나눠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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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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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개의 사찰을 도는 것에 엄마는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굳이 의미부여가 필요할까’ 생각했는데, 열 시도 안 된 시간에 모두가 잠든 시코쿠 민박집에 홀로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첫 번째, 88년에 결성된 삼소회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수녀님, 비구니스님, 원불교 교무님들이 한데 모여 노래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여러 종교의 여성 수도자들이 만든 봉사단체라고 했다. 88 서울올림픽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던 패럴림픽 선수들을 위한 모금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종교라는 큰 장벽을 넘어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타 종교에 대한 터부가 사라졌다. 그게 이어져 불교 순례길까지 도전하게 된 것이 아닐까.
두 번째, 내가 88년생이라는 것이었다. 산티아고를 걸을 때 우연히 88년생 친구들과 88년생 애들을 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남자애들은 군대 전역하고 복학 직전, 여자애들은 첫 직장 을 그만 두고 이직을 고려할 무렵, 어른들은 애들 키워놓고 이제 한숨 돌릴 그런 시기였던 것이다. 먼 길 위에서 된통 호구조사를 당하고서 서로 알게 된 공통분모였지만, 4년째 인연들을 이어가고 있는 걸 보니 88이라는 숫자랑 인연이 있는 건 분명했다.
민박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독일 발음이 묻은 영어가 들렸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는데, 벌써 세 번째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엄마들의 오지랖엔 국경이 없다. 자기 아들도 88년생이라며 엄마들끼리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말이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물 한 모금 마시다 뒤따라오던 그녀를 다시 만났다.
- 그런데 안장이 왜 그렇게 낮아? 불편하지 않아?
- 우리는 다리가 짧으니까요. 한국에서는 그걸 ‘팩트폭력’이라고 해요. 우리는 다리가 짧으니까 먼저 출발할게요!
도보보다 훨씬 빠른 자전거의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이 길 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날 우리의 안장이 생각보다 더 낮았는지, 아니면 바퀴가 작았는지, 그녀를 세 번이나 더 만났다.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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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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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니네 너무 한 거 아니냐? 봄이 왔으면 일을 해야지. 지금이 몇 월인데 몽우리도 안 졌어?
애꿎은 벚나무에 화풀이만 하고 있는 오늘은 봄 시코쿠의 마지막 날. 예상 개화시기에 맞춰 왔더니만 기상이변으로 벚꽃은 구경도 못했다. 하지만 벚꽃만 꽃이랴. 야생화 찾기 달인 엄마를 두어서인지, 길 위에서 미처 보지도 못한 수많은 봄의 꽃들을 만났다. 벚꽃 대신 수많은 다른 색이 마음에 담겼다. 걱정했던 자전거 순례에서 큰 사고도 없었고, 일주일 동안 매일 50킬로미터 페달을 밟은 엄마는 생각보다 근사한 라이더가 되어버렸다. 나만 발톱 빠진 겨울 시코쿠에 이어, 이번에도 나만 계단 내려갈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있다. 치사하게 아니 다행히도 엄마는 무릎도 안 시리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벚꽃 없고 사건 없는 여행이면 어떨까.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달린 꿈같은 일주일이 좋았다. 이렇게 매번, 엄마와의 결별 여행은 실패하고서 돌아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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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2017년 봄호
글과 사진 원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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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페이퍼 #페이퍼봄호 #미치지않고서야 #엄마와걷는시코쿠순례길
PAPER MANIA 열혈 독자를 만나다
‘보물 1호 PAPER로 여전히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중’ 中
열혈 독자 김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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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현, 대학 졸업한 직후 PAPER를 만났다는 이 친구는 ‘보물 1호 PAPER에는 내 청춘의 추억이 모두 담겨 있고, 지금도 PAPER로 여전히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중이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PAPER 열혈 마니아다. 현재 밀양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PAPER와 함께 철들기를 거부한 밀양 최고의 독자. 그녀를 취재하기 위해 미로 미술학원으로 들이닥쳤을 때, 꽃과 풍선으로 가득한 장식이 교습소 벽 한가운데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김자현의 특별한 환영 인사에 PAPER 일행 모두 환호성을 길게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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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를 몇 권이나 보유하고 있나요?
원래 200여 권 정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 헤아려 보니 현재는 184권을 보유하고 있어요. 몇 권은 지인들에게 빌려줬다가 결국 돌려받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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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깝군요…. PAPER를 언제 처음 만났나요?
1998년 12월에 처음 만났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스물다섯 살 무렵에 바로 그림을 가르쳤는데, 스물여섯 살에 가르쳤던 취미생 중에 대학생이 있었어요. 이 학생이 항상 화실에 올 때마다 옆구리에 PAPER를 끼고 있더라구요. 이 학생이 저한테 적극적으로 PAPER를 소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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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달리 PAPER가 좋았던 이유는 뭘까요?
감성적으로 맞았던 거 같아요. 사진을 포함해서 모든 컨텐츠가 그때그때 유행을 쫓지 않았고 PAPER만의 어떤 자연스럽고 목가적인 정서가 잡지에 함유되어 있는데 그 정서가 참 좋았어요. 글도 사진도 내용도 그 당시 밀양 시골에 있던 제게 너무 신선한 충격을 줘서 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었던 잡지예요. PAPER의 영향을 받아서 사진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이달의 클립보드에서 소개한 CD도 사 모으게 됐어요. 심심했던 시골의 한 달 생활을 억수로 기분 좋게 해줬던 잡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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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와 얽힌 특별한 일화가 있나요?
이번에 취재 오신다고 해서 PAPER를 하나하나 다 꺼내서 봤는데, 살 때마다 제 삶의 사연이 다 들어 있더라구요, (PAPER를 아무거나 골라 펼치니 각종 편지, 엽서, 인화된 사진, 쪽지가 여러 개 꽂혀 있다) PAPER를 보다 보니 타임머신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등장하더라구요. 미라, 은주 등, 지금까지 제일 친해서 자주 만나는 대학 동창들과의 사소한 에피소드들, <청학서점> 주인장 신 씨 아저씨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살 때 2,000원 깎아줬던 것까지 PAPER에 적어놨더라구요.(웃음) 또 PAPER GALLERY에 처음 제 그림이 뽑혔을 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그 계기로 다시 색연필을 잡았어요. 그 전에는 보드 같은 평면에 각종 재료, 이를테면 압정이나 에바 같은 재료들을 붙여서 콜라주 작품을 주로 만들었는데, PAPER 덕분에 다시 본격적으로 회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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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가 앞으로 어떤 잡지가 됐으면 좋겠나요?
저한테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만큼 지금 세대들에게도 그러길 바라요.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감성을 쫓지 말고, PAPER 고유의 감성을 잘 유지하면 좋겠어요. PAPER 고유의 전통과 정신을 살려가면서 천천히 변해갔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세련되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잡지도 시간이 흐르면 금방 촌스럽고 뒤처지는 느낌이 드는데, PAPER는 신기하게도 10년 전 걸 뽑아 들어도 고유한 정서와 감성이 있어 늙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마치 한 권의 좋은 고전이나 양서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꼭 제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쭉 대대손손 사랑 받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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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2017년 봄호
인터뷰 정유희
사진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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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페이퍼 #PAPER2017 #페이퍼미치지않고서야 #페이퍼마니아